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공자료(6) 안정공께 드리는 시 -독곡 성석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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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5-13 10:44 조회1,396회 댓글1건본문
獨谷先生集卷 下
送金府尹九德 赴朝。次淸城韻
奉使飄纓謁聖明。
千門萬戶曉鍾淸。
端知更把家聲振。
綠髮紅顏老氣橫
성석린(成石璘) 아버지는 부원군 여완(汝完)이다. 국사를 편수하면서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그로 하여금 항상 글을 짓게 하였으며, 예문관(藝文館)의 공봉(供奉), 삼사(三司)의 도사(都事), 전의시(典儀寺)의 주부(注簿) 등을 지냈다. 지인상서(知印尙書)·예부총랑(禮部摠郎) 등을 역임하였는데, 신돈(辛旽)의 미움을 사서 외관으로 해주목사가 되었으나, 이내 내직으로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삼사좌윤(三司左尹)·밀직사 좌부대언(密直司左副代言)·지신사(知申事)·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여러 장수가 왜적의 기세에 눌려 후퇴하려 하자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여러 장수가 이에 따라 적을 무찔렀다. 올랐다. 외직으로 양광도도관찰사(楊廣道都觀察使)가 되어 주·군에 의창(義倉)의 설치를 건의하자, 조정에서 이를 채택하여 모든 도에서 행하도록 하였다. 다시 내직으로 문하부평리(門下府評理)와 대사헌이 되었다. 봉하여졌다. 태조가 즉위하자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郎贊成事)가 되었고, 1392년(태조 1) 개성부판사(開城府判事)를 거쳐 한성부판사를 지냈으며, 원종공신이 되어 노비 3인, 토지 30결을 하사받았다. 익대공신(翊戴功臣)의 녹권이 내려지고,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에 올랐다가 곧 좌정승이 되었다. 태종이 즉위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고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해졌다. 행차하여 머무니, 태종이 여러 사자를 보냈으나 감히 문안을 전달하지 못하였는데, 성석린은 태조의 옛 친구로서 조용히 인륜의 변고를 처리하는 도리를 진술, 비로소 태조와 태종이 화합하게 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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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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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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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홈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