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례 묻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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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4-10-19 19:28 조회1,850회 댓글0건본문
최준례 여사 묘비 앞에서
http://www.kimkoo.or.kr/images/photo/photo-006-1.jpg
왼쪽 : 신 · 백범 선생 · 곽낙원 · 인
회포를 돕는 비석 / 동아일보. 1924. 2. 18. 월
이 사진은 항자 보도한 바와 가치 사회를 위하야 무한한 고초와 분투하는 남편을 맛나서 남이 격지 못한 고생으로 간장을 녹이다가 몇천리 밖인 다른 나라에서 이 세상을 떠난 김구(金九) 씨의 부인 최준례(崔遵禮) 녀사의 무덤에 세운 빗돌이다. 이 비는 상해에 잇는 동포들이 그의 사십 평생의 고적하고 간난한 경우를 불상히 녁이여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여러 돈을 모아서 세운 것인대 조선어학자 김두봉(朝鮮語學者 金枓奉) 씨의 지은 순 조선문의 비문으로 짓고 이 빗돌 위에 잇는 늙은 부인은 그의 싀어머니 곽 씨(郭 氏.66)이요, 모자 쓴 남자는 그 남편 김구(金九.49) 씨요, 오른편에 있는 아해는 큰 아들 김인(金仁.5)이요, 왼편에 잇는 아해는 그 두째 아들 김신(金信.2)이다. 늙은 싀모, 어린 자손, 더욱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표랑하는 남편을 두고 죽을 때에 그 부인의 눈이 엇지 참아 감기엇스랴 ! 쓸쓸한 타향에 가족을 두고 외로히 누은 그에게 이 빗돌만이 쓸쓸한 회포를 더욱 도울 뿐이다.
http://www.kimkoo.or.kr/images/photo/photo-006-1.jpg
왼쪽 : 신 · 백범 선생 · 곽낙원 · 인
회포를 돕는 비석 / 동아일보. 1924. 2. 18. 월
이 사진은 항자 보도한 바와 가치 사회를 위하야 무한한 고초와 분투하는 남편을 맛나서 남이 격지 못한 고생으로 간장을 녹이다가 몇천리 밖인 다른 나라에서 이 세상을 떠난 김구(金九) 씨의 부인 최준례(崔遵禮) 녀사의 무덤에 세운 빗돌이다. 이 비는 상해에 잇는 동포들이 그의 사십 평생의 고적하고 간난한 경우를 불상히 녁이여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여러 돈을 모아서 세운 것인대 조선어학자 김두봉(朝鮮語學者 金枓奉) 씨의 지은 순 조선문의 비문으로 짓고 이 빗돌 위에 잇는 늙은 부인은 그의 싀어머니 곽 씨(郭 氏.66)이요, 모자 쓴 남자는 그 남편 김구(金九.49) 씨요, 오른편에 있는 아해는 큰 아들 김인(金仁.5)이요, 왼편에 잇는 아해는 그 두째 아들 김신(金信.2)이다. 늙은 싀모, 어린 자손, 더욱 뜻을 이루지 못하고 표랑하는 남편을 두고 죽을 때에 그 부인의 눈이 엇지 참아 감기엇스랴 ! 쓸쓸한 타향에 가족을 두고 외로히 누은 그에게 이 빗돌만이 쓸쓸한 회포를 더욱 도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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