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담 김시양 선조님의 유배길을 따라서-임자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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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2-16 23:55 조회1,432회 댓글3건본문
<당태종명사직서(唐太宗命史直書)>라는 것은 방현령(房玄齡- 578~648. 당대의 명상), 허경종(許敬宗)등이 고조(高祖) 현재의 상감의 실록(實錄)을 올리자, 상감이 6월 초 4일의 일을 쓴 것을 보고 말이 너무 미온하다며 현령(玄齡)에게 말하기를,
“옛날 주공(周公)은 관숙선(管叔鮮)과 관숙도(管叔度)를 처벌하여 주(周)나라를 안정 시켰지만, 셋째면서 강숙(康叔-武王의 막내동생 康叔을 보내어 衛나라를 세움)과 벗을 하여 노(魯-周公은 아들 伯金을 보내어 魯를 세움)를 세워 남겼다. 짐(朕)이 한 바가 또한 이와 비슷하다. 사관(史官)은 어찌 이를 피했는가. 즉시 명하여 바로 쓰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건의 사적이 이와 같은데 시관(試官)이나 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것을 출제하였으니, 많은 선비들이 분하여 힐난하기에 이르렀고 내외에 전파되어 듣는 사람들이 놀라 해괴해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잡아와 추국하도록 명하십시오」하니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윤허하노라」고 하였다.
―대사헌 이이첨(李爾瞻), 집의 최동식(崔東式), 장령 유역(柳 ), 김질간(金質幹), 지평 조희일(趙希逸), 남이준(南以俊), 대간 박건(朴建), 사간 이성(李惺), 헌납 이창준(李昌俊), 정언 김호(金?)이다.―
6월 8일. 비. 교생(校生)을 고강(考講)할 일로 고산(高山)에 도착했는데, 금부도사 한명직(韓明直)이 잡으러 와서 식후에 출발하여 여산(礪山), 은진(恩津)을 지나 이산 (尼山)에서 잤다.
― 여산(礪山)군수 김요(金王寮 ), 은진(恩津)현감 정효성(鄭孝成), 이산(尼山)현감 김극건(金克鍵)이 와서 만났다.―
9일. 비를 무릅쓰고 공산(公山), 광정(廣程)을 지나 천안(天安)에서 잤다. ―목천(木川)에 사는 사촌형 및 김작(金綽)이 와서 만났다.―
10일. 비를 무릅쓰고 직산(稷山), 진위(振威)를 지나 용인(龍仁)에서 잤다.
―직산현감 목집선(睦集善), 용인현령 윤시용(尹是勇)이 와서 만났다.―
11일. 맑음. 판교(板橋)를 지나는데 정군칙(鄭君則-鄭世規. 1583-1611. 문신. 字는 君則. 호는 東里. 본관은 東萊. 시호는 景憲)이 이틀이나 와서 문안하였다.
13일. 비망기(備忘記-임금의 명령을 적어 승지에게 전하는 문서)에 김시언(金時言)의 죄는 말할 수 없으니, 삼성(三省)에서 추국하라 하였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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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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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늦은 시간까지 귀한 자료 올리시는 정성과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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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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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어느새...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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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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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지금 전라도에서 서울로 압송되고 있는 중입니다. 판교까지 왔습니다. 목천의 사촌형 김작을 찾아야겠습니다. 또 절친했던 정군칙도 찾아야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