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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 김시양 선조님의 유배길을 따라서-임자일기(13)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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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4-01 17:41 조회1,6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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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하담 김시양 선조님의 유배과정을 <하담문집>의 유배일기인 <임자일기>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이번 13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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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비망기(備忘記.- 임금의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는 문서)에 「영암, 광양을 원찬(遠竄- 멀리 유배 보냄)이라 했던 전례가 있느냐. 상고하여 계(啓)하라」고 하였다.

  의금부(義禁府)가 회계(回啓)하여 말하기를,

 「본부(本府)의 규례(規例)는 무릇 정배인(定配人)에게 절새(絶塞- 멀리 떨어진 변방 요새)로 계하(啓下- 임금의 제가를 받음)하면 육진(六鎭)1)에서 강변(江邊- 강원도 변지)에 미치며 정배를 절도(絶島)로 계하하면, 제주(濟州), 진도(珍島), 거제(巨濟), 남해(南海)등지로 정배합니다. 다만 원찬(遠竄)으로 계하한 즉, 물론 남북의 먼 곳의 정배입니다. 무신(戊申.․주: 선조41년 1608)년 죄인 홍식(洪湜)은 원찬(遠竄)의 죄로 강진(康津)에서 유배 중 사망하였는데, 강진은 곧 영암의 이웃 읍(邑)입니다. 곽재우(郭再祐) 역시 일찍이 영암에 유찬(流竄)되었습니다. 이 밖에 전례(前例)는 문적(文籍)에 없고 특이하게 상고할 수 있어 사람들이 함께 알고 있는 사람을 말하면, 노수신(盧守愼)이 순천(順天)에 원찬(遠竄)되었다가 그 후 가죄(加罪)되어 비로소 진도(珍島)에 보내졌는데, 순천은 즉 광양(光陽)의 이웃 읍입니다. 허잠(許潛)의 형, 허변(許汴) 역시 일찍이 광양(光陽)에 유찬되었다고 합니다. 조종조(祖宗朝)에 영암 등의 읍에 원찬(遠竄)된 사람들 역시 많이 있습니다만, 이는 아주 오래된 일이므로 일일이 감히 아뢰지 못하나이다.」고 하였다.

 

3일. 북도(北道- 함경도)로 배소가 옮겨져 나는 종성(鐘城)에 배정되고, 김정목(金庭睦)은 회령(會寧)에 배정되어, 즉시 흥인문(興仁門) 밖 정군칙(鄭君則)의 집에 옮겨 거주하였다.

 -9월15일 출발하여 10월26일 배소(配所)에 도착했다.

 

*주1) 육진(六鎭) : 세종 때 김종서를 시켜 개척한 함경북도 여섯 진인 慶源. 慶興. 富寧. 穩城 .鍾城. 會寧)

 

 

*필자 주 : 하담공의 종성 유배 행은 한양에서 종성까지 총 41일이 걸렸다.

이는 앞서 살펴본 <조선세대의 유배길>의 <의금부노정기>(義禁府路程記)에 의거하면 당시 유배길 중 가장 먼 곳에 속한다. 

그 당시 함경도 경흥(종성 근처)에 유배되면 2090리 길을 24일 반 일정으로 가야 했다. 말을 타고 가면 1일 70리, 나귀나 도보로 가면 1일 50리를 가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담공께서는 도보로 1일 50.97리를 갔으니 어떤 여유도 얻지 못하고 아주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유배길을 간 것이다. 41일간의 그 노고,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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