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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맹과니(靑盲) 해석에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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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1-01 07:34 조회1,9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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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맹과니(靑盲) 해석에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2001.12.30. 하담 문집 발간을 축하드리며 김시양 졸기를 본 게시판에 올린 바 있습니다.

내용중 청맹과니(靑盲)란 용어가 있는데 혹시 출전인〈조선조문인졸기〉를 보거나 보실 분이 편자 신현규님이 풀이한 사전적인 해석을 보고 크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동아출판사 이규태님 저〈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P134∼135를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져 하오니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端宗(단종)때 正言(정언)벼슬에 있던 선비 李孟專(이맹전)은 수양대군이 왕위를 넘나보는 야심이 노골화되자 善山(선산) 網正里(망정리)에 낙향, 靑盲(청맹)을 선언하고 30여 년을 눈 뜬 장님으로 살다가 죽었다. 생업을 영위할 수 없으니 밥 먹을 때 수저가 식구대로 없어 차례를 기다려 먹어야 할 만큼 가난했다. 이토록 철저한 자기 학대였기로 가족들은 가짜 장님이 진짜 장님이 된 줄로만 알았다. 한데 이 선비의 임종에서야 거짓 장님임을 알았다 한다.



集賢殿(집현전) 校理(교리)였던 具人文(구인문)도 수양대군의 야심이 노골화하자 해미(海美)에 낙향, 靑盲杜門(청맹두문)하였다. 유별나게 친분이 있던 成三問(성삼문)이 이 靑盲(청맹)을 문안하려 해미에 들러 詩(시)를 써 뜻을 주고받으려 했으나 이 선비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동지의 시마저도 끝내 읽지 않고 묵묵부답하더라고 성삼문은 전하고 있다.



수양대군이 靖難(정난)을 음모할 때 權節(권절)을 찾아가 술을 대접하고 그 음모를 귀띔하곤 했다. 이 불의의 음모를 들었다는 苛責(가책)을 씻고 싶어 고민하다가 끝내 "푸른 벙어리"(靑啞)임을 밝히고 귀머거리 행세를 시작한 것이다.



明宗(명종)때의 趙彦秀(조언수)가 吏曹正郞(이조정랑)으로 있을 때 한 판서로부터 당치 않은 청탁을 받았다. 이에 조언수는 눈만 굴리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고함을 쳐도 여전하였다. 정랑의 귀가 멀었는가고 호통을 쳐도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다. 이 "푸른 귀머거리"(靑聾) 행위를 곁에서 보고 있던 다른 관원들이 무척 통쾌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거짓 앉은뱅이로 저항한 鄭球(정구)의 이야기도 이 선비 기질을 적절히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己卯士禍(기묘사화)후 발의 연골이 붙어 일어설 없다 하여 무려 18년 동안이나 앉은뱅이 노릇을 했다. 한데 단 한번 며느리 맞이를 할 때 문득 일어나 걸음으로써 가족들도 거짓 앉은뱅이임을 알았다 한다.



이처럼 선비들의 節義(절의) 전통은 靑盲(청맹)이라는 전통적 습속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선비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떤 권력이나 체제에 의해서 압력을 받을 때, 극한적인 자신의 육체 학대로 그 옳은 맘을 지켜냈다. 그 레지스탕스의 표현을 장님이 아닌데 장님으로 살겠다는 선언으로 하였다. 이것이 곧 靑盲(청맹)이다.

청맹 뿐만 아니라, 들어도 못 듣는 靑聾(청농), 말할 줄 알면서 말을 못하는 靑啞(청아), 미치지 않았으면서 미친 靑狂(청광)들도 일련의 이 선비행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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