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등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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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3-01 14:31 조회2,049회 댓글0건본문
못 등「지동(池洞)」의 유래
조선 인조때 권문세가였던 김자점(金自點 1588∼1651 영의정)의 후광을 받아 치부하고 세도를 부리던
동생(이름 미상)이 이곳에 살았으나, 그의 형이 1651년 역모로 귀양가서 죽을 때 역적의 집안이라 하여
김자점 동생 집을 헐고 연못을 팠다고 한다.
그 못의 위아래 거리가 약 50m 가 된다 하니, 그 당시 그의 집이 웅장하였음을 알 수가 있고 얼마만큼 세
도를 부렸는가를 짐작 할만하다. 그리고 옥산 옆에 김자점의 선산이 있는데, 묘 앞의 넓은 돌이 용상(왕
을 상징)바위라 하며 이로 인해 역적이 났다 하여 그의 묘를 팟는데 그 주변의 흙이 지금도 검게 나온 다
고 한다. - 구전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동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선 인조때 권문세가였던 김자점(金自點 1588∼1651 영의정)의 후광을 받아 치부하고 세도를 부리던
동생(이름 미상)이 이곳에 살았으나, 그의 형이 1651년 역모로 귀양가서 죽을 때 역적의 집안이라 하여
김자점 동생 집을 헐고 연못을 팠다고 한다.
그 못의 위아래 거리가 약 50m 가 된다 하니, 그 당시 그의 집이 웅장하였음을 알 수가 있고 얼마만큼 세
도를 부렸는가를 짐작 할만하다. 그리고 옥산 옆에 김자점의 선산이 있는데, 묘 앞의 넓은 돌이 용상(왕
을 상징)바위라 하며 이로 인해 역적이 났다 하여 그의 묘를 팟는데 그 주변의 흙이 지금도 검게 나온 다
고 한다. - 구전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동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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