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재(19)나의 즐거움(쌍계재 김뉴)-용재총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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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4-22 11:34 조회1,603회 댓글0건본문
용재총화 제10권
전략
세조가 항상 재추(宰樞)와 문무사(文武士)를 불러 매일 치도(治道)를 강론하는 일을 일과로
삼았다. 하루는 임금이 오래 나오지 않아서 여러 신하가 경희루 밑에 나아가 명을 기다리
는데 최한량(崔漢良) 군이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말하기를, “오랫동안 역마를 타지
못하니, 마음이 답답하도다.” 하니, 정국형(鄭國馨)이 “군이 봉사(奉使)의 즐거움을 아는가.”
하였다. 최한량이 말하기를, “봉사의 즐거움이 많으나 이별하는 괴로움도 또한 깊다. 춘풍의
아름다운 계절을 당하여 준마를 타고 달려 명주(名州)로 들어가면 좌우의 긴 소나무와 높은
전나무는 큰 길에 그늘을 이루게 하여 십여 리를 연하였고, 팔뚝을 반쯤 내놓은 소매 짧은
푸른 옷 입은 나장(羅匠)이 쌍쌍으로 앞을 인도하고, 초금[笳]과 피리 소리가 어울리고, 말이
날뛰어 그치지 않으며 역마꾼이 고삐를 잡아 달리며 대문 밖에 이르러서는 소라처럼 머리
딴 계집[螺鬟] 수십 대(隊)가 길 왼쪽에 엎드려 혹은 머리를 쳐들어 우러러보는 자도 있다.
나는 이때에 보지 않은 체하고 말에서 내려 상방(上房)으로 들어가서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
하기를, ‘오늘밤에는 누구하고 짝하여 잘고.’하다가 기생이 과실 소반을 받들고 들어오면
나는 또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가할까 아니할까.’하여 반신반의하다가 얼마 있다가
주관(主官)이 찾아와서 문안을 드릴 때, 동헌(東軒)에 앉아 술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고, 내가 일어나 술을 부어 돌리면 기생이 술을 받들고 들어오는데, 그 사람이 보기
싫게 생겨서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답답하고 탐탐치 않아 부끄러워서 읍의 산천이 모두
빛을 잃고 좌우의 사람을 볼 때 모두 몽둥이로 때리고 싶다. 그 사람이 아름다워서 마음에
들 것 같으면 주관의 거동이 모두 공황(龔黃)주D-008의 행위와 같아서 지붕 위의 새도
또한 영리한 뜻이 있는 것 같았다. 며칠을 머무는 동안 낮에는 술에 고단하고 밤에는
잠자리에 피곤하여 정신이 흐릿하고 분명하지 아니하여 가만히 스스로 생각하되,
‘이미 편안함이 없으니, 오래 머무르면 병을 얻을 것이다.’하여 이때야 비로소 떠날 마음이
생겨 팔뚝을 베고 흐느껴 울어 눈이 퉁퉁 붓게 된다. 주관이 문 밖에 자리를 펴고 아름다운
노래 몇 가락에 소매를 당겨 술을 권하여 전송할 때, 부득이 말에 올라타고 떠나면서 해를
우러러보면 노랗기만 하고 빛이 없다. 말 위에서 비몽사몽하는 사이에 그 사람이 웃으면서
훌쩍 나타나서 길가에 앉아 있는데, 눈을 문지르고 보면 누런 띠[茅] 숲이요, 그 사람이
또 길가에 앉았거늘 눈을 문지르고 보면 곧 밤나무 숲이요, 귀에 가득찬 바람 소리와 물
소리가 모두 노래하며 풍류 잡는 소리다. 날이 저물어 역(驛)에 투숙하면 연기가 쥐구멍에서
나고, 참새가 소나무 끝에서 지저귄다. 완악한 종이 농을 열어 자리를 펴면 나는 턱을
받치고 앉아서 만단수회(萬端愁懷)를 어찌 다 측량하여 헤아릴 수 있으리오.” 하였다.
정국형이 말하기를, “군이 봉사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아는구나. 남아가 이르는 곳마다
잘 놀고 즐겁게 지내겠거늘 하필 외방(外方)이겠느냐. 내가 겨울에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푸른 모직으로 짠 모자를 쓰고, 훌륭한 말을 타고 은빛 나는 좋은 매를 팔뚝에 얹고, 누런
개 수대(數隊)가 따라오고, 뒤에는 기생을 태우고 가서 산에 올라 꿩을 좇을 때 매가 꿩을
잡아 말 앞에 떨어뜨리면 사람들이 다투어 모인다. 골짜기 시냇가에 앉아서 마른 나무
가지를 태워 꿩을 굽고 계집이 은바가지로 술을 따라 마시기를 권할 때 아래로 종에
이르기까지 남은 것이 돌아가는지라, 날이 저물어 올 적에 날리는 눈[雪]이 얼굴을 치는데,
반은 취하여 고삐를 잡아당겨 돌아오니 이는 참으로 행락(行樂)의 즐거움이니라.” 하였다.
