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선생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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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태서) 작성일05-01-08 10:31 조회1,609회 댓글3건본문
누구에게나 부모를 잃는 일은 슬픈 일일 것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게 될 경우 슬픔은 더욱 클 것이다. 나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나는 주변에 친척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고등학교 때 쯤 되어 아버지가 왜 죽었을까 궁금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소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제자였다는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로는 아버지가 아주 멋있는 젊은 선생이었다고 했다. 내가 자라면서 마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는 아버지가 너무도 너무도 좋은 분이셨다는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글을 하도 구수하게 읽어서 여름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회당에 모여 아버지가 읽어주는 심청전 이야기나 그런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나 큰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왜 자살을 했을까 궁금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세분이 아주 친했다고 해서 그 세분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는 아버지가 해방이 되고 나서 자주 북한을 왔다 갔다 했는데 자꾸 누가 아버지를 미행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일종의 정신병이 아니었겠나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를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확인하면서 그것이 정신병이 아니라 실제로 아버지가 미행을 당하였고 아버지가 미행당할 만한 일들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육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신원조회가 까다로웠는데 내가 육사에 들어가게 된 것을 볼 때 아버지가 빨갱이는 아니었다고 본다.
아버지는 조사를 받고 미행을 당하는 것을 매우 괴로워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조사를 받고 미행을 당했던 것은 아버지가 자주 북한을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당시 북한의 실정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아버지의 친구들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전에는 아버지가 아버지 스스로 북한의 체제가 옳은지 남한의 체제가 옳은지 비교하기 위하여 자주 북한에 왔다갔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몽양 여운형 선생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버지가 자주 북한을 왔다갔다 한 것이 과연 그의 단독 행동이었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여운형 선생은 전국적으로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 시절 들었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우리 마을에도 여운형 선생의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나 박헌영의 조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얼마전에도 과거에 박헌영의 조직에 있었던 사람이 피해 살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살고 있는 어떤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에 대하여 어린 시절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서 내가 그를 검증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니 여운형이 전국적인 농민조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우리 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식자층이었고 아마도 아버지가 여운형의 조직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여운형의 정치조직이 해방직후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당연히 정보가 필요했을 것이고 아버지가 그 일을 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당시에 극단적인 좌우대결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아버지의 친구 아저씨들한테 들었다. 아버지가 자살한 이유를 확인해 가면서 나는 아버지가 사상갈등, 이념논쟁의 희생자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나는 아버지를 죽인 이땅의 사상갈등과 맞서 싸워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놈의 사상갈등, 이데올로기논쟁이 아버지를 죽였던 것이다. 그놈과 싸워 이기려면 그놈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데올로기나 사상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국방부에서 이념교육장교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념교육장교가 그 분야에 탁월해서 발탁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우연하게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하나밖에 없었던 국방부 이념교육장교 근무를 했다.
어린시절 마을에서 사상갈등으로 서로 싸워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아버지의 자살원인이 그놈의 사상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이 젊은 시절에 나에게 강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생리적으로 색깔논쟁이나, 사상논쟁에 대해서 극도의 배타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강경보수 사람들을 비판하고 또 극단적인 진보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곤 했는데 그런 나에 대해서 아내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정치를 하려고 하는데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그럼 당신의 취향에 가장 맞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냐?” 그때 나는 가만히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나. 혹은 과거에라도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 중에는 없지만, 그 사람은 몽양 여운형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정치를 한다 하더라도 내가 들어갈 내 취향에 맞는 정당도 없고 내 취향에 맞는 정치인도 없는 셈이다. 그저 있다면 여운형이고 김구인데 그런 취향의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 정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제 우리 언론, 방송들이 정신을 차려서 제대로 방송을 하고 또 국민들이 얼마나 이승만 때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속아 왔는지 깨우치게 될 때면 모를까.
