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9일 일요일 맑음 어제까지 늦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오늘은 따끈한 초가을 청명한 날씨다 쌀개방을 앞둔지도 모르는지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 들판이 차창가로 빠르게 스쳐 간다 열일 제펴놓고 달려 가는 고향길...... 오늘은 만취당 김선생 후산사 복향 고유일이다.실로 137년 만의 일이다 한말 고종 당시 국령에 의해 그만 둔 향사를 이제 정부에 의하여 복원된 후산사에 위패를 봉안 하여 다시 향사를 봉행하는 날이다. 철사후 28년뒤에는 (1896 丙申년)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로 사촌 선비들은 벌떼 같이 일어나 의병으로 일본 침략자들에 대항한다. 그로 인하여 와해(瓦海) 라 불리던 사촌 마을은 불바다가 되어 잿더미로 변 했지만......검게 변해 버린 주춧돌만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다 보며 대대로 전해오는 말씀만 있은 140 여년의 세월 이제 조상님들의 음덕과 후손들의 정성이 합하여 사촌 마을의 오늘 경사가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간략한 기사와 몇장의 사진으로 그 감격을 표현함에 무리가 따르겠으나 여기에 올려 드리려고 준비 중입니다......
1992년 김창회 족조님의 후산정사 기문에 보면... 아! 선조(先祖)가 역책(易甑)하신지 146년이 지난 1747년 정묘(丁卯)에 선생(先生)의 고산경행(高山景行)의 참뜻을 존모(尊慕)하여 재사(齋舍)를 세우고 기묘(己卯)에는 묘우(廟宇)가 완성(完成)되어 사림(士林)의 공의(公議)로 봉안절차(奉安節次)를 정(定)하고 후산정사(後山精舍)라 칭(稱)하였다. 계사(癸巳)에는 주사(廚舍)를 짓고 을미(乙未)에는 원장(垣墻)을 설치(設置)하여 그 해 12월 12일 에 사림(士林)과 내외 자손(內外 子孫)이 모인 가운데 위패(位牌)를 봉안(奉安)하고 100여년간 춘추향화(春秋香火)를 올리다가 1868년 무진(戊辰) 국령(國令)에 의해 묘우(廟宇)는 헐려 유지(遺趾)만 남고 정사(精舍)는 현존(現存)하니 후손(後孫)들의 개연추모(慨然追慕)의 감회(感懷)가 무궁(無窮)하다.
어느때 복설(復設)이 있기를 바라고 누변(累變)하는 창상(滄桑)과 작금(昨今)을 달리하는 세태(世態)에 전후사(前後事)를 징(徵)하고자 선조(先祖)의 실기(實記)를 상고(詳考)하여 전말(顚末)을 약기(略記)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행사 장면은 팝폴더 아이디 terius930 의 후산사폴더 안에 있습니다. 우선 필요 하신 분은 다운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관선문(후산서원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후산정사와 오늘의 복원건물 후산사가 있다
대문 밖 영접 ( 김창회 종친- 천사 김종덕선생 종손)-이근필 진성이씨 퇴계종손 어른
대문안 영접(김형수 종친- 후송재선생 후손)
시도기록-- 퇴계종손어른의 시도 모습을 사촌문중 도유사이신 김호승종친(김우회 종친 父)께서 지켜 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