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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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5-12 00:02 조회1,509회 댓글6건본문
<어버이날에 생긴 일>
지난 일요일(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마침 어머님께서 서울에 올라와 계시어 가까이서 모실 수 있었으니 이번 어버이날은 더 없이 행복했다. 아침 일찍 딸아이와 청계산 등산을 아침 식사를 겸하여 마치고, 정오 경에는 서울 구의동의 누님댁에 가서 어머님과 누님을 모시고 왔다. 아내와 딸아이도 합승하여 집(개포동) 뒤 수서동에 있는 한 <샤브샤브> 음식점엘 갔다. 잘 가꾼 정원과 깨끗하게 정돈된 내부 시설이다. 오랜만에 흡족하게 음식을 잡수시는 어머님 모습에 그저 그동안의 불효가 죄송스럽기만 하다.
식사 후에는 음식점 뒤로 이어지는 수서지구 단독주택 집들이 즐비한 곳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소화도 시킬 겸 걷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 마을 뒤 대모산 등산로로 이어지는 곳에 이르니 적당한 공터에 주말농장이 그림처럼 만들어져 있다. 여러분들이 물을 주고 모종을 하고 있다. 모두 행복한 얼굴들이다. 탐스러운 상추와 쑥갓에 어머님은 샘을 내신다. 그리고는 이내 괴산집 채마밭에 화초처럼 가꿔 놓으신 야채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신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늘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세종대왕의 5째 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묘역이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어머님이 산책하기엔 너무도 좋은 날이다. 길을 물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삼성의료원 뒤쪽 야산 아래로 갔다. 길 우측으로 필경재(必敬齋)란 현액을 단 고색창연한 대문과 그 안으로 오래된 고택과 귀한 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집이 나타난다. 입구를 지키는 이가 있어 무엇하는 곳이냐고 물으니 고급 한정식집이란다. 낮에는 최하 1인당 3만5천원, 야간에는 7만원에서 15만원까지 하는 음식집이란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광평대군의 종손가라고 한다.
다시 길을 따라 우측으로 마을을 안고 도니 광평대군 묘역임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과 <궁촌별묘>(宮村別廟)란 현판이 붙은 정문, 그 옆으로 <영릉봉향회>(英陵奉香會)라고 쓴 쪽문이 나타난다. 그런데 모든 문들이 닫혀 있다. 아마도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것 같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 경비원에게 공손히 관람을 요청하니 다행히 허락을 하신다. 그리고는 잠시 묘역을 설명해 주신다. 약 11만 3천평방미터의 임야에 광평대군의 후손들 700여 기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입구의 안내판>
<종가집-광평대군 아래 대의 종가. 광평대군 종가는 우측 연립주택 건너편에 있음>
<입구 바로 안쪽의 회의실>
<광평대군 묘소 가는 길>
<묘역 우측의 미확인 지역>
<입구 안쪽의 연못>
<광평대군 묘소에서 본 암쪽 전경>
<광평대군 묘소>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광평대군의 묘로 이어지는 곳은 마치 늘 보던 왕릉과 같다. 해설가는 이어서 태종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한 무안대군 이방번의 혼백을 모시는 봉사손으로 세종대왕은 자신의 5째 아들인 광평대군을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광평대군을 비롯한 그 후손들은 계속하여 지금까지 무안대군을 받들어 왔으며 그 묘소도 이곳에 함께 봉안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신다. 놀라운 말씀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직선거리로 불과 1000m내인 개포동에 20년 동안이나 살아오면서 이곳을 모르고 지내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잘 다듬어진 묘역 이곳저곳을 산보하듯 어머님을 모시고 다닌다. 그러다가 계단이라도 나오면 어머님은 그냥 앉으시며 너희들이나 다녀오라고 하신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무안대군 묘역에 이르니 왕자들의 왕권쟁탈 싸움에 무참히 살해당한 어린 왕자의 묘소가 한없이 가련하다.
<무안대군 묘소와 비석>
배례를 하고 나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며 여러 묘역의 비석들을 습관처럼 살핀다. 그러다가 나는 내 눈을 의심하는 놀라운 발견을 하였다. <夫人 安豊君 得臣 女-->라는 글이다. 전면의 묘비에는 <贈領議政 行錦山郡守 李公重煇之墓>라 써있고 묘비 좌측면에는 <元妣 贈貞敬夫人 安東金氏>라 써있으며, 묘비 우측에는 <繼妣 贈貞敬夫人 安東金氏>라 적혀 있다. 즉 좌우에 부인 두 분의 봉분이 있고 그 뒤에 이중휘의 묘소가 있는 3봉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묘비 뒷면을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前夫人 金氏 同知光燦女 先二十三年卒, 後夫人 金氏 安豊君得臣女 先一年卒-->. 즉 첫부인 김씨는 동지 광찬의 따님으로 먼저 23년전에 졸하였고 후 부인은 안풍군 득신의 따님으로 1년 먼저 졸하였다는 기록이다. 백곡할아버지의 따님 묘소가 바로 이곳에 있다니--. 한동안 놀란 눈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선 주변의 여러분께 이 사실을 알리고 배례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분 부인이 모두 안동김씨란다. 전비 안동김씨는 <金光燦>의 따님이다. 광찬은 누구인가? 궁금하다, 또 하나의 숙제이다.
<이중휘공의 묘소>
<묘비>
<전부인 김씨 동지광찬여> 기록 내용
<후부인 김씨 안풍군득신녀> 기록부분
집에 돌아와 곧 족보를 펼친다. 백곡 선조님의 따님 두 분 중 둘째 따님이 계비의 주인공임을 확인하고서야 우선 한 문제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당시 우리 가문의 위상을 확인하는 중요한 대목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중요한 역사 증거물들이 있는데도 무심해 왔던 나 자신을 또 한번 탓한다.
오늘은 어버이날, 어머님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 그 위에 11대조 고모님의 묘소에 배례하는 기쁨이 함께 있었다. 즐거움이란 늘 이렇게 아주 가깝고 작은 것에 있음을 확인하면서 5월의 맑고 푸른 하늘을 더 높이 올려다본다.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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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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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저도 수서지역을 지나칠 때면 항상 들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런 연관이 있었군요.
가족과 함께 하는 단란한 한때와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왕고모님의 묘소 참배 축하드립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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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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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광평대군 묘역을 다녀 오셨군요. 저도 몇년전에 갔었습니다.
필경재도 보았구요.
안동김씨 김광찬이라는 분은 아마도 후안동김씨인 듯 싶습니다.
김광찬은 청음 김상헌의 아들(양자, 생부=김상관)입니다.
아들로서는 김수항, 김수증이 있습니다.
김광찬은 백곡선조님과 동시대의 인물이니 그럴 듯 합니다.
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으니 거의 틀림 없지 않나 싶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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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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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김광찬은 후안동김씨, 그럴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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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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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님께는 광평대군 묘역을 전세(?)내어
정원으로 드렸고 우리 홈에는 귀중한 자료 소개해주셨습니다
새로운 내용 잘 배웠습니다
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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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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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오랜만의 단란하고 정겨운 삼代의 나들이를 보며 가족간의 깊은 애정과 효의 실천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가까운 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선조님들의 혼맥확인,감사합니다.
김진욱(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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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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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항용 조카님,
잘 읽었습니다. 효성이 대단하십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성을 느낄 수가 있군요.
와, 백곡할아버지의 따님이 거기에...
그 고모할머니도 분명 능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겠지요.
아, 호칭이 적절한가? 모르겠네요.
하여튼, 조카님, 대부님들 모든 분들께 안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