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대장이안기(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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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작성일05-01-22 14:48 조회1,528회 댓글3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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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자: 최연식 | ||||||
고려국대장이안기 선수 조열대부 한림학사(宣授 朝列大夫 翰林學士) 겸본국 광정대부 자의도첨의사사사 연영전대학사 동제수사 판문한서사(兼本國 匡靖大夫 咨議都僉議使司 延英殿大學士 同提修史 判文翰署事) 민지(閔漬)지음. 옛날에 감저씨(甘庶氏 : 석가를 가리킴)가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고 두루 살펴보니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지만 망상에 집착하여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큰 자비심을 일으켜 부처의 지견(知見)으로 (이러한 사실을) 보이고 (중생들이)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중생들의) 근기가 크게 차이나서 하나의 가르침으로 제도할 수가 없었으므로 넓고 큰 혀를 내어 여러 가지의 가르침을 베풀었다. 49년 동안의 말하지 않은 말이 대천세계(大千世界)에 가득 차니 모두 다 병에 맞춘 묘약이 아님이 없었다. 이로서 경전[經]과 계율[律]이 있게 되고, 현교(顯敎)와 밀교(密敎)가 있어, 나누면 다섯 가지 가르침이 되고 합하면 하나의 가르침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심에 미쳐서 여러 성인들이 이어서 출현하여 (경전의) 깊은 뜻을 드러내고 글로 지어 논서[論]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삼장(三藏 : 경(經), 율(律), 론(論) 등 불교의 세 가지 종류의 문헌들을 총괄하여 이르는 말)이 한(漢)나라 명제(明帝) 이후로 동쪽 중국에 전해졌으니 여러 가지 전기(傳記)들과 합하여 무려 6천여 축(軸 : 두루마리)이며 이것이 이른 바 대장경(大藏經)이다. 용궁(龍宮)에 소장되어 있는 것에 비한다면 수미산 중의 티끌 하나와 같고 큰 바다의 한 방울 물에 불과할 뿐이다. 불교의 전승에서는 바닷 속 용궁(龍宮)에 수 많은 경전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세상에 전하는 불경은 그 중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르침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바람이 모두 이루어지며, 모든 인간세계 및 하늘세계의 부귀와 크고 작은 열반 등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니 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총칭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포괄한다)의 커다란 보물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이것보다 큰 것은 없을 것이다.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오로지 불법의 힘에 의지하여 나라를 열고 대통을 세웠으며 역대의 왕들도 모두 전대의 모범을 열심히 본받아서 오늘의 훌륭함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대장경을 베껴서 만든 것으로는 금으로 쓴[금자(金字)] 대장경, 은으로 쓴[은자(銀字)] 대장경, 먹으로 쓴[묵자(墨字)] 대장경 등이 있으며, 인쇄하여 만든 것으로는 요나라[요본(遼本)] 대장경, 송나라[송본(宋本)] 대장경, 우리나라[향본(鄕本)] 대장경 등이 있다. 우리나라 대장경은 현재 유행하는 판으로서 내외의 이름난 절에는 없는 곳이 없다. 남악(南嶽)의 철산(鐵山)화상은 해동의 산수가 뛰어남을 충분히 들으시고 한번 둘러보려고 생각하시었으며, 우리나라의 승려와 속인들이 그 높은 풍모를 우러러 보려고 생각한 것도 여러 해 되었다. 지난 번 대덕(大德 : 원(元)나라 성종(成宗)의 연호, 1297~1307년까지 사용) 8년 갑진년(충렬왕 30, 1304) 가을에 여러 공들의 요청을 받아서 배를 타고 오시니 온 나라사람들이 모두 마치 부처님을 보는 듯 존숭하였다. 스님이 머무시는 곳에는 수레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각기 자신의 근기에 따라서 모두 큰 은혜를 입었다. 만일 옛 부처님이 임시로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 아니라면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스님이 돌아다니며 교화하시던 중에 강화도 보문사(普門社)에 이르셔서 대장경 3질을 보고 그 유래를 물어보니 두 질은 옛날의 임금과 신하가 안치한 것이고 한 질은 현재 봉익대부 지밀직사사 군부판서 상호군(奉翊大夫 知密直司事 軍簿判書 上護軍)인 허평(許評)과 서원군부인(瑞原郡夫人)인 염(廉)씨 요인(了因)이 바친 것이었다. 스님이 크게 탄식하면서 “옛날의 뜻은 빼앗을 수 없지만 지금의 뜻은 혹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비유컨대 100 척(尺) 깊이의 우물을 팠는데 굳게 닫아 두고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우물에 무슨 공덕이 있겠는가. 또 여의주를 얻었는데 깊이 감추어 두고서 이용하지 않는다면 구슬에 무슨 덕이 있겠는가. 