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자료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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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25 17:48 조회1,441회 댓글0건본문
불천위 제사
부조위란 불천위(不遷位)라고 해서, 본래 제사는 고조할아버지까지 4대 봉사를 하고 4대가 지나면 조묘제(示兆墓祭)를 지내고 더이상 제사지내지 않게 되어 있으나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학덕이 높은 분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영원토록 위패를 '옮기지 않고(不遷)' 모시는 것을 허락했는데 그것을 이름이다. 따라서 불천위를 모신다는 것은 그 가문의 영광이며 권위인 것이다. 이러한 불천위는 반드시 국가[禮曹]에서 일종의 라이선스를 발급하듯 허가를 내려주었다. 이런 불천위를 모신 집안의 봉사손(奉祀孫)을 종손(宗孫)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그렇지 못한 집의 봉사손은 주손(主孫)이라 한다. 공의 가문에서는 공의 증조부 종손(宗孫)으로 인하여 피휘(避諱)하여 사손(嗣孫)이라 호칭하고 있다.
가계도 자료
종손 1428-1478, 사헌부감찰, 증)통정대부 호조참의
성 1451-1487, 군수 충무위중부장,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공량 1472-1544, 묵재 이심원 문하, 증)보조공신 안원군 정헌대부 이조판서, 묘갈 정사룡 찬 김로 서
완 진천현감 증)좌승지
충남 1530-1618, 퇴계 이황의 문인, 토산현감, 수)통정대부 증)호조참판
척 무과급제
주
정남 증)형조좌랑
후남 1548-?, 초명 의남, 전력부위 충좌위 부사용, 감찰
계남 1552-?, 대흥현감, 묘비 채유후 찬
공석 1477-1553, 북병사 훈련원 도정 청홍도 수군절도사, 신도비 김주 찬 송인 서 박영 전
탁 제용감 참봉
수남 1547-1605 남병사 증)병조판서
황 선공가감역
공망 1482-1528, 이심원 문하, 해주목사, 해주객관 개축 부용당 신축, 묘갈 송인 찬 김이 서병전
순 종사랑
이 장예원 사평 현풍현감, 호반금옹, 송인과 교유, 행록 이선 찬, 묘갈 송인 찬
운 부사직
준 만호
지 1455-1534, 문의현령 통정대부, 묘갈 김안국 찬
공걸 충무위 부사직
공예 1485-1537, 동부승지 예조참의, 묘갈 성세창 찬 김로 서
공언 동부 참봉
공연 장사랑 ?군자감정
게 신창현감
보 무안현감
再題林塘香帖(재제임당향첩)
癸丑之秋, 余以謝恩使赴燕, ?按擦邦寶令公, 收拾吉元詩, 作帖附之, 屈指已九年. 又次前詩, 亦香帖之一幸也.(계축지추, 여이사은사부연, 천안찰방보령공, 수습길원시, 작첩부지, 굴지이구년. 우차전시, 역향첩지일행야.)
銀舡滿滿不須餘 欲把閒愁盡掃除(은강만만불수여 욕파한수진소제)
却和香?詩上語 絶勝辛苦註?魚(각화향렴시상어 절승신고주충어)
다시 임당의 향첩(香帖)에 쓰다
첫째
술잔에 가득 채워 남기지 말고 마셔
한가한 시름을 죄다 없애고자 하노라.
도리어 향렴 시의 말을 화답하나니
고달프게 벌레나 물고기 이름에 주석하는 일보다 낫고야 말고.
계축년(1553년) 가을에 내가 사은사(謝恩使)로서 연경(燕京)에 가다가, 안찰사(按擦使:즉 관찰사) 김방보(金邦寶, 김개金鎧, 1504∼1569) 공에게 부탁하여 정길원(鄭吉元:鄭惟吉)의 시를 수습하게 하였더니, 첩(帖)을 만들어 부쳐온 일이 있다. 손꼽아 헤아려보니 9년이나 되었다. 다시 앞의 시에 차운하니, 역시 향첩으로서는 한 가지 요행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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