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단월이란?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5-03-09 11:42 조회1,720회 댓글0건본문
꼬리글 달기가 안되어서 여기에 붙입니다.
단월(檀越)=단나 [檀那, 〔범〕 dana]
남에게 베푼다는 의미. 불교에서의 보시[布施] 와 같은 뜻이다. 산스크리트 다나(dana)의 음역(音譯)인데, 산스크리트와 한자어를 합쳐서 단시(檀施)라고도 쓴다. 보시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월(檀越)과 섞여 쓰기도 하는데, 사원이나 승려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신자를 승려들이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또한 귀족이나 호족들의 집안에서 사원의 재정을 부담하는 단가제도(檀家制度)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이 제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사원이 특정한 단월에 의해서 유지되는 일 또한 적었다. 그러나 귀족중에는 보리사[菩提寺]를 건축하여 사원에 주어진 특권을 남용 또는 증식을 목적으로 재산을 기탁하는 자들도 있었다.
비구=남자스님
비구니=여자스님
우바새=남자신도
우바이=여자신도
----------------------------------------
신륵사(神勒寺) 보제사리석종기(普濟舍利石鐘記)
선각왕사(禪覺王師)인 보제존자(普濟尊者)가 여흥(驪興)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 하였다. 스님이 입적할 때 혁혁한 영험(靈驗)과 이서(異瑞)에 대하여 한 때 의심하였던 각신(覺信)스님이더욱 분발하여 천년 후에까지 모든 불자(佛子)들에게 신심을 일으키게 하고자 진영당(眞影堂)을 짓고 영정을 모시는 한편, 석종탑(石鐘塔)을 만들어 사리(舍利)를 조장(?藏)하였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난 셈이다. 각신(覺信)스님은 석종(石鐘) 불사(佛事)를 맡아 주선하고 각주(覺珠)스님은 비석에 사용할 돌을 구하는 한편 장차 스님의 행적(行跡) 사실을 비석에 새기고자 비문을 이색(李穡)에게 청탁하기로 하였다.
이 때 염(廉) 정당(政堂)이 천녕(川寧)에 있으면서 자주 신륵사에 왕래하였다. 각주(覺珠)스님이 염(廉) 정당(政堂)에게 이를 부탁하였더니 공(公)이 기꺼워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곧 개경(開京)으로 가서 마땅히 스님을 대신하여 한 말씀을 한산자(韓山子)에게 청(請)하겠습니다. 그러면 한산자는 반드시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염(廉) 정당(政堂)이 나에게 진당기(眞堂記)를 청원(請願)하므로,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강월헌(江月軒)은 나옹스님이 주석(住錫)하던 당호(堂號)인 것이다. 보제(普濟)의 육신은 이미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여천강(驪川江)과 달은 전일(前日)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지금도 신륵사(神勒寺)는 장강(長江)을 굽어보고 있으며, 석종탑(石鐘塔)은 강변 언덕에 우뚝 서 있다. 달이 뜨면 달 그림자가 강물 속에 거꾸로 비치어서 천광(天光)과 수색(水色)과 등불 그림자와 향불 연기가 그 가운데 서로 교잡(交?)하니, 이른바 강월헌(江月軒)은 비록 진묵겁(塵墨劫)이 지나가더라도 보제선사(普濟禪師)의 생존시(生存時)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제 보제(普濟)의 사리(舍利)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혹은 하늘 높이 올라가 운무(雲霧) 중에 있고, 혹은 여염(閭閻)의 연진(烟塵) 속에 있으며, 혹은 사리함에 모시고 목에 걸거나 머리에 이고 다니기도 하고, 혹은 그 사리를 잠잘 때에도 항상 팔 곁에 모시고 자기도 한다.이와 같이 극진히 사리(舍利)를 봉지(奉持)하는 것을 생전에 스님을 존경하던 것과 비교하면, 백배 이상으로도 견줄 수 없다. 하물며 신륵사는 나옹의 입적(入寂)한 곳이므로, 마땅히 각주(覺珠)스님이 사리(舍利)에 대하여 온 정성을 다하였다. 신륵사는 보제(普濟)스님으로 말미암아 그 이름과 규모가 높고 넓어졌다.
