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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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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2-01 09:35 조회1,2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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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郡/김태영 작성일 : 2002/11/05 16:30 (from:61.83.150.184) 조회 : 57

무주 현감(茂朱縣監) 김춘(金椿)의 묘갈명


공의 휘는 춘(春)이요, 자는 경인(景仁)이니, 그 선대는 안동인(安東人)으로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이다. 휘 방경(方慶)은 고려 때 벼슬하여 대장에 임명되고 공신에 책록되어 개국공신에 봉해졌다. 그 후 4대 뒤에 휘 구용(九容)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집현전 제학으로 호는 척약재(?若齋)이며 문학으로 세상에 유명하였다. 고조의 휘는 중서(仲舒)인데 호조 참의이고, 증조의 휘는 자완(自琓)인데 임피현령(臨陂縣令)이다. 개국공신 이하로는 대대로 높은 벼슬이 계속되었다. 고조의 휘는 윤강(允岡)인데 사맹(司猛)에 제수되었으며, 선고의 휘는 응상(應商)인데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는바, 모두 벼슬하지 않았다. 선비는 송씨(宋氏)로,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여원군(礪元君)에 봉해졌으며 행한산군수(行韓山郡守)인 송연손(宋演孫)의 따님이시다.

공은 홍치(弘治) 계해년(연산군 9, 1503) 11월 병자일에 태어났는데, 다섯 살에 어머니가 별세하자, 슬퍼하고 사모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홉 살에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절하고 무릎꿇며 제수를 올리기를 성인(成人)과 같이 하였으니, 이것은 타고난 천성이 그러했던 것이다. 장성하자, 항상 어머니 상복을 입지 못함을 무궁한 애통으로 여겼다. 가정(嘉靖) 계사년(중종 28, 1533) 정월에 모친의 기일(忌日)을 만나자, 신위(神位)를 설치한 다음 통곡하고 제수를 올리고는 마침내 어머니의 묘 옆에 여묘(廬墓)를 살았는데, 아침 저녁으로 몸소 불을 때고 음식을 장만해서 제사를 받들었으며, 아무리 심한 추위와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더욱 경건히 하고 조금도 해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재기(再期 2년) 이내에는 울기를 무시로 하였으며, 앉고 서는 자리가 일정한 곳이 있었고, 일찍이 산 밖을 엿보지 않았다.

공은 스스로 중자(衆子)라서 항상 사당을 받들 수 없다 하여, 흰 두루마리에다가 고비(考?)의 신위를 써 가지고 받들어 모시고 다녔으며, 나가고 들어올 때에는 반드시 여기에 아뢰고, 삭망 및 시속의 명절에는 반드시 음식을 올렸으며, 새 식물을 올리곤 하여 정성이 시종 변함이 없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효자정려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신축년(중종 36, 1541)에 천거로 소격서 참봉(昭格署參奉)에 제수되었다가 문소전(文昭殿)ㆍ영숭전(永崇殿) 및 현릉(顯陵) 참봉으로 옮겼다. 병오년 내자시봉사(內資寺奉事)로 전직되었다가 무신년 돈령부 직장(敦寧府直長)으로 천직되었으며, 기유년 사옹원 주부(司甕院主簿)로 승진되고, 통례원 인의 겸 한성부 참군(通禮院引儀兼漢城府參軍)으로 이직(移職)되었다. 경술년(명종 5, 1550)에 무주 현감으로 나갔는데, 다음해인 신해년 12월 29일 병으로 관청에서 별세하니, 향년은 49세였다. 다음해 4월 금구현(金溝縣) 남쪽 하운산(夏雲山) 선영의 옆에 안장하였다.

공은 자품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안과 바깥이 똑같았으며, 일찍이 외삼촌인 취은(醉隱) 송공(宋公 송세림(宋世琳)을 가리킴)에게 수학하였는데, 뜻이 독실하고 행동을 힘썼으며, 형제간에 우애하였고 붕우간에 신의를 지켰다. 그리하여 윗사람을 섬기고 아랫사람을 접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효행이 더욱 드높아 남들이 따를 수 없었다.

종실(宗室)인 장흥령(長興令) 이종손(李種孫)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는데, 부인은 온순하고 정숙하여 어머님을 효성으로 받들어서 마치 공이 어버이를 받들 듯이 하였으나 오래도록 아들이 없다가 늦게야 1남을 낳으니, 사람들은 하늘이 효성에 감동한 것이라 하였다. 공이 별세한 뒤에 부인은 슬퍼하다가 병을 얻어 계축년(명종 8, 1553) 2월에 세상을 버리니, 공의 무덤에 부장(?葬)하였다. 아들의 이름은 고언(顧言)인데 가정교훈을 잘 받들어 몸가짐을 삼갔다. 장흥부사인 유충정(柳忠貞)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아무 아무이고 나머지는 다 어리다.

사람이 어버이를 사모함은/人之慕親

본성에서 나온 것이네/天性則然

그러나 기품(氣稟)에 구애되고 물욕에 빠져/稟拘物?

천성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데/?多不全

공의 소행은/如公所爲

실로 그 천성을 보전하였네/寔全其天

비석에 명문을 새겨서/銘以貞之

후현들에게 밝히노라/式昭後賢


고봉 기대승 <고봉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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