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산행(남산과 낙산) 후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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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3 23:43 조회1,295회 댓글4건본문
■ 산행개요
○ 일시 : 2005. 1. 23(일) 09:00-21:00
○ 장소 : 서울 남산, 낙산 일대
○ 코스 :
-남산(백범광장, 정상 봉수대 국사당터)
-명동(명례방길, 수하동, 대은암터 추정지)
-낙산(정상, 비우당)
○ 참여 : 김상석, 김윤만, 김우회, 김발용, 김주회, 김태우, 김항용
○ 결과총평 : 대은암터 추정지 발견 및 새해계획 토론 결정
■ 산행후기
겨울철 어느 휴일날의 서울 아침은 인적도 드물다
적막한 휴일날 아침을 깨우며 모여드는 역군들.
사모님을 대동하신 우회 님은 정성이 가득하고
모여든 얼굴얼굴에는 모처럼의 홀가분함이 가득하다.
그동안 쌓였던 일상의 찌꺼기와 스트레스는 저멀리 던져 버리고
호기심과 흥분을 짊어지고 한발한발 옮기는 걸음들은 조용하고도 가볍다.
백범광장을 지나고 남산식물원을 거쳐 오르는 계단에는
겨울 아침의 시원함이 가득하고 내려보는 서울도 시리도록 푸르다.
남산 정상의 봉수대와 국사당터는 옛 생각나게 하고
눈대중으로 가늠해 내려보는 명례방 수하동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명동성당 지나 명례방길을 따라 걸어 내려간 외환은행 본점 광장에는
나석주 의사 동상 우뚝하고, 장악원터 표지석이 반갑고도 고맙다.
길건너가 수하동이다. 前對南山 正直國祀中麓 이라 했던가. 되돌아 보니 그대로다.
눈빛들이 긴장하기 시작하고 발걸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東州先生文集卷之二
序
大隱庵序
大隱庵在明禮坊水下洞。枕橋臨溪。前對南山。正直國祀中麓。始國家定鼎漢陽。有金公孟獻。上洛公方慶五(*六의 오기)代?若齋九容之子(*孫子의 오기)。以直提學在徙中。撤松都屋材。結構于?。傳僉正自讓,郡守禮生,節度使胤宗,進士震紀。至吾外王父都事公大涉。家再傳爲吾(=이민구)有。內屋經先君(=이수광)中繕。名之曰大隱庵。客堂則吾所創置。今歸外孫申弼華 -----
대은암은 명례방 수하동에 있는데, 침교(枕橋)가 계곡에 닿아 있고, 앞으로는 남산(南山)을 마주보고 있는데, 곧바로 국사당(國祀) 중록(中麓)으로 이어진다. 나라를 한양에 도읍으로 하여 정립할 즈음, 김방경의 6대손이며 김구용의 손자인 김맹헌이 직제학으로 있을때 개성(松都)에 있는 가옥의 자재를 뜯어다가 지었다.。첨정 김자양, 군수 김예생, 절도사 김윤종, 진사 김진기에 전해 내려와 이민구의 외할아버지 도사 김대섭(1549-1594)에 이르렀다. 집은 다시 전해져 이민구에게 있는데, 내옥(內屋經)은 선군 이수광(1563-1628) 시절에 수선하여 이름 짓기를 대은암 이라 하였다. 객당(客堂)은 이민구(1589-1670)가 처음 지어 세운 것인데, 지금은 이민구의 외손 신필화(申弼華, ?-?)에게 돌아갔다. ---이하 생략---
수하동 지역에 들어선다.
SK본사 마당과 쁘렝땅백화점 뒷 마당이 제법 널찍하다.
그 아래로 중구문화원을 지나니 복구공사 한창인 청계천이다.
청계천에 올라서 되돌아 본다.
지나온 길 아래로 물소리가 요란하다. 복개된 하천이다.
枕橋臨溪라 했으니, 枕橋는 이곳 청계나 저 아래 복개된 하천에 걸쳐 있었을 것이다.
대은암 터를 거의 확인하고 점심을 해결하러 다시 수하동 지역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발용 님께서 젊을때 사모님하고 자주 다니던 곳이란다.
단골집이었던 곰탕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계속---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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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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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피곤하지도 않으십니까. 우리 홈 상황을 보시고 글로써 꺼지려는 불을 이어주셨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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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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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곰탕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궁금증만...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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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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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남산에서 낙산까지 즐겁다기 보다는 눈물겹도록 보람있는 산행이요. 답사였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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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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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발용 형님! 사진이 아주 선명하고 시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