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청년 백범. 북행견문과 만주의병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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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5-19 18:20 조회1,687회 댓글3건본문
1895년 5월, 20세 청년 백범은 북행견문길에 올랐다가 만주 김이언 의병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백두산 아래 혜산진 제천당을 거쳐 삼수군, 장진군, 후창군, 자성군을 지나 중강을 건너 만주땅 모아산에 도착한후 고구려, 여진, 금, 요의 발원지인 통화, 환인, 관전, 임강, 집안 등지를 다녔는데, 이때 파저강 좌우에 있는 설인귀와 연개소문의 관루 흔적, 관전에 있는 임경업 비각 등을 둘러 보았습니다.
강계군 서문 인풍루 밖 80여리 압록강 건너 만주땅 삼도구 라는 곳에서 김이언을 찾아가 의병활동에 가담하면서, 강계성에 들어가 화약을 매입하고, 초산, 위원 등지에서 포수를 모집한후 11월 초에 거사하여 삼도구에서 압록강을 건너 고산진을 지나 강계 인풍루 밖 10리에 있는 강계성으로 가다가 김이언의 실책으로 패하여 의병을 이탈하여 고향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해 8월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습니다.
이때 백범은 김형진 이라는 사람과 동행하게 되는데, □백범일지(1997.7, 주해 도진순, 돌베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p.68
3. 질풍노도의 청년기
1)북행견문과 청국시찰
하루는 안진사(=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 사랑에 갔다가 참빗장수 한 사람을 보았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 보통 돌아다니는 참빗장수와 달랐다. 내가 먼저 인사를 청하였다. 그 사람은 남원군 이동에 사는 김형진이었다. 나와는 본이 같고, 나이는 나보다 8,9세 많았다. ---
◉김형진(1861~1898). 본명은 김원명이고, 김형모, 김형진, 김봉회 등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김구보다 5세 연상이다. 그는 갑오농민전쟁을 겪고 난 뒤 1895년 음력 4월 ‘척양척왜의 대도’를 가기로 결심하고 상경하여 정세를 살피던 중, 같은 해 5월 황해도 신천 청계동 안태훈 의려소에 이르러 김창수(김구)를 만났다. 이들은 곧 의기투합하여 중국으로 구국의 여행을 하게 되는데, 김형진은 그 자세한 행적을 <노정약기>란 여행기로 남기고 있다. 이 책은 <백범일지>의 관련부분과 좋은 대비가 된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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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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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6월초에 백두산 일대와 연길 등지를 답사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침 백범의 발자취도 있어서 적어 보았습니다.
지난해인가 우리 홈페이지에 소식을 전해준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 살고 있는 김태호
(연변교육학원 원장 김재률 님의 손자) 님의 연락처를 알고 싶습니다. 아시는 분 소개 바랍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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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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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延邊 敎育學院長 길림성 연길시 북산가 丹紅胡同 1
金容均 院長 0433-252-2236 (해외동포 사랑의 책 보내기 전달처)
2002년도 주소인데 위 전화번호로 연락하셔서 김재률님에 관해서 문의 해보심이 어떨런지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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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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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저는 금년 여름 백두산을 오를 계획입니다. 김태호님의 연락처와 연길의 일가분들 연락처를 대종회를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