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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님 시문 해석해 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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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2-21 09:14 조회1,49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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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선조님 시 몇 수와

한양 관련 선조님 기록 몇가지를 모아 보았습니다.


옛날 한시는 해석하기 나름이어서 해석문이 다양하게 나옵니다.

시간 나실 때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한때의 작은 즐거움일듯.....



1) 

삼일포 단서석 (三日浦丹書石)

김효인 (金孝印)

비와 갈을 새기는 일은 옛날에도 많았지만 /刻碑鐫碣古猶多

이끼가 먹고 티끌이 침노해 글자는 갈수록 알아볼 수 없나니 /蘚食塵侵字轉訛

어찌 손가락 끝의 천재의 피로 /爭似指頭千載血

한 번 산돌들 적셔 없어지지 않음 만하랴 /一淪山石不銷磨



2)

복주 (福州)

김방경 (金方慶)

산과 물은 모두 옛 눈에 보던 푸르름인데 /山水無非舊眼靑

누대도 또한 바로 소년 때 정일러라 /樓臺亦是少年情

기특하여라 고국에는 옛 풍속 남아서 /可憐故國遺風在

악기와 노래를 모두 거두어 모아 내 걸음을 뒤로하네 /收拾絃歌慰我行

*“신사년(辛巳年, 1281년)에 동으로 일본을 치다가 군사를 돌이킬 때 복주에 이르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우리의 명시>(동아출판사 펴냄, 1990)

山水無非舊眼靑 산수무비구안청 ---산수는 모두 예대로 푸르르고

樓臺亦是少年情 누대역시소년정 ---누대 또한 소년시절의 정경일세

可憐故國遺風在 가련고국유풍재 ---어여뻐라, 고향에는 옛 풍습 남아 있어

收拾絃歌慰我行 수습현가위아행 ---풍악을 울리면서 나의 길을 위로하네


<영환(문) 해석>

山水無非舊眼淸 (산수무비구안청) 산과 물은 옛날 보던 맑음 그대로이고,

樓臺亦是少年情 (누대역시소년정) 누대 또한 어릴 때 정일러라.

可憐故國遺風在 (가련고국유풍재) 애틋하여라, 고국엔 옛 풍속 남아있어,

收拾絃歌慰我行 (수습현가위안행) 노래소리 모아서 내갈길 위로하네.


<항용(제) 해석>

山水無非舊眼靑 산과 물은 옛모습 그대로 푸른 빛이 아닌 것이 없고

樓臺亦是少年情 소년시절 놀던 누각은 변함이 없구나

可憐故國遺風在 기특하여라 고국에는 옛 풍속이 남아 있으니

收拾絃歌慰我行 아름다운 악기와 노래를 거두어 모아 이 마음 달래네


3) 

영호루 (映湖樓)

김흔 (金?)

10년 전 놀던 일 꿈에 들어 오더니 /十載前游入夢淸

다시 오매 풍경 인정을 위로하네 /重來物色慰人情

벽 사이에서 엄군주의 글씨를 이어 쓰노니 /壁閒奉繼嚴君筆

어리석은 아들의 만호(해변의 수군(水軍)을 맡은 관직) 걸음이 부끄럽구나 /堪咤愚兒萬戶行

*벽 사이에서 엄군 : 그의 아버지의 글씨가 영호루(映湖樓)의 벽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4) 

호종백마산 응어제 (扈從白馬山應御製)

김영돈 (金永暾)

취보로 창해 위를 찾아 가노니 /翠?行尋蒼海上

흰 구름 사이로 옥퉁소 불어 보내네 /玉簫吹送白雲閒

한 티끌 홍진도 날아오기 어려운데 /紅塵一片飛難到

만 점 푸른 소라 비 갠 뒤의 산이로세 /萬點螺分雨後山



5) 

안동객사북루차운고조상락공시운 (安東客舍北樓次高祖上洛公詩韻)

김구용 (金九容)

先祖題詩字字淸 선조께서 지으신 시 글자마다 맑고 맑아,

重來此日更含情 오늘 다시 와서 보니 정감이 새로워라.

江山似有留連色 안동강산은 옛모습 그대로 어울러 있으니,

仍占春風末肯行 봄바람 기대서서 가기 싫을 뿐일세.



