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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매료시킨 시인 천상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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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2-02-02 23:47 조회1,7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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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天(귀천)





1993년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는 이른 봄. 동부이촌동 한 작은 커피숍이었습니다.



오전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 하나뿐, 실내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는데



"향수"의 가수 이동원이었습니다.



그 때 내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그 음악이 바로 귀천이었음은



종업원을 통해 즉시 알 수 있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블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 . .







이어서 시인 천상병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시인이 살아있으면서도 기이한 사연으로 유고집이 된



도서출판 답게에서 발행한 천상병시집 "새"를 읽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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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千祥炳의 일생과 작품세계





--기인 천상병 시인이 귀천하기전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여



시인의 일생과 작품세계를 소개합니다.



--평생을 동심속에서 살았던 시인 천상병은 세상에는 그 기인같은 생활로 널리



알려 졌지만 문단에서는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서정시인으로 높이 평가돼



왔다. 그의 작품은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세계, 인생의 비극적 현실을 간결하게



압축하므로서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마산에서 보냈던 그는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으나



학교 공부보다는 문인들과 어울려 음악과 예술을 논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52년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그는 월급쟁이에는 아무 욕심이 없어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둬 버렸다. 그의 일생을 좌우한 가장 큰 사건은 지난 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전기 고문을 받고 몸과 마음에 지울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일이었다. 이때이후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면서 술과 방랑으로 지냈고



몇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겨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70년 그의 실종때는 친구들이 유고시집이라는 이름아래 그의 첫시집 『새』



를 출간했으나 다음해 서울의 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를 찾아냄으로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천진한 말과 행동, 삐딱한 걸음걸이로 소박한 삶을 살다간 천시인은



하루 용돈 2천원으로 맥주 한병,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고 남는 돈으로



어떤때는 저축도 한다며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라고 즐겨



이야기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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