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재 휘 희수(諱 希壽) 필적(이 인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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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10-17 19:48 조회3,214회 댓글0건본문
가족과 함께 하는 가을 산행은 정말 좋다.
김밥과 과일 몇
개. 그리고 탁주 한 병.....
더구나 하산
길에 선조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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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신도비(유연재 김희수 서. 남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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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신도비 이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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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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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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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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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묘소, 묘표, 동자석, 망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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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군(寧海君) 이당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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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군(寧海君) [1436(세종 18)∼1478(성종 9)]
휘는 당, 자는 옹지, 시호는 안도(安悼). 세종대왕의
9남이며 어머니는 신빈
김씨이다. 1442년(세종 24) 7세 때 영해군에 봉해지고
소덕대부(昭德大夫)의 품계
를 받았다. 진기한 놀이와 춤 · 여색 등은
삼가했다. 평소에 중풍기가 있었는데
1478년(성종 9) 4월에 더욱 심해져서 그
해 5월 5일에 향년 43세에 별세했다.
성종대왕은 부음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3일간 조정일을 거두고 안도(安悼)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1872년(고종 9)에는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임천군부인 평산신씨이고 2남 1녀를 두었다.
묘소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산 남쪽 무수동 기슭에
양위 각폄으로 따로 있고
묘비와 석물이 갖춰져 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에
소재한 소덕사에 위패를
모시고 매년 5월 5일 기신제를 봉행하며 음력 10월 12일
전국 각지 후손들이 산소에
모여 시절향사(時節享祀)를 올리고 있다.
신도비의 상태가 너무 좋다. 마모 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양주에서 본 성희안 신도비의 보존 상태가 좋았는데 그에 버금간다.
신도비
부근은 전주이씨의 집성촌으로 영해군 후손들이 세거 하고 있다.
신도비 및 묘역은
묘하의 느티나무가든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 또한 영해군의
후손이다.
어느 날 산행 후, 느티나무가든 정원에
자리를 잡고 탁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신도비의 탁본을 하는 나를 그리며 귀가를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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