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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태권 종친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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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1-26 18:03 조회1,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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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공파이신 태권 종친님을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상님들의 묘가 충남 전의쪽에 있고, 아버님이 회자 항렬이면 우리 선안동김씨 (일명 구안동김씨) 전서공파가 확실합니다.



참고로 태권 종친님은

우리 문중의 비조이신 김알지로부터는 60대손이 되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신 경순왕으로부터는 33대손이 되고,

우리 선안동김씨의 시조이신 김숙승으로부터는 31대손이 되고,

중시조이신 김방경으로부터는 25대손이 되고,

분파조이신 전서공 김성목으로부터는 21대손이 되십니다.





저는 재작년에 충남 연기군에 있는 전서공파 묘역 (김구-김성목-김휴----, 김휴유허비)를 탐방한 바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전서공파 관련 자료를 두서없이 모두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기군지, 1988>



▣ 金休 고려충정왕2년 (1350) - ?



안동인, 자는 鍊父(연부), 정몽주 선생의 문하생이며 고려 공민왕때 檢校近侍(검교근시)라는 벼슬자리에 올랐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를 때 護軍의 명을 받았으나 연로한 아버지 (고려 공조판서를 지낸 바 있는 金成牧)를 모시기 위하여 직을 사양하고 송도에서 여러 신하들과 통곡으로 작별하고 현재의 연기군 전의면 운주산 아래 거처할 장소를 구하여 은거하였다.



태조는 다시 가선검교 한성좌윤이라는 벼슬을 내려 그를 불렀으나 그는 끝내 나가지 아니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닦아 그의 문하생 중에서 충효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그의 덕망과 지조가 훌륭하다 하여 유림 명인들이 유허비를 세웠는데 연기군 전의면 미곡리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그가 은거하고 있던 전동면 미곡리를 그의 호를 따라 학당리라 일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림 : 김휴 유허비

<구연기군지, 고장의 빛나는 얼과 전통(연기군), 해동인물지>







▣ 金益精 ? - 세종31년 (1449)



안동인, 자는 자?, 호는 雲庵이며 金休의 아들이다.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태어난 그는 태조5년(1396)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이어 습유, 헌납, 사간을 역임하고 대사헌의 직을 맡고 있던 중 노친을 모시기 위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부모가 사망하자 6년간을 시묘하였다.



이어 태종의 부름을 받고 다시 정계에 진출하여 충청,전라,경기관찰사를 지내고 세종17년(1435)에는 동지총제, 경창부윤을 거쳐 이조, 형조, 예조참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충효정신이 남달리 뛰어났다고 하는 그는 훈몽강학을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가 죽자 세조는 정문을 세울 것을 명하여 현재 연기군 전동면 양곡리에 그의 효자비가 있고 경기도 양주군 고령사전리에 그의 묘가 있다.



<태조,태종,세종실록, 해동인물지, 한국인명대사전, 구연기군지, 연기군정려대장>







▣ 金師俊 세종21년(1439)-?



안동인, 자는 明叔, 호는 思庵, 형조참의 ★金龜年의 둘째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김귀년이 1455년 단종이 폐위되고 사육신이 처형, 집현전이 폐지되는 사건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연기군 전동면 양곡리로 돌아온 이래로 어린 나이에도 항상 부모를 효로서 섬겼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부친이 ?병이라는 모진 부스럼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근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때가 엄동설한인지라 그는 매일을 연못 빙판에 들어가서 기도하던 중에 연못에서 연근이 나왔고 이를 먹은 부친은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한다.



부친이 75살에 사망하자 3년을 시묘하였는데 이를 들은 예종(1469)이 친히 칙사를 보내어 위로하고 그의 선산을 능참 ★복사누락 973쪽







▣ 金濟鼎 선조11년(1578)- 인조5년(1627)



안동인, 자는 僉中이다. 선조12년(1578) 전동면 양곡리 (지금의 전의면 양곡리)에서 태어난 그는 1605년 무과에 급제하여 금부직에 있다가 1624년 의주의 방어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에 인조5년(1627)에 강홍립의 난을 맞이하였다.



난이 일어나자 그는 당시 의주부윤으로 있던 이완, 남이흥과 더불어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적의 장수 강로의 세력에 눌려 이완이 전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용전을 거듭하였으나 적의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적진에서 대검을 휘두르다가 전사하였다.



