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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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png 김시민(金時敏)

p05.png 3. 주요 자료 소개

  16) 노산 이은상선생 충무공 사당 참배기 (2007. 5. 19. 태영(군) 제공)

충렬사(忠烈祠)의 두 충신  

    -노산 이은상-

 

나는 다시 차를 달려 괴산면 능촌리(陵村里)에 있는 충렬사(忠烈祠)를 찾는다.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과 문숙공(文肅公) 김제갑(金悌甲)을 모신 사당이다.

 

비가 내린다. 나그넷길에 내리는 비는 한결 더 구슬프다. 그런데다가 임란 충신을 모신 곳을 찾아가는 길이라 천공(天公)도 눈물로써 동행하는 것이다.

 

큰 길에서 논두렁길로 강뚝을 찾아 나가, 다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만 된다.

 

비를 맞으면서 그리고 또 논두렁길에 발을 빠트려가면서도 굳이 이 길을 찾는 까닭은 그들의 영위 앞에 엎디어 절하고, 또 오늘의 우리 꼴을 호소하고도 싶어서다.

 

충무공(忠武公)이란 시호(諡號)를 받은 분이 우리 역사상에 이순신(李 舜臣)장군을 비롯하여 十여명이나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이순신장군과 함께 김시민장군을 높이 받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강언덕에 나가서니 건너 편 숲 속에 충렬사의 처마 끝이 내다 보인다.

 

어서 강을 건너고 싶건마는, 사공 없는 빈 배에 비만 내린다.

 

마을을 향해서 몇 번이나 외친 다음에야 겨우 사공이 나와 강을 건넜다. 내가 성의를 내어 참배하는 것도 이같이 힘이 드는데, 보통 때야, 누가 이 궁벽한 마을을 찾아온다 할 것이랴. 옛 어른을 모시는 사당은 사람 많이 다니는 곳에다 두든지, 그렇지 않고 사당을 꼭 모셔야할 곳이면 참배하기 쉽도록 길을 편리하게 닦든지 해야할 것을 다시금 느끼는 것이다.

 

사당 문을 열고 두 분 충신의 영위 앞에 절하고 그들의 피 흘리던 최후를 그려본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크게 이긴『육전의 이순신』이라 일컸던 이다. 임진년(1592) 10월! 그가 진주 판관(判官)으로 목사(牧使)를 대신해서 왜적 우시등원랑(羽柴藤元郞)의 3만명 군사를 상대로 엿새 밤낮을 싸울적에, 부인과 함께 술과 음식을 싸들고 성을 돌며 군사들을 먹이면서 격려하고, 지혜와 힘을 기울여 외적을 퇴치시키고서, 최후에 몸소 성루(城樓)에 올라 퇴군하는 적들을 쏘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병졸들을 격려한 나머지 최후의 승첩을 거두긴 했으나, 탄환에 상한 것 때문에 마침내 세상을 떠나니 39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그에게 영의정 상락부원군(領議政上洛府院君)을 봉하고 충무공의 시호를 내렸거니와, 나는 지금 여기서 그날에 군사들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같이 먹고 같이 자며 일심 단결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진주성 동포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낸 그 의기와, 정렬과, 은공에 다시금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편에 같이 모신 의재(毅齋) 김제갑(金 悌甲)은 뒤에 영의정(領議政)을 봉하고 문숙공(文肅公)의 시호를 내린 분인데, 임진란 당시에는 강원도 원주(原州) 목사로 있어, 부인과 아들과 함께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죽은 이다.

 

장하지 아니하냐. 68세의 늙은 연세이면서 어찌 그같은 의기와 정열로 자기의 최후를 의롭게 마칠 수가 있었던가. 이같이 한 분은 늙고, 한 분은 젊은, 두 분의 영위 앞에 한 번 더 엎디어 절하고 물러나오며 마음의 노래를 바친다.

 

젊은 의기 떨치신 이여

우뢰같은 님이시외다

늙을수록 곧으신 이여

대같은 님이시외다

가슴에 두 어른 받드오니

겁낼 것이 없소이다.

 

이 충렬사에서 위로 좀 더 올라가면 백곡 김득신(栢谷 金得臣)의 취묵당(醉黙堂)이 있다. 그는 김시민의 손자로서, 재주가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대신, 같은 글을 가지고는 남보다 더 많이 읽는 것으로써 자랑을 삼던 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백이전(伯夷傳)을 즐겨 읽기를 1억 1만 3천 번을 했기 때문에 이 집을 『억만재』(億萬齋)라고도 부르는 것이요, 그래서 현종(顯宗) 12년(1671)에 전국에 유행병이 돌아 많은 생명이 없어진 일이 있을때, 농담하는 사람들이 “올해 죽은 사람과 자네 글 읽은 번수가 어느 쪽이 더 많은가”하고 말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세상엔 재주를 자랑하는 이가 많다.

그 대신 재주 없는 걸 탄식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재주만을 자랑할 것도 아니요, 또 재주 없다고 탄식할 것도 아닌 것이다.

성공은 결코 재주로써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심과 성의로써 되는 것이다.

경솔한 재주로써는 되레 실패하기가 쉽지마는, 부지런과 노력으로써는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여기 이 『억만재』에서 배우고 가는 것이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1964년 충청도 여러 고을을 답파한 기행문으로

『가을을 안고』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 지면에 11월에 계제했던

글 중에서 『충렬사(忠烈祠)의 두 충신』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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