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물현대사’ ‘암살범 안두희’편 <9월 24일(금) 밤10:0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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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24 07:29 조회1,454회 댓글0건본문
김주회 (2004-09-21 11:01:29, Hit : 34, Vote : 0)
KBS ‘인물현대사’ ‘암살범 안두희’편 <9월 24일(금) 밤10:00~11:00>
■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4/2004/09/009100004200409201635268.html) [새창에서 열기]
“안두희는 이승만 하수인 아닌 측근”
KBS ‘인물현대사’ 24일 ‘암살범 안두희’편
그동안 감춰져 온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1950년대 행적이 오는 24일 밤 10시 방송될 한국방송 <인물현대사>(연출 전우성)를 통해 밝혀진다. 특히 안두희가 1949년 백범 암살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의 핵심 정보공작원이었고, 1959년 일본의 북송선 폭파 공작의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최초로 공개돼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안두희가 김구 암살의 단순한 하수인이 아니라, 비밀우익결사의 핵심조직원이자 미군의 정보원이었고, 이승만 정권과의 연계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깊고 확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55년 미군 기밀 ‘308방첩대 보고서’ 최초 공개
“59년엔 재일교포 북송선 폭파 공작 미수도”
우선 55년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국 ‘308 방첩대’의 보고서가 최초로 공개돼, 안두희가 백범 암살 뒤에도 이승만 반대파를 제거하는 핵심 정보공작원이었음이 밝혀진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01년 안두희가 우익테러단체인 백의사 대원이자 미군 방첩대 시아이시(CIC)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큰 충격을 줬던 미국 국무성의 기밀보고서 ‘실리보고서’와 함께 발굴된 것으로, 발굴자인 정병준 박사는 이 문서를 <인물현대사>를 통해 최초로 공개했다. ‘308 방첩대 보고서’로 불리는 정보보고서
‘한국 정치사’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정관계의 거물이 총망라돼 있는데, 여기에 안두희가 거명돼 있다. 안두희는 이 보고서에 “이승만에게 가장 충성하는 지지자. 그는 공식적으로 이미 예편한 상태인 52년에도 중령으로 진급해 군에 몸담고 있었으며 청부 폭력단을 조직해 이승만의 반대파 탄압을 지휘한 인물. 56년 치러질 대선에서 이승만의 당선을 위해 공작 중인 이승만이 가장 총애하는 측근“이라고 묘사돼 있다. 이 문서를 발굴한 정 박사는 “이 문서는 1955년 현재 안두희가 한국 내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해석했다.
또, 안두희가 일본 정보기관에 미리 발각돼 실행되지 못한 1959년 일본의 북송선 폭파 공작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당시 일본 유력지 <주간 요미우리> 기사를 통해 확인됐다. <인물현대사> 제작진이 최초로 확인한 <주간 요미우리> 1959년 11월15일치는 “북송선 폭파를 위해 남한의 공작 대가가 와 있다. 그들은 경무대 기관이란 대통령직속 비밀기관과 연계돼 있으며, 실행반은 현역 장교 30여명선이고 이미 일본에 와 있는 책임자는 한독당 주석 김구를 암살한 A(안두희) 대령”이라고 폭로했다.