그후 영조50년(1774)에 우승지 조영진이 상소하여 인조묘에 당시 신하에게 내리는 제문인 치제문을 내리도록 하였으며 제전을 내려 영묘와 정려를 짓도록 하고 忠壯이라는 시호를 주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는 종세가 여의치 못하여 영묘와 정려를 건립하지 못하고 연기군 전의면 신흥리(생촌부락)에 현판만 보관중이다.



<연기지, 구연기읍지>







▣ 金百悅 순조16년(1816) - ?



안동인, 자는 汝行, 연기군 동면 내판리에서 태어났다.



5살의 어린 나이에 부친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매일같이 지성으로 간호하던 중 하루는 꿈에 신인이 나타나 곶감이 아버지의 병에 특효라고 일러주어 다음날 이를 구하여 주니 며칠 만에 차도가 있어 병이 나았다 한다.



이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자 하늘에서 낸 효자라 하여 고종27년(1890)에 나라에서 동몽교관 조봉대부의 벼슬을 주었으며 정문을 세워주었는데 이는 현재 연기군 동면 내판리에 위치하고 있다.



<구연기군지, 연기군정려대장>







▣ 金休 유허비



소재지 : 전동면 미곡리 학당부락

이 유허비는 어느 연대에 건립하였는지 미상이나 다만 李采(이채) 찬, 金鑛(김광) 서로 되어 있고, 현재 그 지점은 밭으로 되어 있다.



비의 내용은 김휴가 정몽주가 순절하자 세상을 한탄하고 벼슬길에서 떠나 향리로 내려와서 강학으로 일생을 마친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검교김공 유허비

<비후면> 書고려검교학당김공狀錄後

가선대부 호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삼주 이채 찬

통정대부 행형조참의 연안 김광 서













<여말충의열전, 고려숭의회, 1995>



靖節編

▣ 典書 金成牧(?-?)

*방경- (1/5)선- (2/4)승용- (2/2)구- (1/2)전서공 성목



공은 안동인으로 구(王+久)의 아들이요, 밀직사사 承用의 손자요, 평장사 方慶의 후손이다.

여말이 벼슬이 공조전서에 이르렀다.

때에 고려를 반역하여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조정에 창궐하여 고려의 운이 기울어지자 선생은 문하평리 변빈, 판서 성만용, 박사 정몽주, 제학 홍재, 대사성 이색, 전서 조열, 전사 이오, 단구재 김후 등과 공당에서 기약없이 모여 술을 기울이며 정란을 상심 개탄하다가 합잠시를 지어 읊고 눈물을 흘리며 이색이 말하기를

"옛날 은나라에 3仁이 있어 나라가 망하자 비간은 죽고, 미자는 가고, 기자는 종이 되었다고 하니 우리도 각자의 의사에 따라 행동합시다" 하고 마침내 고려가 망함에 모두 망복지신의 절의를 지켜 은거하였다.





義節編

▣ 學堂 金休 (?-?)

*방경- (1/5)선- (2/4)승용- (2/2)구- (1/2)전서공 성목- 휴



자는 연부요 호는 학당이고 成牧의 자로 안동인이다.

공은 고려말에 사간을 역임하고 <金承露 實錄>

고려가 망함에 향리에 퇴둔하여 조선조에서 여러차례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교육하면서 그 貞節을 지켰다. <대동운부군옥>

유고(遺稿)가 있다.











<연기군청 홈페이지 (http://gun.yeongi.chungnam.kr/)>



▣ 김휴 유허비



소 재 지 : 연기군 전동면 미곡리

시 대 : 고려시대

안동인으로 자는 연부 정몽주 선생의 문하생이며 고려 공민왕때 검역 근시라는 벼슬 자리에 올랐다.

이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오를때 호군의 명을 받았으나 연로한 아버지 (고려 공조판서를 지낸바 있는 감성목)을 모시기 위하여 직을 사양하고 송도에서 여러 신하들과 통곡으로 작별하고 현재의 연기군 전의면 운주산 아래 거처할 장소를 구하여 은거하였다.

