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군지 제출자료 07---김탁(金濯), 김수남(金壽男, 1547∼1605), 김지(金 日至, 157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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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11 09:50 조회1,701회 댓글1건본문
김탁(金濯)
북병사와 훈련원도정을 지낸 김공석(金公奭, 1477∼1553)과 정부인(貞夫人) 안악(安岳)이씨<이조좌랑 희순(希舜)의 딸, 대사간 평(枰)의 손녀> 사이에 2남(김탁, 김황)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55년 제용감참봉(濟用監參奉)으로 있었고, 동생 김황(金滉)은 선공가감역(繕工假監役)이었다.
1552년(명종7) 부친 김공석이 청홍도(淸洪道)의 수영(水營)에서 질병으로 향년 77세로 세상을 마치자, 다음 해 2월 25일에 터를 가려 여주(驪州) 사동(蛇洞)의 선영 곁에 장례를 지내고,
1555년(명종10) 고애자(孤哀子) 김탁이 빗돌을 갈고 깨끗하게 한 뒤에 4촌형 김주에게 청하기를, “선군의 자취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의당 형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형이 꼭 명을 지어주시오.” 하였다. 김주(金澍)가 숙부 김공석(金公奭)의 신도비문을 지었고, 당대의 명필 송인(宋寅)이 글씨를 쓰고, 박영(朴泳)이 전(篆)을 써서 신도비를 세웠다.
김탁은 박세도(朴世燾)의 딸을 아내로 맞아 2남 4녀를 낳았다. 장남 수남(壽男)은 후에 남병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김탁의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참고문헌] <우암집>(김주)
김수남(金壽男) 1547년(명종2)∼1605년(선조28))
안렴사공 김사렴(金士廉)의 9세손이며, 북병사와 훈련원도정을 지낸 김공석(金公奭, 1477∼1553)의 손자이다. 자는 인보(仁甫).
1574년(선조7)에 무과에 급제하고 누진을 거듭하여 남병사(함경남도 병마절도사)에 이르렀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김지(金 日至) 1572년(선조5)∼1628년(인조6))
안렴사공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북병사와 훈련원도정을 지낸 김공석(金公奭, 1477∼1553)의 증손자이다. 자는 여회(汝晦).
1594년(선조27)에 무과에 급제하고 누진하여 영변부사에 임명되었으나 광해혼조에 불사하고 후에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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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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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