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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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2-04 14:47 조회1,419회 댓글3건본문
김구의 가족들 | |
[경향신문] 2005-01-30 17:55 |
‘백범일지’에 독립운동에 전념하느라 돌보지 못한 가족사에 대한 얘기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 김순영과 곽낙원의 외아들로 태어난 백범에게 어머니는 혈연을 뛰어넘어 ‘독립군의 대모’ 같은 존재였다. 일본 중위 쓰치다 살해와 안명근 사건으로 7년간 옥살이할 때 옥바라지를 담당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특히 안명근 사건으로 17년형을 받자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럽다”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남경 임시정부 시절, 백범이 어머니 생일을 맞아 돈을 드리자 ‘권총을 사서 일본놈을 죽이라’며 청년단에 내려주기도 했다. 백범이 임정에 관여할 때에는 아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기도 한 곽낙원은 1934년 중국으로 건너가 백범과 함께 생활하다 1938년 그곳에서 운명했다. 백범은 어머니 곽낙원을 “본시 용감하기가 다른 여류는 당할 수가 없다”라고 증언한다.
김구는 독립운동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1904년 최준례와 결혼하여 첫딸을 얻었으나 곧 사망하였고, 이후 두 딸을 두었는데 감옥을 드나드는 사이에 모두 잃었다. 게다가 큰아들 인이 태어난 지 석달만에 상해 망명길에 올라 가족 사이의 단란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김구는 상해에서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다 1920년 부인과 아들 인(1918년생)이 상해로 건너가자 한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1922년 둘째 아들 신이 태어났다. 그러나 둘째 아들을 낳은 직후 허약한 부인이 사고를 당하고 병을 얻어 1924년 1월 사망했다. 부인의 투병생활에도 일제의 감시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김구는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했다.
중국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한 큰아들 인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투신, 광복을 앞둔 1945년 3월 숨졌다. 상해 임정 내무부에서 임시정부 일을 돕기도 한 작은아들 신은 중국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중국 공군에서 활동하다 1947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정치에 참여해 국회의원, 교통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으로 있다.
〈조운찬기자〉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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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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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된 김구 가족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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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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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유서', 그래서 울림이 큰 글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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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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