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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충렬공 金方慶 144 ---송악(松岳)에 드리는 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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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18 20:51 조회1,4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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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37권
애사ㆍ제문 哀詞祭文

송악(松岳)에 드리는 제문

…… 내가 자신의 행동이 위아래로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에 무슨 귀신에게 빌어서 요행히 그 덕 보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 대왕은 한 나라의 의지하는 바이라, 감히 거만하거나 게을리 못하는 것은 그 응징의 꾸지람이 곧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건대, 의복(倚伏 화복의 인연)이 떳떳함이 없고, 규전(糾纏 얽매고 괴롭힘)이 어찌 그리 이상합니까? 나쁜 자에게 화를 주고 착한 자에게 복을 주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입니다. 나는 그 흰 것을 보장하건만 검은 점이 더럽히고, 나는 그 맑음을 믿건만 탁한 물에 씻어야 하니 말입니다. 이러한 기미(幾微)의 닥침을 나의 지혜로써 어찌 막으리까? 미리 그 싹을 꺾음에 있어 신의 도움을 기다리고 신에게 바랄 것도 오직 이뿐입니다.




■ 증보 김해지리지 (김해문화원, 1996)
●松嶽壇(송악단)
옛날의 松嶽堂(송악당)으로 金剛社의 서북 약 200步許에 있는 작은 구릉으로서 神祠(신사)를 松嶽堂이라고 했다.
고려의 충렬왕 즉위년(1274) ★金方慶 장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金剛社에서 留宿(유숙)했는데, 그때 개경의 松嶽神을 이곳에서 제사지내고 戰勝을 빌었으므로 이 구릉을 松嶽堂이라 부르게 되고, 김해 사람도 城隍神과 함께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
세종때 지리지를 보면 府北 3里에 있는 [盆山城隍護國之神](분산성황호국지신)에게 守令이 行祭한다고 나와 있다.
지금은 高麗葬터, 白雲臺라고도 부르고 있다.

●金剛川
盆山에서 흘러내리는 시내로 西上洞과 大成洞의 경계가 되며, 지금은 대부분 복개되었다.

●金剛社址
송악산 아래에 있었던 큰 사찰이며, 그 때문에 이 마을을 大寺里라고 불렀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까지는 金剛社라고 했으며, ★충렬왕때(1274-1281) 東征하는 함선의 출발지점인 합포(마산)로 가기 위하여 왕이 금주(김해)로 내려왔을 때 이곳에 行宰(행재)하고, 社 앞의 한 茶나무를 보고 將軍茶(장군차)의 이름을 내렸다.
태종때 영의정 ★하륜이 지은 金剛社不毁樓記(금강사 불훼루 기)와 ★서거정의 金剛社詩가 邑誌에 나온다.
금강불훼는 불교에서 나오는 말이며, 도관찰사 ★안순이 김해부사 ★현맹인에게 명하여 승도의 힘으로 불훼루를 쌓고 남쪽에는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고, 동쪽에는 토계를 쌓아 그 위에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세종21년 (1439) 관찰사 ★이선이 도절제사 ★이교와 함께 이 루상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루가 무너져 압사자가 8명이나 되었으므로 1명이 파직된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 작성자 :김태영 작성일 : 2003/12/25 10:32 (from:61.40.37.156) 조회 : 42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제9권 (9)
[丘] 모으다(聚). 4정(井)이 1읍(邑)이고 4읍이 1구(丘)이다.
[송악소구(松岳小丘)]: 고려 원종(元宗)이 원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김방경(金方慶)을 보내 동쪽으로 일본을 정벌할 적에 군사들이 합포(合浦)에 이르러 송악(松岳)의 작은 언덕 위에 주둔 하였다. 이 언덕에서 송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 고을 사람이 그로 인하여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2 昌原都護府 ‘山川’ ‘合浦’>
합포(合浦): 지금의 경남 마산시 지역을 가르킴.



■1937년(정축) 9월에 발행된 안동김씨화수록 권2
■1956년에 발간된 안동김씨보감
<원문>
忠烈公 尊影
高麗國都元帥金方慶
忠烈公
高麗元宗朝에 金海府松岳堂은 公이 南征時에 留次金剛社하사 祀松岳之神立堂也러니 邑人이  設 忠烈公尊影하고 兼祀 故로 以傳于世라 事在文獻備考

<번역문>
고려국 도원수 충렬공 김방경 영정
고려 원종조에 김해부 송악당은 충렬공이 남정시(일본정벌시)에 이곳 금강사에 머무르면서 송악의 신위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고을 사람들이 여기에 공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 일은 문헌비고(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되어 있다.



■ 인터넷 검색 (http://www.ildeil.com/music/flowerword/agiddongful.htm) [새창에서 열기]
<꽃전설>
홀아비-바람꽃
수필가- 박경용

모짜르트의 포근한 산들바람/꽃을 자세히볼려면 꽃에크릭
서젯골은 만장대의 서북기슭에 자리잡은 약수터로 김해의 역사와 더불어 애환을 같이 하고 있다. 고려때는 금상사(金剛砂)와 부전루(樓)가 있었으며 여몽연합군이 일시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고려 김방경(金方慶)將軍의 토왜재단(土倭齋壇)인 송악단(松嶽壇)과 장군차(將軍茶)로도 알려진다. 이곳에 흐른는 약수를 금령천(金鈴泉)이라 하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역사상 과거 제도가 정착되고 사회가 안정되었을 때 이곳 서젯골은 선비들의 과거 준비하는것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것은 여기서 나오는 약수를 마시면 머리가 영특해 지고 과거에 합격하는 율이 높다는 속설이 있었다. 거기에다 신혼초에 이 물을 마시면 머리좋은 수재를 낳는다는 얘기도 내려오는 것이었다.
---후 략---


■ 김해시청 답변
현재 송악단이 있던 곳은 김해 구산동 백운대고분 (경상남도 기념물 제223호) 으로 지정되어 있는 구릉의 하단부입니다.
김해여고 뒤편과 산복도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재골 약수터 가는 길 중간에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하실 경우, 동김해IC에서 활천고개를 지나 산복도로를 통해 삼계, 진영 쪽으로 가시다가 왼쪽편에 보이는 절개된 산봉우리 모양의 언덕 하단부에 백운대라는 비석이 있는 곳이 송악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주변환경은 동상대상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인해 구획정리되었으며, 잔존한 유적 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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