6)

帆急 (범급)

김구용 (金九容)

帆急山如走 돛이 빨리 나부끼니 산이 달리는 듯

舟行岸自移 배가 나아가니 언덕이 스스로 옮기는 듯

異鄕頻問俗 낯선 땅에 이르면 풍속을 묻고

佳妻强題詩 경치좋은 곳에선 억지 시를 읊고요

吳楚千年地 오나라 초나라 오래된 땅에

江湖五月時 양자강과 호수는 오월이구나

莫嫌無一物 내 한푼 없다고 싫어를 말라

風月也相隨 나에겐 아직도 풍월이 서로 따른다네


범급 帆急---고려말의 문신인 김구용(金九容)의 한시. 오언율시 2수중 두 번째것이다. 그의 저서인 "척약재학음집(小易若齋學吟集)" 권하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돛단배가 빠르게 달려 나가니 마치 산기슭이 저절로 옮겨지듯 한다고 하여 속도감을 흥기시키고 나서, 작자는 타향에 오면 자주 그 고을의 풍속을 묻고 좋은 곳을 찾아가 힘써 시를 짓곤 한다고 하였다. 타향이지만 때는 5월이라, 강호에 찾아가보니 더불어 놀만한 사물이 하나도 없으나, 풍월이 함께 따라와 즐기노라 말한다. 이 작품은 작자가 대리(大理)에 귀양을 갔을 때 지은 것이므로 읽는 이로 하여금 창연해지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 구절에서 "가처(佳處)에서 힘써 시를 짓노라(强題詩)."라고 하였듯이 그의 귀양지에서의 고독함과 괴로운 심정을 간곡하게 시적 언어로 표출시켜 놓고 있다. 또 끝구절에서 역시 "풍월만이 따라와 주네"라고 한 것에서도 그와 같은 고적감이 다시 제고되고 있다.


7)

추흥정시(秋興亭詩) 

김구용 (金九容)

용산의 가을 빛에 사람의 마음이 담담한데

구름은 깨끄사혹 강은 맑으며 풀과 나무가 무성하네

하루가 다 가도록 높은 정자에서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항쌍의 학과 한 벌의 거문고라네

龍山秋色淡人心 용산추색담인심 雲淨江澄草樹深(웅정강징추수심)

竟日高亭誰是伴(경일고정누시반) (一雙野鶴一張琴) 일쌍야학일장금


봉익대부 김공이 한양의 용산에 물러나 살면서 기거하는 집의 동쪽에 정자를 얽었다. 내가 麗江에서 돌아와 그 정자에 올라가서 배회하고 바라보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이튿날 공이 나에게 그것에 이름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는데 개경에 들어가자 子安 이숭인 댁에 모여서 그 정자의 이름이 지녀야 할 뜻을 논의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용산은 매우 비옥하고 풍요하여 무릇 나오는 물건이 특별히 풍요롭고 부드럽다. 또 고기 잡는 것과 벼농사 짓는 모습을 노닐며 감상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공이 이것을 즐기며 여기서 사니 '추흥'이라고 이름을 짓는게 어떤가?"하니 여러 사람이 모두 좋다고 하였다. 이에 붓을 먹에 적셔 세 글자를 쓰고, 인하여 자안(이숭인)에게 기문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과 함께 시를 읊었다.


추흥정기(秋興亭記)

이숭인 

용산(龍山)은 본래부터 산수(山水)를 즐길 수 있는 경치가 있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란다. 강에는 배가 운행하고 육지에는 수레가 통행하여 이틀 밤낮이면 경도(京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별장을 마련하는 귀인들이 많다. 전(前) 봉익(奉翊) 김공(金公)이 벼슬에서 물러나와 여기에 쉬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다. 살고 있는 집 동쪽에서 우연히 한 높은 언덕을 발견하였다. 높고 길게 굽어서 형상이 배를 엎어 놓은것 같다. 드디어 그 위에 정자를 세웠는데 소나무를 베어 서까래를 걸고 띠풀을 베어 지붕을 덮었다. 땅이 높고 모진 곳은 평평하게 만들고 나무가 빽빽하게 가리운 것은 성기게 솎아내니 두루 돌아다니며 사방을 둘러보아도 좋지 않은 것이 없다. 이에 김 비감(金?監)에게 정자의 이름을 청하여 추흥정(秋興亭)이라는 석 자를 써서 현판을 달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 한두가지 그럴 듯한 것을 찾아서 글을 쓴다.


