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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광상산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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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5-04-29 08:49 조회1,77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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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광상산시서


碧海侵瑤海 푸른바다는 구슬바다에 젖고
靑鸞倚彩鸞 푸른난새는 채색난새에 기대누나
芙蓉三九朶 스물입곱송이 아름다운 연꽃
紅墮月霜寒 달밤 찬서리에 붉게 떨어지네



● 23세의 나이, 상을 당해 외삼촌 집에 머물러 있을 때, 꿈에서 환상의 산 광상산 무릉도원을 노닐며 아릿다운 두 연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곳엔 아름다운 풀과 꽃, 새들이 춤추는데, 맑은 큰 못에 푸른 연꽃이 서리를 맞아 반쯤 시들어 있었다 한다. 두 여인은 난설헌에게 '이 일을 어찌 시로 기록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에 난설헌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시를 읊었다 한다고 산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난설헌 27세의 나이에 붉은 꽃송이가 떨어짐을 예감하였으니 '부용삼구타' 가 이것을 증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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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광상산시
(夢遊廣桑山詩:꿈속에 광상산에서 노닐며)



을유년 봄, 내가 상을 입어 외삼촌 댁에 머물고 있을 무렵,

하룻밤의 꿈에 바다 가운데 있는 산에 올랐다.

산은 온통 구슬과 옥으로 모든 봉우리가 첩첩으로 포개져 있었는데,

흰 구슬과 푸른 구슬이 반짝반짝 빛나 눈을 들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무지개 같은 구름이 그 위에 서려, 오색이 곱고 선명하며

구슬같은 물이 흐르는 폭포 두 줄기가 벼랑 사이로 쏟아져 내리면서 부딪쳐

옥을 굴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두 여인이 나타났는데, 나이는 모두 스물 남짓하였다.

얼굴은 절세 미인으로 한 명은 붉은 노을 옷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푸른 무지개옷을 입었다.

손에는 금빛 호로병을 들고, 발은 나막신을 신고서 사쁜히 걸어와

나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였다.
졸졸 흐르는 물굽이를 따라 올라가니 기이한 풀과 이상한 꽃이 여기저기 피었는데,

모두 이름 부를 수 없었다. 난새, 학, 공작, 비취새들이 좌우에서 날면서 춤추는데,

온갖 향기가 나무에서 풍기고 있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니 동남쪽의 큰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전부 파란데,

붉은 해가 돋으니 파도에 해가 목욕하는 듯하였다.

봉우리위에는 큰 못이 있어 맑기가 그지 없고 연꽃은 푸르고,

잎은 커다랗지만 서리를 맞아 반쯤은 시들어 있었다.
두 여인이 말하길
'여기는 광상산입니다. 신선들이 사는 십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이 신선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감히 이곳에 이르렀으니,

어찌 시로써 이를 기록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내가 사양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곧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두 여인이 손뻑을 치면서 크게 웃으며
'글자마다 모두 신선의 말씀입니다'
라고 하였다. 조금 있으니 한 떨기 붉은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봉우리 위에 걸리고,

북치는 소리를 냈다. 취한 듯 꿈을 깨보니,

베개 맡에는 아직도 아지랑이 기운이 맴돌았다.

모르겠네. 이백의 천모산 놀이가 여기에 미칠 수 있는지. 다만 이것을 적어 보리라.

그 시는 이러하다.



푸른 바다는 구슬 바다에 젖고,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에 기대네.
스물 일곱 송이 아름다운 연꽃,
달밤 찬서리에 붉게 떨어졌네.



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우리 누님이 기축년(1589) 봄에 돌아가셨으니, 그 때 나이가 27세였다.

그의 시에 '삼구홍타'(스물 일곱 꽃송이 떨어지다)란 말은 곧 이것을 증험함이다].

댓글목록

김재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재이
작성일

  마음속에 넣고싶은 주옥같은 내용들 잘읽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김진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진회
작성일

  잘읽어 보았습니다.

김행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행순
작성일

  너무나 황홀하여 눈으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동양화가 아닌 사진이 생각나는 시입니다. 
좋은 글들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