지금 이 대장경은 비록 때로 펼쳐보기는 하지만 널리 읽히지 못하는 듯하니 닫힌 우물이나 감추어둔 구슬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저 (중국) 강서(江西) 지방의 의춘현(宜春縣) 대앙산(大仰山)의 개산조(開山祖 : 산문(山門)을 처음 개창한 조사)는 작은 석가모니라고 하는데, 옛날에 인도 승려가 와서 조사에게 예를 갖추고서 ‘내가 동쪽에 와서 문수보살에게 예를 갖추려 하였는데 도리어 작은 석가모니를 보게되었다’ 고 말한 것에서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조사께서 일찍이 예언하시기를 ‘이 산에서 1기(紀 : 12년)를 주석하는 사람은 곧 내가 다시 온 것이다’ 고 하였는데 설암(雪?) 흠공(欽公)께서 1기(紀) 이상 주석하였으니 과연 그 지혜로운 예언에 부합되었다. 내가 일찍이 나의 일로 찾아 뵈었을 때 가르침을 보여주셨고 또 ‘모인 구름을 들어내니 봉우리 위에 달이 있고(拈起集雲峰上月), 사람 앞에 던져 놓으니 백가지 꽃의 공이다(人前抛作百花毬)’ 라는 게송을 제시해 주셨다. 지금은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살아 계신 것처럼 생각난다. 지금 주석하고 있는 사람도 또한 흠공의 제자로서 땅이 신령하고 경치가 뛰어나며 대대로 훌륭한 사람이 없지 않다. 다만 절이 화재[회록(回祿) : 불의 신으로 화재를 의미한다]를 당하여 법보(法寶 : 불경을 가리킴)에 누락된 것이 있다. 만일 이 곳의 것을 하나 덜어서 저 곳의 누락된 것을 보충하여 준다면 어찌 여덜 갈래의 큰 길에서 우물을 열어 놓고, 여의주를 전륜성왕의 손에 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였다. 허(許)공이 듣고서 큰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면서 해를 가리키며 장차 돌아가시는 배에 실어 보내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리고는) 이 일을 저 산과 같이 영원토록 전하고자 하여 나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재주가 없고 또 병이 있다고 사양하자 이어서 화상이 글을 부탁하는데 말씀과 뜻이 간절하였다. 나는 스님의 계향(戒香)을 하루동안 쐰 적이 있으므로 할 수 없이 병을 참으며 붓을 쥐고 겨우 그 일을 드러낸다. 아아! 보문사는 큰 허공 속의 작은 티끌 한 점일 뿐인데 여기에 소장된 법보(法寶)는 대천세계 만큼의 경전들이다. 지혜의 눈으로 밝게 보아 티끌을 깨뜨리고 경전을 꺼내지 않았다면 허(許)공의 아홉 길이나 되는 공덕이 저 산의 한 보물의 빠짐을 메울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저 대앙산은 석가께서 다시 오신 땅이라고 일컬어지며 또한 중국의 신령스러운 산이다. 우리 스님은 설암 스님의 적통 제자로서 또한 석가여래의 큰아들이다. 그 말로 말미암아 이 경전을 그 땅으로 옮기게 되니 영취산에서의 모임이 오늘에 다시 이루어 진 것이다. 그 이익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진실로 이와 같으니 허(許)공이 얻을 뛰어난 공덕을 어찌 또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비록 보고들은 사람들도 또한 기뻐할 것이다. 대덕(大德) 10년 병오년(충렬왕 32, 1306) 9월 일 적음.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판비서시사 문한학사(奉翊大夫 密直司副使 判秘書寺事 文翰學士) 김순(金恂)이 씀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국학대사성 숭문관학사(奉翊大夫 密直司副使 國學大司成 崇文館學士) 윤보(尹珤)가 전액(篆額)을 씀 고려국 금강산 성불난야 호송대장경 백실사문(高麗國 金剛山 成佛蘭若 護送大藏經 白室沙門) 석(釋) 일목(一牧)이 돌을 세움 선수 강서도 원주로 의춘 현 대앙산 당대주지(宣授 江西道 袁州路 宜春縣 大仰山 當代住持) 전법허곡대선사(傳法虛谷大禪師) 희릉(希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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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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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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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년 9월, 민지 찬, 김순 서, 윤보 전액, 고려 금강산 (?유점사) 석(釋) 일목(一牧) 세운 <고려국대장이안기>!!!
중국 강서성 애주로 의춘현 대앙산(江潟 袁州路 宜春縣 大仰山)은 어디쯤?
은회 형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찾던 큰 자료를 소개해 주셨군요. 눈맛이 시원할 뿐만 아니라 가슴이 두근두근. 흥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항용 선생님! 비문 3편 모두, 문영공 선조님 소개란에 올려 주시기를.....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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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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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놀랍습니다. 홈에 올렸습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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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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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