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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재(5) 금헌기(琴軒記) -김수온(金守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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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3-31 10:01 조회1,62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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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헌기(琴軒記)

김수온(金守溫)


무릇 선왕(先王)이 세상에 남기어 세운 교화는 찬란하고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대강령은 예(禮)와 악(樂)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에 대한 기록은 이대(二戴 대덕(戴德)ㆍ대성(戴聖)) 외에 무려 수천여 가(家)를 헤아릴 수

 

있으니, 그 연혁(沿革)도수(度數)의 변천에 있어서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되었는데, 악에 이르러는 전하는

 

기록이 아주 적다. 본시 예ㆍ악이란 두 가지가 서로 본말(本末)이 되고, 체(體)ㆍ용(用)이 되어 어느 한쪽도 폐할 수

 

없는 것인데, 어찌하여 후세에 예ㆍ악을 말하는 이가 유독 예만 자상하게 하고 악은 빠뜨린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

 

대개 악이란 성음(聲音)일 따름인데, 청탁(淸濁)ㆍ고하(高下)를 두고 이름이니, 이는 바로 성정(性情)을 체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청탁ㆍ고하의 빠르고 느림을 어찌 언어나 문자로 형용할 수 있으며, 성정의 발하는 묘리는

 

또한 바람을 잡고 우레를 따라 가는 것 같아서 비록 자유(子遊)ㆍ자하(子夏)나 반고(班固)ㆍ사마천(司馬遷)더러

 

글월을 지으라 해도 역시 그대로 똑같이 형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개 그 사람이 없어지면 성정의 도(道)도 따라서

 

없어지는 것이니, 옛 악(樂)이 오늘에 전하지 않는 것을 괴이히 여길 것이 없다.

 

      무릇 악의 소리는 사(絲 현악(絃樂))보다 더한 것이 없고, 사의 소리는 거문고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거문고는 진실로 즐길

 

     만한 것이다. 내가 다른 예술은 하나도 배울 겨를이 없었지만 유독 거문고에 있어서는 즐긴 적이 여러 해였다.

   

    그러다 서울에 와서 김자고(金子固)군과 더불어 벗이 되었는데, 김군은 거문고에 능란하였다. 하루는 그 집을 찾아가니

 

    김군은 술을 권하고 조금 있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하기를, “소생이 지금 선생의 듣고자 하시는 것을 들려드리기 위하여

 

    한번 타 보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은갑(銀甲)을 손가락에 끼고 주휘(珠徽)를 죄어서 궁성(宮聲) 두어 가락을 타니,

 

    봄 하늘의 구름이 뭉게뭉게 공중에 피어나는 듯하고 넘실넘실 훈훈한 바람이 들판을 스쳐가는 듯하다가, 갑자기 변하여

 

    솟구쳐 올라서 빠른 뇌성과 소나기가 산악을 뒤흔드는 듯하고, 놀랜 파도와 큰 물결이 천지에 출렁거리는 듯하여, 대개

 

    사람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서 머리칼을 꼿꼿이 서게 한다. 차차 음절(音節)이 분명한 채 여운을 남기어[皦如繹如]주D-001

 

    한 곡조를 마치고 나면 또 바람이 잠잠하고 물결이 가라앉으며 하늘이 개이고 햇볕이 빛나는 것 같으니, 그 근심이 깊고  

 

    생각이 먼 것은 순(舜)ㆍ문왕(文王)ㆍ공자(孔子)의 유음(遺音)인 동시에 숭고하고 담박한 맛주D-002이 대개 당우(唐虞)시대나

 

    삼대(三代)시대의 천지에 있는 듯하다. 아, 거문고의 도가 이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자고(子固)가 옛법에만 구애되지 않고

   

    마음에 얻은 것이 손에 나타난 것이다. 이를테면 슬퍼해도 상(傷)하지 아니하고 즐거워도 음탕하지 않은 것은 또 내 마음의

 

    성정의 바른 것에 근본하였기 때문에 그 성음(聲音)의 보(譜)에 나타난 것이 이와 같다. 어찌 처음부터 그 법이 어느 뉘게서

 

    전해 받은 것이겠는가. 모두가 스스로 터득하는 데에 있을 따름이다.

 

    아, 예와 악은 한 곬이다. 예는 공경을 위주하고 악은 화평을 위주하는데, 그 화평과 공경은 바로 이 마음을 두고 이른 것이니,

 

    예가 공경을 위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악이 화평을 위주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요순(堯舜) 이래로 크게는

 

    조정에서 군신의 사이에, 작게는 부부사이에 어찌 하루인들 예을 떠날 수 있었겠는가. 누구나 앉고 서고 절하고

 

    부복(俯伏)하는 데 있어 나는 문(文 절도(節度))을 있다고 말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지만, 이제(二帝)ㆍ삼왕(三王)이

 

     예악으로 거룩한 정치를 이룬 것을 마침내 다시 볼 수 없는 즉, 어찌 예는 위의(威儀)도수(度數)의 말단에 나타나는 것이라 쉽고,

 

    악은 정신 심술(心術)의 은미한 데 근본한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예는 전하는 것이 많고 악은 전하는 것이

 

    적게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자고씨에게 깊이 느낀 바 있다. 나는 비박(鄙薄)한 자질로 성균(成均)의 예(藝)를 맡아보고 있는데,

 

    옛날엔 사도(司徒)가 주자(冑子)주D-003를 가르쳤으니 곧 악을 맡은 직이다. 그런즉 예ㆍ악의 성쇠에 있어 내가 어찌 막연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의 한 말을 간추려 기록해서 자고의 금헌(琴軒)에 기(記)를 하는 바이다

 

 

[주D-001]분명한 …… 남기어[皦如繹如] : 《논어》 〈팔일(八佾)〉에 나온 말인데, 그 주에, “교여(皦如)는 음절(音節)이 분명하다는 말이고, 역여(繹如)는 음절이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였다.

[주D-002]근심이 …… 담박한 맛 : 구양수(歐陽修)의 글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주D-003]주자(冑子) : 즉 국자(國子)로,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자제를 말한 것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기(夔)여, 너를 명하여 악(樂)을 맡게 하노니 주자(冑子)를 가르쳐라[夔命汝典樂 敎冑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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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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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