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묘역참배를 다녀와서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2-01-08 16:31 조회1,834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 묘역참배를 다녀와서
어제는 미친 듯이 눈바람이 날리더니 밤에도 눈이 내렸는지 오늘 아침 5시에 일어나 보니 온통 눈 세상입니다. 6시에 시내버스를 타고 엉긍 엉금 기어오는데 마치 雪國에 온 듯 합니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로 안동에 있는 충렬공 묘역참배를 다녀왔습니다. 보고 느낀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토요일 퇴근시간을 넘기고 잔 서류를 정리하다가 3시반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갑자기 어디 1박 여행이나 가자고 한마디 한다. 옷을 챙겨 입고 간단한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아내, 아들, 딸, 나 우리집 네 식구는 약간은 役馬氣가 있는데, 연말연시에 좀 바빠서 한동한 여행을 가지 못했다. 집을 나서니 갑자기 안동에 있는 충렬공 할아버지 유적지를 보고 싶어졌다. 안동으로 방향을 잡았다.
청주-괴산-문경-예천을 거쳐 저녁 7시에 안동 시내에 도착해서 하얀 대형 간판에 검은 옛 글씨체로 [안동간고등어식당]이라고 씌어 있고 KBS,MBC 등 국내 주요 방송사와 일본 무슨 무슨 TV에서 방영했다고 자랑을 잔뜩 늘어 놓은 식당에 들어가 안동별미인 간고등어구이 정식으로 저녁을 해결한 다음, 여관에서 여장을 풀었다.
오랜만에 보내는 타향에서의 하루밤이라 약간은 낯설고 집 안방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향수가 소록소록 새어 나온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나와서 영호대교를 건너 낙동강변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영호루를 찾았다. 이곳은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어린시절 자주 찾으시고 일본정벌차 출정길에 들러서 詩를 남기신 곳이고, 또한 둘째아들 김흔, 현손 김구용 선조와 사위 채홍철 등이 또한 찾아 유상하고 詩를 남기신 곳으로 옛부터 한수 이남의 3대 누각의 하나로 이름난 곳이다.
과연 영호루에 올라보니 발 아래 절벽 저 아래로는 낙동강이 드넓게 흐르고 강바닥은 얼어 붙어 하얗게 차갑고, 날씨도 쾌청하고 공기는 시리도록 맑아 안동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영호루 현판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와 있을 때 친필로 쓴 것이라 하고, 안동 라이온스에서 영호루와 관련된 옛 선인들의 이름난 詩를 선정하여 액자로 만들어 게시해 둘러 놓았는데, 이색, 정도전, 정몽주, 우탁, 이현보, 이황 등의 시가 보이고 권근 옆에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의 詩도 게시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기쁘고 반갑다. 다만 김흔 장군과 김구용 선조의 시가 없는 것이 아쉽다.
영호루를 내려와 다시 영호대교를 건너 강변도로를 따라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올라가다 철길이 뜷고 지나간 자리에 있는 임청각 군자정과 신세동 7층전탑을 일별하고, 안동댐에 도착하여 안동민속박물관, 민속촌, 태조왕건 촬영장을 둘러보고 이곳에서 안동별미인 헛제사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내려와 도산서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와룡면 소재지를 지나 오천리에 다다라 광산김씨 예안파 유적지인 오천유적지(054-852-5414)에 들렀다. 이곳은 죽송리 능골에 있는 충렬공 할아버지 묘역 위에 묘가 있는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 참판공 김효로와 그의 아들들, 손자들 등 후손들의 사당, 종가, 정자가 밀집되어 있는데, 건물들이 여간 예쁘지가 않았다.
또한 장판각과 숭원각에는 어마어마한 책자와 교지 등 옛 유물들이 꽉 들어차 있다. 안동댐 수몰로 건물들을 이곳으로 옮길 때 종가집 천정에서 발견한 고서 등이라고 한다. 대대의 교지 등이 모두 소장되어 있었고, 천장에 보관된 관계로 전란에도 잃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오게 되었다고 한다.
광산김씨 예안파 김효로 후손인 관리인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곳은 지금은 공개를 안 하고 있는데 오늘은 귀한 손님들이 와서 열어 놓았는데, 때마침 나도 관람하게 된 것이라며 운이 좋다고 한다. 내가 죽송리 능골 충렬공 할아버지와 김효로 묘 이야기를 물었더니 내력을 모두 잘 알고 있고, 우리 두 집안은 옛날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라고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나와 차를 몰아 도산서원(054-856-1073)에 도착했다. 퇴계종택 가는 길은 얼어 붙어 갈 수 없다고 하여 포기하고 도산서원으로 들어섰다.
퇴계선생이 친히 지으시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 등 전체를 일별하고 내려 오는데 건물들이 너무 오밀조밀하여 갑갑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앞마당에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마당의 시원하고 넉넉한 맛이 없어 역시 갑갑한 느낌이 더 하다.
퇴계의 문인인 (도평)김사원, (도평)김종덕, (도평)김종발, (제학)김충갑, (제학)김제갑, (서운)김수 등 우리 가문의 선조들께서도 이 길을 오갔으리라 상상하면서 내려왔다.