8) 

휴가 (休暇)

김제안 (金齊顔)

천하가 어지러이 싸움만 일삼거니 / 天下紛紛事鬪爭

백성들은 그 언제나 태평 세월 만나보리 / 黎民何日見昇平

물에 잠긴 연기 속에 초가집이 고요하여 / 水沈煙裏?堂靜

때때로 등불 돋우며 공명을 그리워하네 / 時復挑燈憶孔明



9) 

再過楊季平村舍 (양계 평촌사를 두 번째 지내면서)

김사형 (金士衡)

碧溪西畔亂山東 서쪽에는 푸른 시냇물이 흐르고 동쪽에는 여러 산들이 어지럽게 서있네

楊子高亭活畵中 양자의 높은 정자 그림속에 살아 있으니

淸福豈容人久假 이 맑은 복을 어찌 남에게만 오래 주고 있으랴

勝遊眞似夢還空 멋진 놀이는 참으로 허무하게 돌아온 꿈만 같도다

樂生莫作千年調 인생이 천년을 고루 살기를 즐기지 마라

養拙甘爲一野翁 수양하여 한날 야옹이 됨이 좋으련만

不久收身同結社 멀지 않아 몸을 거두고 함께 모일 것이니

半分溪月與山風 시냇가에 저 달과 산바람을 반만 나누어 주오


10)

川方寺 (천방사)

김사형 (金士衡)

數間蘭若白雲中 두어칸 절이 백운 가운데 있으니

絶境疑通桂子宮 그 절경이야 말로 계자궁(신선의 궁전)에 통했는듯

夜靜波濤侵小夢 고요한 밤 파도소리 얕은 꿈을 꾸게 하고

月明笙學下瑤空 달밝은 밤 피리소리에 학이 하늘에서 내려오도다

(一聯未詳闕之) (한짝은 알수 없어 궐함)

往事回頭堪笑殺 머리 돌려 지낸 일의 우수움을 참으며

遯肥從此作閒翁 영화를 다 버리고 이제부터 한옹이 되리라

 

11)

이요정기(二樂亭記)


전하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신 이듬해에 친근한 신하를 나누어 보내어, 주군(州郡)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는 군사와 백성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었다. 종맹(宗盟 종묘 앞에서 맺은 맹세, 또는 그 사람)인 문하 좌정승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과 문하 우정승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이, 여러 맹세한 이들과 더불어 새 서울 남쪽에서 전송하는데 소위 이요정(二樂亭)이라는 정자에 올랐다.

떠나는 사람은 국사가 불완전한 데에 생각이 미치니, 그 사방을 경영하는 뜻이 어떠하며, 남아 있는 사람은 사명이 중대함으로써 권면하니 그 정녕하게 서로 주는 마음이 또 어떠한가. 그런데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며 이별을 아끼는 정과 강산을 감상하는 흥이 함께 얽혀 느껴지니 자연히 다하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부탁하여 기문(記文)을 쓰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요정은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의 별장이다. 산봉우리가 우뚝하게 한강 가운데 서 있는데, 정자를 그위에 지어 유람하는 장소로 삼았다


12) 

呈從叔척若齋島配時韻 / 종숙 척약재 유배때 보낸시

김휴 (金休)

大理島中叔是非 대리도에 계신 숙주(叔主)의 시비(是非) 때문에

浮雲山下姪冠衣 부운산 밑에있는 종질(從姪)은 의관(衣冠)이 잦습니다.

島山千里相思夜 도산천리(島山千里) 떨어져서 서로 사모(思慕)하는 밤에

自獨無言不掩扉 스스로 홀로 말없이 사립문을 못닫나이다.

*학당(學堂) 김휴(金休) (1350 - ?) 안동인, 자는 鍊父(연부), 정몽주 선생의 문하생. 父는 전서공 김성목이며 아들이 김익정이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이렇게 모아보니 또다는 감흥이 있습니다.

김태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도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오늘까지의 자료 중 문집총간 자료는 홈에 모두 올렸습니다. 다만, 안렴사공파 선조님 중 &lt;역사인물란&gt;에 없는 분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후에 안렴사공파 자료에 올려 주십시요.

주요 시문 자료는 프린트하여 교정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