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 안사연 답사 미리보기-2. 정충량(鄭忠樑, 1480(성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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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7-01-25 15:10 조회802회 댓글0건본문
2. 정충량(鄭忠樑, 1480(성종 11)∼1523(중종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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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는 국간(國幹). 형조판서 광세(光世)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생원·진사시를 거쳐 1506년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검열에 임용된 뒤 대교를 거쳐 1507년(중종 2) 봉교가 되었다. 이때 동료 김흠조(金欽祖)와 함께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伸寃)과 사관(史官)의 직필(直筆)을 보장해줄 것을 주청하기도 하였다. 그 뒤 전적·공조좌랑·형조좌랑·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황해도도사·병조정랑·공조정랑·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뒤, 1511년 헌납이 되었다. 그 뒤 지평·장령·집의·승문원참교·내자시정(內資寺正)·사섬시정(司贍寺正)·사재감정을 역임하였다. 1518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으나, 사헌부·사간원으로부터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탄핵을 받아 곧 이조참의로 옮겼다.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대간의 탄핵으로 공조참의로 피척(被斥)되어 수년 있다가 죽었다. 침착하고 행동이 곧으며 말이 없고 근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의 잘못을 들추지 않고 담박(淡泊)하여 명리에 급급하지 않았다는 평을 받았다.
묘소는 경기 광주군 장지동(墻枝洞) 담안마을(담안길 36)에 있다.
묘갈문은 모재 김안국이 짓고, 유연재 김희수가 전과 서를 하였다.
∎담안(墻內)마을
광주시 장지동 담안 마을에는 동래정씨(東萊鄭氏)들의 묘역이 있는데, 43번 국도를 타고 광주시내에서 수원 방면으로 약 3km쯤 가다가 오포읍 고산리 허산마을과 경계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보면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지형을 보면, 마치 담장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지어진 이름인데 이 마을은 동래 정씨의 세거지로 마을 전체가 동래 정씨의 사패지(賜牌地)였다. 조선 중종대의 문신으로 평안도관찰사와 경기관찰사를 거쳐, 형조판서, 의정부 좌찬성을 역임한 소평(昭平) 정광세(鄭光世)의 묘와 그의 아들이며 중종대의 문신으로 도승지, 이조참의, 지충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정충량(鄭忠樑)의 묘와 그 후손들의 묘가 있다. 장지동 후지(뒷가지)마을에는 조선 광해군 때에 폐모론을 극력 반대하여 진도(珍島), 종성(鐘城), 광양(光陽) 등지에 유배되고, 인조반정후에 대사간을 역임한 휴옹(休翁) 정홍익(鄭弘翼)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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