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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 김시양 선조님의 유배길을 따라서-임자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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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2-21 22:32 조회1,63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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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담양부사(潭陽府使) 윤효선(尹孝先)은 역적(임해군) 진(?)을 논열(論列)한 원훈(元勳)인데 들어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신(臣)이 전라도에 있으면서 시관(試官)으로 무안현(務安縣)에 간 즉, 도사(都事) 김시언(金時言)이 시관(試官)이 되고, 장흥부사(長興府使) 김정목(金庭睦) 역시 시관(試官)이 되었습니다. 신(臣)이 초장(初場)에서 출제한 후에 <학림옥로(鶴林玉露)>를 열어 읽어보니, 그 글에는 한 조목에 두목(杜牧)의 <사로안유시멸유(四老安劉是滅劉)>의 한 쌍의 시구가 있기도 하는 등 신기한 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세 쌍의 구절이 없어서 신(臣)은 그 색다름을 논의한 게 아주 이상하기에 말하기를,  “이 색다름을 논하면 이상하겠습니까?”고 하였습니다.  김시언(金時言) 역시 매우 이상한지 말하기를, “매우 색다르군.” 하여 이렇게 논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장중(場中)에 출제하려고 한 게 아니라 여러 번 개제(改題)한 후여서 마침내 새롭게 본 말로 제(題)를 삼아 낸 것입니다. 신(臣)등은 ‘옛날에 소식(蘇軾-1036-1101. 북송의 문호. 자 子瞻, 호 東坡)의 무왕(武王)의 설명에 잘못이 있다고 여기는데도,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제(題)로 삼아 소식의 말을 크게 여겨왔으나, 그렇지 않고  도리어 잘못인 것 역시 이런 따위라’고 말하였습니다. 어찌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종사(宗社)를 안정시킨 사로(四老)를 잘못이라고 하여 논하게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당태종 명사 직서(唐太宗命史直書)>의 제(題)에 있어서도, 김정목(金庭睦)이 강감대성(綱鑑大成)을 펴 보고서 서로 의논하여 내 놓았는데, 마침 해가 저물어가므로 다시 세밀히 생각하지 않고, 덤덤히 고사(古事)를 논하라고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겼고, 그 제(題)를 이미 내 놓은 후에도, 또 유생들이 고쳐주기를 청한 거동은 없었는데, 이른바「중장(中場)에서 모두 호소하며 취할 수 없는 말이니, 시관(試官)이 합격 발표에 ‘높은 등급을 감히 낼 수 없을 것이다’ 운운한 것은 모두 신(臣)이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한 일입니다. 지금 김시언(金時言)이 이 때문에 묶여 갇혀서 장차 중한 추궁을 입게 되어 추국(推鞫)하는 마당에, 신(臣)을 힐난함을 참으로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운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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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有司)에서 스스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그대에게 무슨 혐의가 있겠는가. 그대는 안심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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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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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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