이수남(李壽男)군은 말하기를, “나는 관청 일을 마친 뒤에 친구가 잔치하고 즐기는 곳을
찾아 기생을 끼고 앉아서 실컷 희롱하다가 밤이 깊어서 먼저 나와 기생과 더불어 같이
돌아오되 혹은 기생의 집에 같이 가고, 혹은 아는 사람 집으로 가서 비록 이불과 베개가
없으나 둘이서 옷을 벗고 같이 누우면 그 즐거움이 얼마나 지극한고. 나날이 이와 같이
하되 항상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 만약 불법(佛法)으로 말하자면 내생에 호관(壺串)
수말[牡馬]이 되어 수십 마리 암말을 거느리고 마음대로 놀고 희롱하기를 바라니, 이것이
나의 즐거워하는 바이다.” 하였다.
“나는 친구를 역방(歷訪)하려고 하지 않으니 내 집이 족히 손님을 모실 만하고, 나의 재산이
잔치를 차림에 족하여 항상 꽃 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에 아름다운 손님과 좋은 친구를 맞아
술통을 열고 술자리를 베풀어 이마지(李亇知)가 타는 거문고와 도선길(都善吉)의 당비파
(唐琵琶)와 송전수(宋田守)의 향비파(鄕琵琶)와 허오(許吾)가 부는 피리와 가홍란(駕鴻鑾)과
경천금(輕千金)의 창가로 황효성(黃孝誠)이 옆에서 지휘하고, 독주하기도 하고 합주하기도
하며 이때에 손님과 더불어 술을 부어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껏 이야기하고 시 짓는 것이
나의 즐거워하는 바이다.” 하였다.
달성이 옆에서 듣고 말하기를, “최군은 방탕하고, 정군은
호걸이고, 이군은 음특(淫慝)하고 김군은 질탕(跌宕)하다.” 하고, 또 좌우에게 묻기를,
“제군도 역시 즐거워하는 바가 있느냐.” 하니, 불기(不器)권호(權瑚)가 말하기를, “나는
시골에서 생장하여 물고기 잡는 것으로 업을 삼았습니다. 서너 사람 친구와 더불어
시냇가에 가서 긴 그물로 시내의 위아래를 막고 옷을 벗고 짧은 고의만을 입고 손수
조그마한 물고기 그물을 가지고 이리저리 고기를 몰아 들어올릴 때마다 들기만 하면
은빛 비늘이 번득거려 그물 위에 빛납니다. 이때에 보리밭에 난 순무를 캐고 또 여뀌의
열매를 거두어 장을 끓이고, 겨자를 거르며 혹은 회(膾)를 만들고 혹은 끓이고 고기를
가득 차려내 주린 배를 잠깐 사이에 부르게 하는 것이 내가 즐거워하는 바입니다.” 하니,
달성이 말하기를, “한가하고 자적(自適)한 일이로다.” 하였다. 사예(司藝) 유희익(兪希益)이
마지막으로 대답하기를, “내가 즐기는 바는 여러분의 일과는 다릅니다. 해가 긴 여름철을
당하여 밤나무 그늘 밑에 앉아 맑은 바람이 스스로 불어올 때, 그 가운데 자리를 깔고
《주역》ㆍ《중용》ㆍ《대학》을 읽는 것이 내가 즐거워하는 바입니다.” 하였다. 달성이
말하기를, “옳기는 옳은 일입니다만 남아가 세상에 나서 어찌 이와 같이 괴로워야만
되겠느냐.” 하니, 자리에 있던 사람이 모두 웃었다. 이때에 자순(子順)남제(南悌)가
전자(篆字)를 잘 쓰므로 불려와서 곁에 있다가 바야흐로 도전(圖篆)을 할 때 여성군
(驪城君)민발(閔發)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흰 구름과 같은 사후(射帿)를 청산 녹수 사이에
펴고 네 개의 화살을 끼고 들어가서 포장 과녁 쏘기를 갖다대는 것같이 하여, 해가
다하도록 살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나의 능한 바요, 큰 멧돼지가 갈대 숲
사이에서 이빨 소리를 내며 울 것 같으면 말을 달려 들어가서 한 화살로 죽여 넘기는
것도 내가 또한 능한 바요, 몹시 더울 때에 누에 올라서 얼음을 밥에 섞고, 콩가루로
비벼서 한 주발을 거뜬히 다 먹어치우는 것도 내가 또한 능한 바이나, 이와 같이 글자
쓰는 묘한 재주는 백번 죽었다 깨나도 나는 할 수 없다.” 하였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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