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여주군지 제출자료 06---김이 행록 (지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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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12 13:29 조회1,270회 댓글0건본문
<이암집>(송인), <국조인물고>
김공망 묘갈명(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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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甲子年 1564년 선조 원년) 3월 기묘일(己卯日)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享年)이 79세이다. 김이 등이 관[관]을 부여잡고 돌아와 6월 임오일(壬午日)에 공의 묘소에 부장(附葬)하였다.
4남 1녀를 두었으니, 4남 중 순(淳)은 종사랑(從士郞)인데 먼저 죽었고, 다음이 바로 이(이)인데 현풍 현감(玄風縣監)이며, 다음인 운(운)은 부사직(副司直)이고, 다음인 준(浚)은 만호(萬戶)이다. 딸은 습독(習讀) 조섬(趙섬)에게 출가하였다.
종사랑은 2남 2녀를, 현풍 현감은 2남 1녀를, 부사직은 3남 3녀를, 만호는 1남 1녀를 낳았고, 외손(外孫)은 1남 5녀이며, 증손(曾孫) 또한 약간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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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송인이 현풍 현감(=김이)과는 서로 알고 지낸 지가 대체로 오래 되었는데, 어느 날 상복(喪服) 차림으로 와서 묘갈문(墓碣文)을 청하기를, “그대의 선군(先君, =송지한) 또한 우리 아버지(=김공망)를 아시는 터였다.” 하므로, 송인이 사양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 가장(家狀)을 추려서 명문(銘文)을 지었는데, -----
융경 3년 기사 (己巳: 선조2, 1569) 월 일에, 봉헌대부 행도청부도청관 여성위 이암( 庵) ★송인(宋寅) 삼가 글을 짓고, 장예원사평 현풍현감 차남 ★이(삼수변伊) 슬퍼하며 글을 쓰고 전하여 김공망 묘갈을 세웠다.
그후 묘갈을 분실하여, 서기 2003년 4월 일 안동김씨 안렴사공파 참판공지파 목사공계 김포종회 회원이 삼가 다시 세웠다.
양주 사곶( 串)에 김공망의 차남 이(삼수변伊) 의 묘갈인 <김사평이갈(金司評?碣) >이 있다.
한국문집총간 지호집(芝湖集) 伴吟翁金公行錄 己未九月 이선 1856 - -
芝湖集卷之十二
行錄
伴吟翁金公行錄 己未九月
公諱?。字漑之。號伴吟翁。安東人。其先出於新羅敬順王傅。麗朝世有衣冠卿相相望。而忠烈公方慶。最以勳業著聞。有諱士廉。官至司諫。國初不仕以終。於公爲七代祖也。高祖諱丸。承文院判校。曾祖諱宗孫。司憲府監察贈戶曹參議。祖諱城。部將贈兵曹參判。考諱公望。文科海州牧使。?慶州李氏。濟用監主簿。諱復亨之女。主簿卽文戴公昌寧成俔之壻也。公以正德乙亥生。早失所?。能自奮勵。篤志爲業。屢應擧。輒不?。屈意就蔭仕。由殿中。三爲知縣。卽南平,玄風,唐津等邑也。萬曆庚辰閏四月十七日疾卒。壽六十六。葬于楊州?院先塋背乾原。距牧使公基僅幾步。公姿性端重。襟韻秀朗。事偏親以孝。待兄弟以友。至於朋友親戚。皆盡其信義敦睦之道。爲詩甚雅健。筆法極精妙。人皆傳誦寶玩。所與交皆一時名勝。而鄭林塘,許草堂,宋?菴,任友皐。尤所契許。所著詩稿。有?菴公所批選者藏於家。竟遺失不傳。惜哉。配淑人高靈朴氏。別提自?之女。判決事?之孫也。仁順慈和。甚有婦道。先公二年生。後公七年丙戌卒。?葬公墓。有二男一女。長男有礪。引儀。次進礪。僉樞。女適柳德容。側室又有三男一女。男正愷,仲愷,季愷。女爲大諫宋應漑妾。有礪無後。進礪娶完山李氏。僉樞輪之女。生一男一女。男?。武科同知。女適吏曹參判贈領議政金槃。卽選外王父也。公歿近百年。而尙無墓刻。僉樞公有所記壙誌。而亦甚疏略。其於公之言行履歷。無以得其詳也。玆敢略爲撰次如右。以傳於世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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