그러므로 장차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며, 석종탑비(石鐘塔碑)도 견고하여 신륵사와 더불어 시종(始終)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여천강(驪川江)과 이 달과 더불어 무궁할 것이다. 오호라! 허공에서 보이는 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눈병 때문이며, 진묵겁(塵墨劫)도 또한 인간의 분별이지 결코 긴 시간이 아닌 것이다. 세계에는 성(成)·주(住)·괴(壞)·공(空)의 변천이 있어 세계가 비록 성(成)·주(住)·괴(壞)·공(空)에 따라 변천하지만 우리들의 인성(人性)은 영원히 불변자약(不變自若)한 것이다. 보제(普濟)의 사리(舍利)가 장차 세계와 더불어 성괴(成壞)함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인성(人性)과 같이 자약(自若)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비록 우부(愚夫)와 우부(愚婦)일 지라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후세에 이 사리에 예경(禮敬)하는 사람들은 보제(普濟)스님의 고상한 도풍(道風)을 흠모하고 귀의하여 그의 마음을 구(求)하는 것이어야 비로소 가히 보제(普濟)가 끼친 큰 은혜에 보답함이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제의 도덕은 보제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결코 우리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에 대해 보제의 사리석종기(舍利石鐘記)를 기록하는 바이다.
보제존자(普濟尊者) 진당시(眞堂詩) 병서(幷序)
석지선(釋志先)스님은 나와는 아직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이다. 국신리(國?里)의 노구(老?)가 안내하여 왔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스님인 선각(禪覺)의 탑은 선생(先生)께서 이미 그 비문을 지어 주었으므로 지선(志先) 등 문인(門人)들이 선생으로부터 망극(罔極)한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선생을 찾아뵙는 것은 한 마디로 말씀드려서 우리 스님의 진당(眞堂)에 대한 찬시(讚詩)를 지어달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그 전말(顚末)을 적는 바이다. 우리 스님께서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타나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說法) 도생(度生)함이 비유컨대 마치 부처님이 출현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회암사(檜巖寺)는 기원정사와 같고 신륵사(神勒寺)는 또한 구시나가라의 쌍림(雙林)과 같다 할 것이다. 지선(志先)스님 등이 아무리 반호(攀呼)하고 민절(悶絶)한들 마침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스님의 행적을 돌아보건대 마치 밝은 달이 허공에서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그 여광(餘光)까지 이미 끝나고 없으나, 다행히도 사리(舍利)를 남겨 두었으므로 모두가 지극한 마음으로 봉지(奉持)하며 또한 도모(道貌)를 영정(影幀)에 담아 두었으므로 후세에 널리 전시(傳示)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신륵사의 석종탑(石鐘塔)은 실제로 스님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하고 있다. 지선(志先) 등이 염려하는 바는 후대에 이 사리탑에 예경(禮敬)하는 이가 우리 스님의 도모(道貌)를 알지 못하거나, 또한 그의 도풍(道風)을 흠모하더라도 그 모습을 알지 못한다면 귀앙(歸仰)하는 마음에 반드시 겸연(慊然)(부족함)함을 느끼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아가서는 도모(道貌)인 영정을 첨앙(瞻仰)하고, 물러나와 사리석종탑(舍利石鐘塔)을 참관하면, 흔모(欣慕)하는 마음이 개연지경(介然之頃)이라도 감명을 받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당(眞堂)을 짓고 영정을 봉안하는 이유인 것이다.