내가 그래도 따를 만한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여운형 선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가 그 조직에서 일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단독으로 북한에 자주 왔다 갔다 했더라도 아버지의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과 같은 그런 맥락에서였다. 아버지는 당시에 자주 삼팔선을 오르내리며 양쪽의 체제에 대해서 관찰을 했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아버지가 극단적인 좌우투쟁에 대해서 자주 비판을 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친탁 반탁으로 갈려 극단적으로 싸웠던 것은 당연히 국가나 국민들의 이익과는 관련이 없었고 정치단체들간의 이익싸움이었고 당파에 조금이라도 이익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주동이 되어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부화뇌동하여 그렇게 심하게 싸우고 죽이고 테러를 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했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파가 갈리고 시위집단들이 갈리고 언론이 갈리고 마치 자기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는 것처럼 정치인이나 시민지도자들이나 언론들이 선동하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파의 이익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선동되어 저렇게 편을 갈라 패를 지어 난리치고 있는 모습이 그때와 다를 것이 없다.
아버지가 당시의 상황을 개탄했고 그래서 남북의 체제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하여 삼팔선을 자주 오르락 내리락 했고 그러다가 미행당하여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내 심정도 그때의 아버지의 심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그때의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나 다를 바가 없고 내가 개탄하는 내용이나 아버지가 개탄하는 내용이나 다를 바가 없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우리에게 언론이 있고 인터넷이 있어서 조금은 그때보다는 싹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K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고 칭찬을 하고싶다. 그 내용은 내가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온 그대로 그렇게 전개되었었다. 정말로 고약한 사람들에 의해서 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주마가편이라고 한가지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언론이 신탁 찬탁운동을 부추겨서 얼마나 나쁜 일을 했던가. 몽양 선생에 대해서 객관적인 사실에 의해서 분석하기 보다 몽양선생쪽에서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나치게 몽양 선생을 미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정도 객관성의 상실은 이야기의 흐름상 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대의 발전수준에서 볼 때 그것은 해방공간에서 저지른 정도의 잘못과 유사한 잘못이다. 지금 여러 방송이나 언론에서 PD들이나 편집자들이 이미 어떤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추어 내용을 몰고 가는 이상한 현상이 종종 발생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언젠가는 해방공간에서 언론이 한일을 우리가 지금 반성하고 있듯이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또다시 반성하게 될 것이다. 그때 당시 '일제 앞잡이다', '빨갱이다' 하고 흑색선전, 백색선전, 중상모략, 사기와 거짓증언을 한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비판하는 마음이라면 지금이라도 우리 언론인, 방송인들이 객관적인 사실과 중립적인 가치를 갖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
여운형 선생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시한번 아버지의 자살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단지 조사를 받고 미행을 당하는 것이 괴로워서 자살을 했을까. 혹시 무덤으로 가져가야할 비밀이 있어서 자살한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되면서 아버지의 자살동기에 대해서 다시한번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살할 만큼이나 그렇게 심각했던 일이었을까. 그래도 살았던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댓글목록
김우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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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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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또 자세히 적으니 많은 알고품에 참고가 되네요. 지난번 국회 출마 포기 선언때도 좋는 글에 감탄했는데 또 그러하오니, 국방에 초석을 다 다지고 지금도 국방에 전문 분야에 충실하니 마음이 안심되는군요 이 분란한 시기에.
국방, 국회출마 등등 미래에는 더 큰일 문중에 영광 나라에 큰일을 하는 큰 웅지를 트는 올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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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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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세기를 넘어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엄청난 속도로 변화 발전을 해 가던 인류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의 정치 사상과 이론들, 이들 중 어느 하나를 자신의 대표적인 것으로 무장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신장시키려 했던 강대국들의 횡포가 근 현대의 대표적인 인류역사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드러난 것이 20세기의 동서 냉전논리. 이 갈등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만 당해야 했던 각종의 약소 국가들, 그 한 가운데에 우리나라가 있고 바로 나와 우리 주변의 일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항상 승리한 자에 의해 기술되어 갑니다. 그래서 그 과정상에서 나타난 중간자와 열등자의 활동과 피해, 슬픔과 진실의 기록들은 사라져 갑니다.
태서 종친님의 이 이야기가 바로 그런 아픔의 단면이요, 우리 민족 근대사의 한 불행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남은 문제는 이 아픔을 바르게 치료하는 일이요 재발 방지를 위한 인류적 공감대 형성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님의 오늘 이 글이 그런 이념적, 사상적 발전을 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김태서(진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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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진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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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두분 감사합니다. 친척은 정말 따듯한 품과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