죽송리를 가기 위해 오던 길로 다시 내려오다 녹전으로 가는 삼거리 못 미쳐 한국국학진흥원(054-851-0700)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깨끗하고 웅장한 건물로 앞으로는 낙동강을 내려다 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들어가 일별하니 1층 전시관에는 유교문화 전시관이고, 2층에는 온통 퇴계관련 전시관이다. 퇴계와 영남학파 계보도가 벽 한면 전체에 그려져 있는데, 김사원, 김종덕, 김종발 선조의 휘자가 보이고, 김종덕 선조의 문인으로 10여명이 연결되어 있다.
책장을 훓어보니 [삼소재문집 번역본]이라는 책이 눈에 띈다. 1995년도에 서경출판사(422-0134)에서 출간한 것이고 저자는 5대손 김진황으로 되어 있다. [삼소재 문집]은 안동시 소산동에 있는 우리 선안동김문의 종가인 삼소재의 주인이셨던 (익원)김종락 선조의 문집이다. 책장을 넘겨보니 선생의 시문과 우리 가문 선조 관련 내용을 번역해 놓아 보기 좋다. 한 권 구하고 싶어진다.
삼거리에서 녹전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달리는데 날씨는 쾌청하고 공기는 맑고 차가운 바람 속에 따뜻한 햇빛이 스처간다. 정말로 여행하는 기분이 절로 난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구송 삼거리에 도착한 순간 양지바른 언덕에 눈에 익은 건물이 눈 앞에 다가선다. 충렬공 신도비각이었다.
지난 1996년도에 충렬공 묘역 참배를 왔을땐 이곳 신도비를 찾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무척 반갑다. 신도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사진 두어장 찍고 하는데, 전에 영환 종친과 윤만 종친께서 말씀하신 데로 신도비에는 "상락君개국공" 으로 씌어 있고, 옆에 세워놓은 표지석에는 "상락郡개국공"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조금 내로오다 보니 6년전에 보았던 죽송리로 들어가는 다리와 "충렬공 김방경묘소 입구" 표지석이 2개나 눈에 들어온다. 5년전에는 길이 좁아 묘역까지는 한참을 걸어 갔었는데, 길이 확장되어 있어 금새 충렬공 재사인 음수재에 닿았다.
우리 홈페이지에 정중 종친께서 소개하여 주신 데로 음수재가 새옷으로 뽀얗게 갈아입고 양지바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뛰어가 한 바퀴 돌아보고 묘역 오르는 계단을 올라갔다. 충렬공 할아버지께 참배를 드리고 묘역을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묘비(묘갈)을 보니 1602년 이시발 撰, 조우인 書로 세웠던 충렬공 묘갈을 그대로 옮겨서 단기 4299년 병인에 (서기 1966) 오은공 (안렴사공) 18대손 思玉 書, 사촌 소산 오은공 후손일동이 개수한 것으로 되어 있고, 앞면 관직명을 보니 "상락君개국공"으로 씌어있다.
충렬공 할아버지 묘역과 그 위에 있는 오천유적지에서 보았던 광산김씨 예안파 입향조 참판공 김효로 공의 묘역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재직사 아저씨께서 음수재와 영정각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음수재 현판을 보니 庚辰 (서기 1940) 仲夏에 金文演 印이라 되어 있다.
영정각에 분향참배 드리고 재직사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니 정의공파 봉회 종친이라고 하시고 닷새전에 새로 이사를 오신 분이라고 한다. 안동김씨 위토 4천평과 광산김씨 위토 3천평을 같이 경작하면서 충렬공 할아버지와 광산김씨 묘역과 재사를 같이 관리하신다고 한다. 재직사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대접받고 나오니 어느새 시간이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다.
뒤를 돌아보며 죽송리를 나와 안동시내를 거쳐 전날 오던 길로 예천-문경-괴산을 거쳐 청주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까만 밤길을 달여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충렬공 재사인 음수재를 훌륭하게 재건하여 놓았는데 속이 비어 있는 듯한 서운한 느낌이 내내 가시지 않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음수재를 우리 종친들이 자주 이용하도록 하여 일년에 한두번 시향 준비만 하는 곳이 아닌 상시 활용하는 우리 문중의 구심체가 되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려면 하룻밤 숙박이 가능하고 또한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음수재 방 한칸을 가칭 "충렬공 문고" 로 꾸며서 충렬공 관련 자료와 우리 문중 관련 자료를 비치해 놓고 복사기나 컴퓨터 1대 정도 비치해 놓으면, 우리 종친들이 하루밤 유하면서 문중 자료를 열람도 하고 복사도 하면서 하루밤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한다.
작년 연말에 춘천-대구간 중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어 이제 안동은 전국에서 2-4시간이면 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안동에는 이곳 죽송리 충렬공 묘역 외에도 시내에는 영호루, 풍산읍 회곡리에는 충렬공 유허비와 죽주박씨 설단묘, 상락대 등이 있고, 풍산읍 소산동에는 종가 삼소재, 의성 사촌리에는 도평의공파 집성촌, 예천에는 물계서당, 소천서원 등이 있어 답사할 곳도 많이 있다.
1년에 서너번 정도 토요일날 죽송리에 와서 하루밤을 유하면서 묘역도 참배하고 자료 열람도 하면서 인근에 있는 문중 유적지도 탐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에 올 때는 몇 권이라도 책자와 자료를 가지고 와서 비치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까만 밤길을 달려 청주로 오면서 내내 뿌듯한 구상을 하였다.
아침일찍 출근하여 사무실에 앉아서
김 주 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