선생(先生)께서 만약 우리 불교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붓을 잡고 석종기(石鐘記)를 짓는다 하더라도 선생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선(志先)스님의 말이 옳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살펴보건대 전국 각 사찰에 불상과 영정(影幀)이 봉안되고 있음이 적지 않다. 전문가가 아닌 동남(童男) 동녀(童女)와 신남(信男) 신녀(信女)들이 어찌 이를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반드시 설명자로부터 이는 불상이니 그 명호가 모불(某佛)이시고 또 이는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의 영정(影幀)이니 그의 당호(堂號)는 모(某)스님이라고 안내를 받고서야, 비로소 귀앙(歸仰)의 예배(禮拜)를 드리고 마음이 그 상모(像貌)에 명합(冥合)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선각(禪覺)스님의 진영(眞影)도 또한 하나의 단청(丹靑)한 고물(故物)에 불과할 것이니, 누구인들 제대로 알 수 있으랴? 지선(志先) 등이 구구(區區)한 그 마음을 장래(將來)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곳이 없다면서 그의 청탁함이 돈독하므로 부득이 사양하지 못하고 간략히 그 전말(顚末)을 서술하였으니, 후대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꾸짖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그리고 진당(眞堂)을 건축하는 토목공사(土木工事)의 과정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사(常事)이므로 기록하지 않는 바이다. 다음과 같이 진당시(眞堂詩)를 읊는다.
심심(甚深)하온 부처님의 묘(妙)한 법(法)이여!
그 정체는 유(有)도 무(無)도 아닐 것이다.
위대하신 우리 스님 영정(影幀)이시여!
누가 감히 스님 도덕 이길 것인가. ①
늠연(凜然)하고 탁월하신 스님의 생애!
준수(俊秀)하온 스님 모습 영정(影幀)에 담다.
먼 곳에서 찾아와서 예배(禮拜)하는 자(者)
스님 육성(肉聲) 생생하게 듣는 듯하네! ②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한산군(韓山君) 영예문춘추관사(領藝文春秋館事) 겸성균대사성(兼成均大司成)
이색(李穡) 찬(撰)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 대광(大匡)상당군(上黨君) 진현관(進賢館) 대제학(大提學) 신(臣) 한수(韓脩) 봉(奉) 교(敎) 서(書)
창룡기미(蒼龍己未) 5월 15일
문인(門人) 각주(覺珠) 각성(覺惺)73
각굉(覺宏) 등은 비석을 세우고 이인린(李仁?)은
글자를 새기다.
<이하는 음기(陰記)로서 문생(門生)과 단월(檀越)과 중창연화(重創緣化) 명단이므로 원문 그대로 붙이고 번역은 생략한다.>
(음기(陰記))
문생(門生) 전주송광(前住松廣) 광통무애(廣通無?) 원묘대지(圓妙大智)
보제대선사(普濟大禪師) 수환암(脩幻菴) 전주광암(前住光巖)
정지원명(正智圓明) 응물무애(應物無?) 총지국일대선사(摠持國一大禪師)
승과암(昇果庵) 산□□□□」광대선사(山□□□□」光大禪師) 원본공(源本空)
수월사주지(水月寺住持) 대선사(大禪師) 지연(智淵)
보광사주지(普光寺住持) 선사(禪師) 각호(覺瑚)
수좌(首座) 달순(達順)
수좌(首座) 무학(無學) 계행(戒行) 계철(戒哲) □□ □□」 굉여(宏如) 굉숙(宏淑)
천규(天圭) 가중(可中) 각동(覺同) 각종(覺宗) 죽오(竹悟) 각공(覺空)
각금(覺芩) 보명(普明) 각조(覺照) 각영(覺永) 각희(覺希) 각란(覺蘭)
