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 안사연 답사 미리보기-3. 김감(金勘, 1466(세조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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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7-01-25 15:11 조회743회 댓글0건본문
3. 김감(金勘, 1466(세조 12)-1509(중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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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헌(子獻), 호는 일재(一齋)·선동(仙洞). 문정공(文靖公) 자지(自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수(脩)이고, 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원신(元臣)이며, 어머니는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1489년(성종 20) 진사가 되었고, 이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임용되었다. 1492년에는 유숭조(柳崇祖)·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호당(湖堂)에서 천문·역법을 연구하였다. 1498년 홍문관부교리에 올랐고, 이어서 교리·응교·전한·직제학을 역임하고, 1501년(연산군 7)에 부제학이 되었다.
이어 병조참지가 되고, 동부승지·우부승지·좌부승지·우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그 뒤 호조참판에 임명되고 동지성균관사·지의금부사·홍문관대제학·추쇄도감제조(推刷都監提調) 등을 겸하였다. 임사홍(任士洪)과 더불어 갑자사화를 다스려 예조판서에 임명되었다.
당시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져 금표(禁標)를 세워 도성 주변의 백성을 먼곳으로 이주시키고 사냥을 일삼을 때 금표 안내문을 지었고, 추천시(鞦韆詩)로써 연산군에 아첨하였다. 그 뒤 의정부우찬성을 거쳐 판중추부사로서 경상도관찰사를 겸임했고, 연산군에 충성을 서약하는 경서문(敬誓文)을 지어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뒤 중종반정에 협력해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연창부원군(延昌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어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가 되어 『연산군일기』를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1507년(중종 2)박경(朴耕) 등이 박원종(朴元宗) 등을 도모하려는 모의에 연좌되어 금산에 유배되었다. 그 뒤 혐의가 풀려 연창부원군으로서 영경연사(領經筵事)를 담당하다가, 1509년에 죽었다.
중종반정 이후 줄곧 연산군 때의 총신이었다는 이유로 사림에 의해 지탄을 받았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산69-1 에 있으며,
신도비는 이요정 신용개가 찬하고, 유연재 김희수가 전과 서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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