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10---김사안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5-01-14 09:19 조회1,480회 댓글2건

본문

 

■ 디지털한국학

김사안(金士安)

?∼1391(공양왕 3).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동.

방경(方慶)의 4세손(*5세손의 오기)이며, 할아버지는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천(?)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사형(士衡)의 형이며 부인은 당숙(*재당숙의 오기) 묘(昴)의 딸이다.

1388년(우왕 14)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서 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과 함께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신정(新正)을 하례하였으며 공양왕 때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朴天植〉

 

■ 김사안 연보 (정리 : 김주회)

김사안(金士安)

○?∼1391(공양왕 3).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동. 방경(方慶)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상락후(上洛侯) 영후(永煦)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천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사형(士衡)의 형이다. 

○증영삼사사공(김천)과 삼한국대부인 현풍곽씨 사이의 4남(사겸,사렴,사안,사형) 1녀(허강에 출가)중 3남으로 태어났다. ---형 사렴의 생년 1335년과 동생 사형의 생년 1341년을 감안하고, 조부 정간공의 졸년 1361년 이전에 김사안의 나이 20세를 넘었음을 감안해 볼 때, 충강공의 생년은 1338년 전후이었을 것으로 추정---

○김영후(1292-1361)의 손자들인 김사안(士安), 김사형(士衡)의 나이 20세를 넘었는데 어떤 사람이 김영후더러 말하기를 “왜 그들을 위하여 관직을 얻어 주지 않는가?”라고 하니 “자제가 과연 현명하다면 국가에서 스스로 선발해서 쓸 것이며 만일 현명하지 못하다면 관직을 주어서 얻게 하더라고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고려사 김영후 열전> 

○1359년 감군위참군사를 지냈고 <1359 처외조부 민사평 묘지명>

○1374년 밀직부사를 지냈고 <1374 처외조모 민사평처김씨(김륜의 따님) 묘지명>

○1379년 전 밀직사부사 이었고, 당시 전 종부령 최유경, 박사 이존사 등은 손아래 동서들이었다. <1379 처모 김묘처민씨 묘지명>

1388년(우왕14) 문하시중 이색, 첨서 밀직사사 이숭인(李崇仁),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김사안(金士安)을 명나라로 보내 새해를 경축하고 겸하여 명나라 관리를 파견하여 국정(國政)을 감독할 것과 청년 자제의 명나라 유학을 허가할 것을 청하였다. 이색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김사안을 따라갔던 상인(商人) 백거마(白巨麻)가 많은 금, 은을 휴대하고 갔던 바 이숭인이 그 액수를 제한케 하였다. 이색은 명나라에서 돌아오자 이숭인, 김사안 등과 함께 신우를 여흥부(驢興府)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이색은 앞질러 혼자 가서 만났다. <고려사>, <오사충(吳思忠)의 ‘논 이색 소(論李穡疏)’>

○공양왕 때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정총(鄭摠, 1358 고려 공민왕7-1397 조선 태조6)의 <복재집(復齋集)>에 ‘敎全羅道都觀察三司右使金 士安 書’ 교지가 실려 있다. 

○여말에 형 안렴사공(김사렴)이 청주 도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운곡 원천석 등이 찾아와 망국의 한을 달래는 자리에서 석루(?자,호) 사안이 시석하고 있었다. <1860 화해사전>

○1391년(공양왕 신미3) 9월 경인일에 前 전라도 관찰사 김사안(金士安)이 죽었다. 조정에서는 3일간의 사업을 정지하였으며 충강(忠康)이란 시호를 주었다. <고려사>

○배위는 재당숙 묘(昴)의 9녀중 맏딸이나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 *후에 족보 제작과정에서 당내혼이라 하여 누락시킨 듯하다.<1359 처외조부 민사평 묘지명>, <1374 처외조모 민사평처김씨(김륜의 따님) 묘지명>, <1379 처모 김묘처민씨 묘지명> 무후하여 후사가 이어지지 못하고, 묘소도 알 길이 없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김사안 선조님 기록중
4세손은 5세손으로, 당숙은 재당숙으로 정정 요청해야 할 듯.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옛날에는 4세손=4대손이었습니다.  代와 世가 같은 뜻으로 쓰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