태조는 다시 가선검교 한성좌윤 이라는 벼슬을 내려 그를 불렀으나 그는 끝내 나가지 않이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더욱 닦아 후세 양성에 전력 하였으며 그의 문하생 중에서 충효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니 그의 덕망과 지조가 훌륭하다 하여 유림명인들이 유허비를 세웠는데 연기군 전동면 미곡리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그가 은거하고 있던 전동면 미곡리를 그의 호를 따라 학당리라 일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학당(學堂)골 김휴(金休)



본(本)이 안동(安東)으로 서기 1350년(고려충정2)고향에서 출생했다.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문하생(門下生)으로 고려 공민왕땐 검교근시(檢校近侍)라는 벼슬에 있었고 고려가 실가되자 이태조 등국시 호군(護軍)에 명을 받았으나 연로하신 아버지(고려공조전서 성목:成牧)을 모 시고자 송도(松都)에서 여러 신하들과 통곡으로 작별하고 오늘의 전의(全義)운주산 아래 병 거지(屛居地)를 정하여 은거하자 태조가 하선검교 한성좌운(漢城左尹)이라는 벼슬을 내려 불렀으나 그는 끝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초야(草野)에 묻혀 있으면서 학문을 더욱 빛나게 닦아 그의 문하생으로 충효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니 그의 덕망과 지조가 훌륭하다 하여 유림명인(儒林名人)들이 유허비를 세웠고 운주산 아래서 살았으니 지금의 전동면 미곡리를 그의 호(號)를 따라 학당리(學堂里)라 일 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참고문헌 : 碑文, 族譜







▣ 김익정.김사준 쌍효자문



소재지 : 연기군 전의면 양곡리

시 대 : 조선시대

김익정은 이태조 5년(1396)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삼사를 역임하시고 사헌부대사헌에 재직중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부모의 상을 3년씩 6년간을 시묘하였다.

그후 태종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정사에 진출 이조참판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민훈학강학을 독려하여 민족중흥을 진작하였으며 공은 또한 천성이 겸손하였고 학문이 탁월하고 덕행이 후덕하여 세인들이 충효명문이라 순배하였으며 세조조에 정려를 명받았다.

충신명문이 충신을 낳는다고 공의 손자인 수령은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성종조에 좌이공신으로 복창군까지 봉하였으며 호는 문도공 이다. 또한 김사준은 총명예지하여 효행과 유덕을 닦았다.

부친의병에 연근이 특효라하여 엄동설한에 얼음을 깨어 하루같이 드리니 효험이 있어 병이 나을때까지 복용시켜 주었으며 부친이 75세의 장수를 누리었다.명종조에 효자로 정려를 명하였다.(참고문헌 : 정려기)









<디지털한국학>



▣ 김익정(金益精){1}



시대 조선

생몰년 ?-1436(세종18)

본관 안동(安東)

자 자비(子斐)



시호

활동분야 문신

다른 이름



?∼1436(세종 18).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비(子斐). 아버지는 한성윤 휴(休).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문하부의 요직을 지냈고, 1409년(태종 9) 장령이 되었다. 이해에 쇄권색(刷卷色)을 설치하자, 그 별감이 되었다.

그뒤 헌납·예문관직제학·승정원우대언을 역임하고, 세종이 즉위하자 외직으로 나가 충청·전라·경기의 삼도 감사를 지냈다. 내직으로 돌아와서 1422년 승정원지신사가 되어 군정(軍政)의 확립을 건의하였으며, 1425년 대사헌에 올랐다.

1430년 동지총제(同知摠制)가 되었으며, 이듬해 인순부윤(仁順府尹)과 경창부윤(慶昌府尹)을 거쳐 이조참판·예조참판·형조참판을 지내고, 이조좌참판이 되었다.

1435년 경상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죽었다. 근검하고 사치를 몰랐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崔完基〉







▣ 김수령(金壽寧)



시대 조선

생몰년 1436-1473(세종18-성종4)

본관 안동(安東)

자 이수(#이96#수04)

호 소양당(素養堂)

시호 문도(文悼)

활동분야 문신, 학자

다른 이름



1436(세종 18)∼1473(성종 4).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이수(#이96#수04), 호는 소양당(素養堂).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이었던 숙(潚)이며, 어머니는 호조판서 안숭선(安崇善)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집현전수찬에 승진되고 이어 병조좌랑·헌납·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1458년부터 1462년까지 함길·평안·강원·황해·충청 5도의 체찰사인 한명회(韓明澮)의 종사관이 되어 세조의 변방정책 수행에 주요한 소임을 담당하였다.

1463년 집의에 오르고 그뒤 동부승지, 1465년에는 좌승지를 거쳤다.

