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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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29 08:40 조회1,914회 댓글2건본문
■ 안동김씨 홈
16) 김정일(金鼎一) [1562 ~ 1609](명종17~광해원년)
자:의중(義中) 호:농포(農圃) 성균관 진사
선조조 문과급제 官: 成均館典籍, 唐將接伴使, 世子侍講院司書兼春秋館記注官,
司憲府持平, 中國書狀官, 경기도敬差官, 충청도御史, 예조정랑, 공주判官,등 을 역임하고 함경도(咸鏡道) 도사(都事)가 되었으나 사직하고 본가(本家)로 돌아왔다.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의 문인(門人)으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용주(龍洲) 조경(趙絅),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등과 교류하였다.
묘비명: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撰, 이조판서(吏曹判書) 이정영(李正英) 書
配: 道康金氏 (父:牧使 福億, 祖父:牧使 若默)
청음집(淸陰集)과 만은유고(晩隱遺稿?홍주화(송시열의제자)에 농포(農圃) 김정일(金鼎一)에 대한 만사(輓詞)와 제문(祭文)이 있다.
* <국역 국조인물고> 내의 자료 (2004. 5. 30. 윤식(문) 제공)
▲출전 : 국역 국조인물고 제5집 295쪽~299쪽
묘갈명(墓碣銘) 김상헌(金尙憲) 지음
군은 휘(諱)가 정일(鼎一)이고, 자(字)는 의중(義中)이고,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후예이다. 경순왕은 고려에 들어와 의빈(儀賓 왕의 사위)이 되어 적(籍)을 안동(安東)으로 옮겼는데, 자손들이 마침내 안동 사람이 되었다.
오대(五代)를 거쳐 김방경(金方慶)에 이르러서 몽고와 왜구 등을 정벌한 공으로 상락군 개국공(上洛君開國公)에 봉해졌고, 시호는 충렬(忠烈)인데, 이 사실은 <고려사(高麗史)> 명신전(名臣傳)에 나온다.
상락공(上洛公)의 아들 김훤(金瑄)은 밀직사사(密直司事)를 지냈다. 밀직의 아들 김승용(金承用)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냈다. 대제학의 아들 김후(金厚)는 상락군(上洛君)에 세습으로 봉해져 관작이 이어져 마침내 큰 집안을 이루었다.
우리 태조조(太祖朝)에 지수안군사(知遂安郡事) 김칠양(金七陽)은 김전(金塡)을 낳았는데, 김전은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냈다. 직제학은 김삼로(金三老)를 낳았는데, 김삼로는 토산 현감(?山縣監)을 지냈다. 현감은 김우(金?)를 낳았다. 김우는 장흥고 주부(長興庫主簿)를 지냈는데, 이분이 군의 고조(高祖)이다. 증조의 휘(諱)는 윤강(允剛)이고, 조부의 휘는 하상(夏祥)인데, 모두 벼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휘 양(壤)인데, 절충장군 용양위 호군(折衝將軍龍?衛護軍)을 지냈으며, 고을에서는 효자로 알려졌다. 김양(金壤)은 청주 경씨(淸州慶氏)를 맞이하여 가정(嘉靖 명 세종의 연호) 임술년(壬戌年 1562년 명종 17년)에 군을 낳았다. -----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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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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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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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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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홈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