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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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2-10 20:24 조회1,542회 댓글0건본문
음력 정월 초하루날.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원(新元) 이라고도 하며 근신, 조심하는 날
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 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正大臣)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
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 과 표리(表裏 : 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
(政殿)의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으며,8도에서도 관찰사, 병사(兵使), 수사(水使), 목사(木使)는 전문
과 방물(方物)을 받쳤다.이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
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은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
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세찬으로는 떡국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 도소주(屠
蘇酒)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또 시루
떡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고,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
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을 서로 보내여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또
한 각 관하의 서예(胥隸)와 각 영문(營門)의 교졸(校卒)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암을 상관이나 선
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집에서는 대문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고 이를 받아드리는데 이것을 세함(歲
銜) 이라고 한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고양이의 그림을 봍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세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처음 들려
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한다. 또한 나무에 금. 목. 수. 화. 토 를 새겨
장기쪽 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쾌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 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남녀가 1년간 빗질 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어다가 설
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속담에 나오는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
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귀신을 두려워 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
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 둔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
을 잃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
에 안녕하시오>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 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 하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일을 덕담(德談)이라 한다.
설날의 놀이로는 남녀가 방 안에서 다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 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
를 한다.
1910년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수천 년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예를 들면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 돌리게 하였고, 설날 아침
새벽 세배 다니는 사람이 특히 흰옷을 입었을 때는 양력설에 세배 안가고, 또 무색옷을 안입는다고 해서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흰옷에 검은 물이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다. <崔常壽>
이라 해서, 한문으로는 신일(愼日) 이라고 쓴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正大臣)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
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 과 표리(表裏 : 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
(政殿)의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으며,8도에서도 관찰사, 병사(兵使), 수사(水使), 목사(木使)는 전문
과 방물(方物)을 받쳤다.이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
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은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
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세찬으로는 떡국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 도소주(屠
蘇酒)가 나오는데,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또 시루
떡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하고,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
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을 서로 보내여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또
한 각 관하의 서예(胥隸)와 각 영문(營門)의 교졸(校卒)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암을 상관이나 선
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집에서는 대문안에 옻칠한 쟁반을 놓고 이를 받아드리는데 이것을 세함(歲
銜) 이라고 한다. 민가에서는 벽 위에 닭과 고양이의 그림을 봍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세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처음 들려
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聽讖)이라 한다. 또한 나무에 금. 목. 수. 화. 토 를 새겨
장기쪽 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쾌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 치는데,
이를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남녀가 1년간 빗질 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어다가 설
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속담에 나오는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그 신의 주인
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이귀신을 두려워 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
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 둔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
을 잃고 있다가 닭이 울면 도망간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
에 안녕하시오>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 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 하다. 이렇게 남이 바라는 바를 말하는 일을 덕담(德談)이라 한다.
설날의 놀이로는 남녀가 방 안에서 다같이 윷놀이를 하고, 젊은 부녀자 들은 널뛰기, 남자들은 연날리기
를 한다.
1910년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수천 년동안 민간에서 지켜 내려와서 관습화된 음력설을 말살하고자
갖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예를 들면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 전 1주일 동안은 못 돌리게 하였고, 설날 아침
새벽 세배 다니는 사람이 특히 흰옷을 입었을 때는 양력설에 세배 안가고, 또 무색옷을 안입는다고 해서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흰옷에 검은 물이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다. <崔常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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