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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서예(書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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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5-05-15 11:23 조회1,400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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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 크게 유행한 서체(書體)는 단연 송설체(松雪體)이다. 고려말에 중국에서 유입된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송설체는, 원대(元代)의 대표적인 서화가인 조맹부(趙孟 , 1254-1322)의 아호(雅號)를 따서 이름한 서체를 말한다.

송설체의 대유행이라는 조선전기의 서단(書壇)에서 가장 걸출한 면모를 보인 서예가는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이다. 세종대왕의 3남으로 뛰어난 자질에다 궁궐에 수장된 많은 진품을 접하면서 깊은 수련을 쌓아 자가일성(自家一成)한 안평대군의 글씨는, 조맹부의 바탕 위에 스스로의 개성이 가미되어 우미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며 왕자의 기품이 서려 있다. 지금 전하는 그의 진적은 매우 드물지만, 가장 확실하고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몽유도원도'의 발문이며, 1450년에는 안평대군의 글씨로 '경오자(庚午字)'라는 금속활자까지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서예가들은 대부분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인데, 이는 형태미도 중요하지만 글씨의 품격(品格)을 보다 중시한 결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집현전 출신의 성삼문(成三文), 박팽년(朴彭年), 정인지(鄭麟趾)등의 학자들이 명필로 손꼽히며, 이외에 그림으로도 유명한 강희안(姜希顔)이나, 성달생(成達生), 성임(成任), 김희수(金希壽)· 김노(金魯) 부자가, 해서·행서의 대가로 불렸다. 또 초서의 대가로는 김구(金絿), 황기로(黃耆老), 양사언(楊士彦) 등을 들 수 있다.

16세기 후반부터 조선의 글씨는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고려말 부터 서단을 풍미해 오던 송설체는 외형미에 치우친 나머지 힘이 부족하다는 결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무렵 성리학이 토착화되어가는 과정에서 학자들도 외형미 보다는 내실있고 엄정한 기풍의 왕희지(王羲之}의 서법을 선호하게 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로 흔히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를 꼽는데, 지금도 대표적인 명필로 추앙받고 있지만, 글씨의 품격은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당대의 대학자인 이이(李珥)와 이황(李滉)의 글씨는 개성미가 넘치며, 성수침(成水琛), 성혼(成渾), 김현성(金玄成)등도 대가로 꼽을만 하다.

댓글목록

김은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은회
작성일

  태서 조카님 !
그간 별고 없으신지요?
조선 전기의 서예글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조선 전기 김희수 부자-해서,행서의 대가... 잘 배웠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감사합니다.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