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당(晩保堂) 김수동(金壽童)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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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0-08 23:03 조회1,526회 댓글0건본문
11. 당대 제1의 事大表奏(사대표주)
일곱 살 때에 시를 지을 줄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재주를 기특하게 여겼다. <속동문선>에 제5권 <달밤 서호(西湖)에 놀며 원운(元韻) 15자(字)를 써 각기 지음>[月夜遊西湖用元韻十五字各賦], 제8권 <야좌 유음>(夜坐有吟), 제10권 <징심헌 차운>(澄心軒次韻) 이 실려 있고, 그 외에 <鎭安 馬耳山> 등의 시문이 전한다.
◇ 근역서화징 (1928, 오세창)
---신용개가 지은 비명에 이르기를 "공은 예서를 잘 쓰고 事大表奏(사대표주, 중국에 올리는 表奏文)를 쓰는데 뛰어나서 한 때의 모든 신료들이 모두 제일로 추대하였다." (국조인물고)
[국조인물고]에는 "신용개찬명왈 공선어예법 능서사대표주 일시제료 함추위제1"이라 하였다.
12. 당대 제1의 隸書
◇ 근역서화징 (1928, 오세창), ◇ 한국서예사 (1975, 김기승)
서예에 능하였는데 특히 隸書는 당대 제1인자의 칭을 받았다.
글씨에 능했으니 예서를 특히 잘 썼다. (해동명신록) (연려실기술) [해동명신록] 및 [연려실기술]에는 "공서 선어예법"이라 하였다.
양주의 청평 韓繼純의 묘비를 썼다. (해동금석총목) 한계순 비의 해서는 속되다. (동국금석평) [동국금석평]에 그가 쓴 양주의 한청 평계순 묘비의 楷書(해서)를 "俗體"라고 평하였다. 역시 그의 隸書 솜씨만은 못하였었던 모양이다.
◇ 대동금석서 대동금석속목 p47
청평 한계순비(韓繼純묘비, 1431∼1486) : 재 양주, 김뉴 문, 이조참판 김수동 서
윤비 (윤여림지선묘비) 비음 : 예조좌랑 김수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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