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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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09-18 22:24 조회2,313회 댓글0건본문
나모를 붙이는 연습 중입니다.
하남문화원에서 발간한 하남금석문대관을 보면 우리 문중 어른들과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답사하고 소개했던 운산군 이계의 신도비 및 성경온 묘갈이 있고 낙서공 휘 자점 선조님의 외조부인 유홍의 신도비와 하담 선조님과 사돈인 민응협의 신도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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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군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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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군 신도비 탁본(유연재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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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온 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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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온 묘갈 탁본(유연재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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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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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신도비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민응협의 묘소는 수령이 백여 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마치 곡장을 대신한
듯합니다.
묘소는 호석 . 상석 .홍유석. 장명등. 문인석. 망주석과 근래에 세운 묘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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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응협 묘소
민응협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인보(寅甫)이고 호는 명고(鳴皐)입니다. 봉정대부 민영(閔畔)의 아들이며, 외가는 목은 이색의 후예입니다. 3남 3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 민점(閔點)은 하담 휘 시양 선조님의 따님과 혼인하여 우리 문중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묘소에서 동남쪽으로 백여미터 떨어진 지점에 셋째아들인 민암이 찬하고 오시복(吳始復)이 서한 민응협 신도비가 있습니다. 1692년에 세워진 이 비는 총고332cm 비고(碑高)229cm이며 비의 형태는 양호합니다.
다만
신도비가 나무속에 묻혀있어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점(點)은 판서(判書) 김시양(金時讓)의 딸에게 장가들어 4남 3녀를 두었다. 장남은 안도(安道)니 지금 벼슬이 공조참의(工曹參議)요, 차남은 종도(宗道)니 지금 벼슬이 병조판서(兵曹判書)요, 셋째는 홍도(弘道)니 병조좌랑(兵曹佐郞)이요,
익원공파 효헌공 눌암 휘 찬 선조님의 사위인 용주 조경이 찬한 하담 선조님의 신도비에 있는 기록에도
따님이 민점에게 출가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에 와 있습니다.
양서면 부용리는 익원공 묘소가 있는 목왕리 입구, 두물머리(양수리)에서 구정승골로 조금 들어간 곳입니다. 바로 정창손 묘역이 있는 곳입니다. 정창손은 익원공파 문정공(휘 질) 선조님의 장인으로 안사연 제3회 모임(익원공 묘소 및 9정승묘소 탐방)때 이미 답사를 한 바 있습니다.
정창손 묘역과 마주하여 바라보는 산중턱에 민응협의 아들(며느님)이며 하담 선조님의 사위(따님)인 민점. 배위 안동김씨의 합장묘가 있습니다.
장마의 영향으로 한두 차례 비가 온다고 하더니 햇볕은 따갑기만 합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산을 오릅니다.(속으로는 계속 crazy를 연발합니다.)
얼마쯤 오르자 그곳에 민점의 묘가 있습니다.
민점(閔點)
1614(광해군 6)∼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여(聖與), 호는 쌍오(雙梧). 이조참판 응협(應協)의 아들이며, 좌의정 희(熙)의 아우이고 암(암.
1651년(효종 2) 별시문과에병과로, 1656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등을 거쳐 1666년(현종 7)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671년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674년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숙종 때는 형조판서·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나, 1677년(숙종 3)의 증광시(增廣試)때 아들 주도(周道)의 과거부정사건으로 사직하였다.
그뒤 다시 복직하여 공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가문에서 배출한 정승의 수보다는 문형이 얼마나 배출되었느냐가 명문을 따지는 유력한 기준이 된다는 문형. 조선시대에 형제가 문형이 된 경우는 광산김씨의 김만기(金萬基). 김만중(金萬重) 형제와 여흥민씨의 민점(閔點). 민암(閔암) 형제뿐이랍니다.
그래서 여흥민씨 내에서도 이 분들의 후손들은 아직까지도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민점의 묘는
평범한 형태이며 묘비 외에 한쌍의 망주석과 상석. 혼유석의 석물이 있으며
묘비의 내용에는 1984년 묘역을 정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배를 하고 묘소 사진을 찍습니다.
안동김문의 딸로 태어나서 민씨집안의 며느리로 어머니로 살다가신 여인
앞에, 먼 훗 날 친정의 한 후손이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묘한 감상에
젖어봅니다.
이때 휴대폰이 울립니다. 발신자는 항용 종친입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이 벌써 고성능 안테나에 잡힌 모양입니다. 웃음이 입가에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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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점 묘소에서 바라본 정창손 묘역
민점의 묘소를 찾는데 는 고양시 행신동에 사시는 여흥민씨 전서공파의 민갑섭 어르신의 도움이 컷 습니다. 제가 대화의 편의상 하담선조님의 후손이라 말씀드리자 너무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몇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여흥민씨 전서공파의 상당수가 하담 선조님의 외손이라고 하시며, 하담 할아버지의 후손이 괴산에 많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꼭 만나보기를 원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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