호명(護明) □□ □□」 계생(戒生) 지보(志寶) 지일(志一) 각경(覺敬)
지정(志正) 안분(安分) 각수(覺守)
비구니(比丘尼) 정업원주지(淨業院住持) 묘봉(妙峯) 묘덕(妙德) 묘간(妙?) 묘신(妙信)
묘해(妙海) 묘해(妙海) □□ □□」 묘혜(妙惠) 묘중(妙重) 묘헌(妙憲)
묘현(妙玄) 묘경(妙瓊) 묘인(妙因) 묘진(妙珍) 묘령(妙玲) 묘한(妙閑)
월미(月眉) 묘징(妙澄) 묘총(妙摠) 묘당(妙幢) 묘응(妙應) 묘선(妙善) □□
단월질(檀越秩) 영창부원군(永昌府院君) 유(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
순성군(順城君) 정(挺)
사공(司空) 각상(覺祥)
사공(司空) 지초(志超)
장패감대경(章佩監大卿) 귀성부원군(龜城府院君) 김□□(金□□) □□□」
문하시중(門下侍中)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 경복흥(慶復興)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광평부원군(廣平府院君) 이인임(李仁任)
판삼사사(判三司事)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 최영(崔瑩)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 목인길(睦仁吉)
전삼사우사(前三司右使) 김속명(金續命)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 이득분(李得芬)
남양군(南陽君) 홍영통(洪永通)
전판개성부사(前判開城府事) 이성림(李成林)
전정당문학(前政堂文學) □□□
□□□」산군(山君) 박성량(朴成亮)
중원군(中原君) 유완(劉完)
밀직사사(密直司使) 도길부(都吉敷)
전개성윤(前開城尹) 이방직(李邦直)
전개성윤(前開城尹) 유향(柳珦)
전판도판서(前版圖判書) 조무(趙茂)
전전(前典)□□□□ □」 계생(繼生)
전례의판서(前禮儀判書) 권희(權僖)
전전공판서(前典工判書) 홍의룡(洪義龍)
전전공판서(前典工判書) 유지습(柳之?)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중광(金仲光)
충주목사(忠州牧使) 김존성(金存誠)
□□□□」사사(사사) 변남룡(卞南龍)
전판전객사사(前判典客寺事) 이귀영(李貴榮)
전전교사사(前典校寺事) 조운흘(趙云?)
전판군기사사(前判軍器寺事) 윤순(尹順)
전삼사좌윤(前三司左尹) 김구용(金九容)
전(前)□□□□□ □□호(瑚)
득통거사(得通居士) 임만리(林萬里)
전대호군(前大護軍) 이천명(李天明)
전전의령(前典儀令) 조사겸(趙思謙)
지여흥군사(知驪興郡事) 오선(吳璿)
전중현대부(前中顯大夫) 조신을(曹臣乙)
전(前)□□ □□□」
호군(護軍) 임언충(任彦忠)
호군(護軍) 조경(趙璟)
전지청풍군사(前知淸風郡事) 김승필(金承弼)
전장군(前將軍) 원후(元?)
전개성소윤(前開城少尹) 이을림(李乙琳)
전전의부정(前典醫副正) 신계방(辛繼芳)
□□□□□」사(事) 이린(李璘)
전전의부정(前典醫副正) 양윤기(梁允奇)
전전주판관(前全州判官) 고천구(高天具)
전중랑장원로(前中郞將 元老) 박사검(朴思儉)
전랑장(前郎將) 김조(金釣)
전랑장(前郎將) 신자온(辛子溫)
□□□□□□□」량(良) 이각경(李覺卿)
낭장(郎將) 이득계(李得桂)
진사(進士) 원천석(元天錫)
판군기사사(判軍器寺事) 김극공(金克恭)
지풍주사(知豊州事) 유자(柳滋)
전판사(前判事) 홍원로(洪元老)
숙령옹주(淑寧翁主) 김씨묘선(金氏妙善)
정신택주(貞信宅主) 안씨(安氏)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김득배(金得培)처(妻) 동주군부인(?州 郡夫人)
김씨묘경(金氏妙?)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묘수(元氏妙守)
□□□□인(人) 박씨(朴氏)
진강군(晋康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