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호랑이 잡던곳(벌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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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5-02-04 22:27 조회1,363회 댓글4건본문
벌고개罰峴 (신촌동)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 봉원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벌고개, 한자로 벌현(罰峴)이라 하였다. 고개의 명칭 유래는 이 고개가 조선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묘소인 수경원(綏慶園)의 주룡(主龍)이 되므로 사람이 다니면 등성이 낮아질 염려가 있기 때문에 고개의 통행을 금지시키고 다니는 사람을 벌하였으므로 벌고개, 벌현(罰峴)으로 불리어졌다.
수경원은 연세대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백양로 오른쪽에 있었으나 1969년에 서오릉(西五陵)으로 옮겨져서 지금은 정자각만 남았다. 수경원은 규모는 작았지만 조선시대의 원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수경원의 주인인 영빈이씨는 어려서 궁중에 들어가 귀인(貴人)이 되었으며, 영조 6년(1730) 영빈으로 봉해졌다.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며, 4명의 옹주를 낳은 뒤 영조 11년(1735) 원자(사도세자)를 출산하여 후사를 기다리던 영조를 크게 기쁘게 하였다. 영조 38년(1762)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고 2년 후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매우 애통해 하면서 후궁 제일의 예로 장례 지내게 하였다. 이듬해 시호를 의열(義烈)로 추증하였다. 소생으로 사도세자 외에 5명의 옹주가 있었다.
조선초기 이 고개에는 호랑이가 있어 고개를 넘는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세조는 병조판서 김질(金)에게 명하여 호랑이를 잡게 하였다. 김질은 군사를 거느리고 호랑이를 에워싸게 하였는데, 호랑이가 별안간 포위망을 뚫고 나가자 세조가 친히 봉우리에 올라서서 장수들을 지휘하여 호랑이를 잡았다. 이 와중에서 군사 두명이 호랑이에게 상처를 입자 세조는 의원을 보내 치료하게 하고 먹을 것을 후하게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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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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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저씨 반갑습니다.
날씨 차가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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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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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안녕하셨습니까? 오랫만에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시는 사업은 잘 되시구요?
가끔씩은 연락하고 지내자구요.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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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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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태서 종친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민족의 대명절 설날 연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넉넉하고 알찬 연휴가 되시기를.....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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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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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 소식 접하니 만갑기 그지 없네요. 설날 좋은 꿈 많이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