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죽음 앞에-양촌 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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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5-01-12 17:32 조회1,569회 댓글2건본문
여인의 죽음 앞에
권 근
꽃다운 나이에
부녀자의 도를 닦아
언제나 온 집안을
화목케 하였는데
슬프도다. 남편을
기다리던 중에
훌쩍 하늘 나라로
떠나고 마셨구려
높은 당엔 아직도
부친이 계시는데
곡하고 울어야할
아들 외려 없어서
이 한을 차마
말로 하기 어렵지만
들으면 누구라도
슬퍼하지 않으랴
<金中樞妻氏挽辭(김중추처씨만사)>
이 시는 선배 척약재 김구용<惕若齋 金九容(1338~1384)>의 부인이 세상을 뜨자, 이를 조문하기 위해 양촌 권근(陽村 權近(1352~1409)>이 지은 만가(挽歌)이다. 양촌이 스스로 붙인 주(注)에 의하며, 마침 이때 김구용은 명나라로 사신을 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따져보면 척약재는 1384년에 사신을 떠났다. 그러나 고려와 명나라 사이의 외교 문제가 비화되어 요동지방에서 붙잡혀 南京(남경)으로 압송되었다. 그후 대리(大理)로 유배를 가던 중, 병으로 인하여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아내의 죽음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땅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어보면 척약재 집안의 딱한 처지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부친이 아직 생존해 계시는데 아들 척약재는 이역만리 타국 땅으로 사신을 떠난 상태이고, 같은 해에 며느리마저 훌쩍 세상을 뜬 것이다. 더구나 후사를 두지 못한 형편에서 이런 일을 맞았으니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양촌은 척약재 부인의 만사를 지으면서 과도한 수식은 생략하였다. 오히려 주변 사실만을 전달하여도 누구나 슬퍼할 만한 喪(상)이었기에, 담담하게 그 집안의 어려움을 연이어 써 내려갔다. 그리고는 “이 한을 차마/말로하기 어렵지만/들으면 누구라도/슬퍼하지 않으랴? 하고 반문하면서 시를 끝맺었다. ‘현실이 픽션보다 리얼하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글을 꾸미고 다듬는다고 해도 현실이 주는 사실감을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양촌의 만사는 바로 이 원칙을 지킨 작품이다. 따라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큰 슬픔을 느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출전 : 너도 내가 그립더냐(한국인의 1000년 사랑, 그 절절한 밀어들의 고갱이)/유영봉/늘푸른소나무》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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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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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척약재의 부인과 권근 양촌!!! 만사를 지었군요.
그 기록이 전하고 있네요. 소개 감사 드립니다. 윤만 형님!!!!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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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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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귀한 자료 발굴입니다. 감사합니다. 홈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