1468년 호조참의로 세조의 《주역구결 周易口訣》 간행에 참여하였다.

1469년(예종 즉위년) 공조참의가 되고 이어 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1470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대사간 재직시에는 성종에게 경연을 권고하는 명상소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1471년 성종을 보필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복창군(福昌君)에 봉해졌다. 뒤에 공조참판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사재(史才)가 있어서 1458년에는 《국조보감 國朝寶鑑》 편찬에 참여하였고, 1463년에는 양성지(梁誠之)·서거정(徐居正) 등과 함께 《동국통감》을 편찬하였으며, 성종 초기에는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시호는 문도(文悼)이다.



참고문헌

世祖實錄, 成宗實錄, 大東野乘,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李根洙〉









<디지털한국학 조선조방목>



김익정(金益精) 태조5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익정(金益精)의 성명(姓名)

김익정(金益精) 단종1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수녕(金壽寧)의 조부(祖父)



김익렴(金益廉) 태종8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익렴(金益廉)의 성명(姓名)

? 김익렴(金益廉) 숙종28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일경(金一鏡)의 조부(祖父)

김익렴(金益濂) 단종1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한(金漢)의 부(父)



김한(金漢) 단종1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한(金漢)의 성명(姓名)



김수녕(金壽寧) 단종1년 식년시에 입격한 김수녕(金壽寧)의 성명(姓名)

? 김수녕(金壽寧) 연산군4년 별시에 입격한 김말문(金末文)의 처부(妻父)







▣ 김익정(金益精) More Info.

태조(太祖)5년(1396년), 식년시(式年試) 을과1(乙科1)



>>> 인적사항

생년(生年)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휴(金休)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성목(金成牧)

증조부(曾祖父) 김구(金玖)

외조부(外祖父) 김효신(金孝信)

처부(妻父) 권담(權湛)

손(孫) 김수녕(金壽寧)

제(弟) 김익렴(金益濂)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생원(生員)

품계(品階)

관직(官職) 이조/참판&(吏曹/參判&), 대사헌&(大司憲&)







▣ 김익렴(金益廉)

태종(太宗)8년(1408년), 식년시(式年試) 을과3(乙科3)



>>> 인적사항

생년(生年)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휴(金休)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성목(金成牧)

증조부(曾祖父) 김구(金玖)

외조부(外祖父) 김희신(金希信)

처부(妻父)

형(兄) 김익정(金益精)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생원(生員)

품계(品階)

관직(官職) 지평&(持平&)







▣ 김한(金漢)

단종(端宗)1년(1453년), 식년시(式年試) 정과14(丁科14)



>>> 인적사항

생년(生年)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익렴(金益濂)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휴(金休)

증조부(曾祖父) 김성목(金成牧)

외조부(外祖父)

처부(妻父) 최수민(崔秀民)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승의(承義)

품계(品階)

관직(官職) 직강&(直講&)









▣ 김수녕(金壽寧)

단종(端宗)1년(1453년), 식년시(式年試) 을과1(乙科1)



>>> 인적사항

생년(生年) 1436년, 병진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문도,좌리공신/복창군(文悼,佐理功臣/福昌君)

>>> 가족사항

부(父) 김숙(金潚)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익정(金益精)

증조부(曾祖父) 김휴(金休)

외조부(外祖父) 안숭선(安崇善)

처부(妻父) 혜령군 이지(惠寧君 李祉)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생원(生員)

품계(品階) 가정대부(嘉靖大夫)

관직(官職) 호당&(湖堂&), 호조/참판&(戶曹/參判&)

















김태권 wrote:



: 운영자님. 예전에도 올렸더니 답변을 안해주셔서.

: 요번에는 쫌 더욱더 보충해갖구왔습니다.

: 저는

: (구)안동김씨 김알지의 28대손입니다.

: 그리구. 우리의 조상들은 거의다 충남 전의쪽(천안쪽) 에 묘들이 있구요^^

: 그리구또. 저희 아버지하구. 큰아버지는 다 회짜돌림쓰시구요. 저희떄는요 태짜돌림 쓰구요^^

: 자 이정도면알수있을까요? 아!참 그리구 저는 전서공파입니다^^

: 제가 알고싶은건요 저의 대한 더욱더 자세한 뿌리에 대해알고싶구요

: 또... 저희조상에는 누가있는지

: 알고싶습니다.. 그럼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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