이밖에도 1950년대 주로 백범 계열 인사들의 입을 통해 음모론처럼 떠돌던 이야기들도 취재 과정에서 상당수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백범 암살 뒤, 안두희가 강원도 양구에서 2천여평짜리 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근처 11개 사단의 군납을 맡은 사업가였다는 사실도 안두희를 알던 사람의 증언을 통해 <인물현대사>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 KBS1TV 인물현대사
(http://www.kbs.co.kr/1tv/sisa/manhistory/) [새창에서 열기]
제목 : 반공, 정치사찰의 1인자, 암살범 안두희 편
2004년 9월 24일 (금) 밤 10:00~11:00
연출 : 전우성 PD
백범의 죽음 55년, 안두희의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지금까지 안두희의 1950년대 행적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군대를 예편한 후 양구에서 군납공장을 하며 돈을 모았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1950년대 안두희에 대해서는 많은 풍문이 있었다. 혹자는 그가 이승만의 양아들이라고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여전히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고있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주로 백범계열 인사들의 입과 입을 통해 음모론처럼 떠돌던 다소 ‘황당한’ 이야기들, 취재과정에서 상당수 그것이 사실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최초 확인, 1959년 북송선 폭파 공작 책임자 안두희
1959년 이승만 정권에게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체제의 운명이 걸린 심각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의 주간 요미우리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북송선을 폭파하기 위해 남한의 비밀 공작대가 일본에 와 있으며 그 실행 책임자가 한독당의 주석 김구를 암살한 A대령이라는 것이다. 김구를 암살한 A대령... 바로 안두희였다. 퇴역군인, 군납사업자로 포장된 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최초공개, 美<308 방첩대 보고서> 이승만식 공작정치의 핵심 인물, 안두희
미 육군 308방첩대는 당시 일본 주둔 병력이었다. 1955년 생산된 이 부대의 정보 보고서 <한국 정치사(The History of Korea Polotics)>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정관계의 거물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놀랍게도 안두희가 등장한다. 여기서 안두희는 이승만 반대파 제거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승만의 손도끼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이 문서를 발굴한 정병준 박사에 따르면 “1955년 현재 안두희가 한국내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해석한다. 미국 방첩대가 주목하고 있던 안두희, 그는 백범 암살이후에도 음지에서 활동하던 이승만 정권의 핵심 정보공작원이었다.
반공, 정보의 1인자
안두희는 실제로 살아 생전에 자신이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남한 정치사찰의 일인자였다고 자랑한 바 있다. 하지만 안두희의 주장만 있었을 뿐 아무런 사실 근거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 중요성이 평가절하 되었다.
2001년 발굴된 미국무성의 기밀보고서 일명 <실리보고서>에는 안두희의 중요한 정보경력이 담겨 있다. 안두희가 우익테러단체인 백의사의 대원이자 미군 방첩대 CIC 요원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암살 당시에도 안두희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정보 공작원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안두희는 김구 암살의 단순한 하수인이 아니었다. 월남 출신의 비밀우익결사의 핵심조직원 이자 미군의 정보원, 반공의식으로 무장하고 훈련된, 고르고 고른 암살의 최적격자였다.
반공의 이름으로 김구를 쏘다.
안두희의 집안은 평안남도에서 손꼽히는 갑부였다. 해방 후 북한의 대대적인 토지개혁이 실시되자 그의 집안은 몰락했다. 빈손으로 남한으로 내려온 안두희는 서북청년단 간부가 되면서 철저한 반공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 안두희에게 48년 김구의 행보는 위험한 것이었다. 반공 반탁의 상징이었던 김구가 북측의 제의에 따라 평양행을 발표하고 평화통일 노선을 천명한 것은 반공과 단정을 외치던 많은 우익세력들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했다. 반공과 애국의 이름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정권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김구는 제거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남한 반공 정보의 1인자 안두희가 그 공작에 투입됐다.
망각과 시간지체의 상징, 안두희
안두희는 지난 96년 자신의 집에서 한 버스기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살해된 그의 집에는 ‘백수청복’이라고 쓰여진 액자가 걸려있었다. 백수청복을 바라던 암살범, 그는 끝까지 자신이 저지른 암살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었고 계속되는 증언과 번복의 악순환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공식적인 국가기구가 처음으로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선 것은 1994년 국회법사위, 김구 사후 거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두희는 우리 현대사의 전형적인 특성, 망각과 시간지체를 상징한다.
솔내 (2004-09-21 14:58:56)
아직도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 배후!! 이런 잔재의 청산을 막으려는 기득권자들의 발버둥치며 용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민족의 정기가 바로서야 우리민족의 미래가 밝아지고 후일로 또 미루면 이승만시절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전철을 밟게 되지나 않을지 자못 금심스럽습니다. 현재야 말로 백범선생님의 그 숭고하고 위대하셨던
이상을 바로 보고 실천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백범선생님의 탁월한 선견지명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그 理想의 실현에는 주저하는 듯한 우리의 태도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김윤만 (2004-09-21 18:26:05)
제2의 안두희가 요즈음에도 있으니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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