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일기 10---(5.2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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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5-28 14:53 조회1,590회 댓글6건본문
2005년 5월 22일 (일)
4시 전에 잠이 깼다.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았다. 새벽 꿈을 꾸었는데, 그리운 이 둘을 만나 한참을 함께 했다. 인터넷 중국어 강의를 들었다(고시 어법, 발음, 노래). 대학내 골목시장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알아 듣지 못해 어리벙벙했다. 점심 먹고 시장에 다녀왔다. 우식이 게임CD, 우정이 롤러 스케이트, 그리고 배드민턴 라켓 등을 구입했다. 3시에 지난번 중-러국경 흑룡강 답사팀 평가모임에 참석했다. 대학 북문 앞의 한 식당에서 중국학생 15명과 함께 먹고 마시며 떠들기를 11시까지 했다. 건전하고 유익했다.
5월 23일 (월)
쾌청. 5시반에 일어났다. 인터넷 중국어를 들었다(고시 어법, 발음, 노래). 8시 구어, 10시 종합을 수강했다. 점심 먹고 나서 낮잠이 들었는데 4시까지 이어졌다. 4시 고시 청력을 수강하고, 6시 과외를 들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우식이가 중국어 몇마디가 들리기 시작한다고 좋아했다. 반갑고 흐뭇한 일이다. 저녁이 푸짐했으나(삼겹살, 두부찌개) 별로 먹지 못했다. 어제 술로 피곤해서 일찍 잠에 떨어졌다.
5월 24일 (화)
쾌청. 아침에 인터넷이 불통되어 답답했다. 8시 구어, 10시 종합을 수강했다. 오후에 한국유학생 K가 다녀갔다. 6월초 한국유학생 백두산 답사계획을 상의했다. 6시 과외를 받았다.
5월 25일 (수)
쾌청. 5시 전에 일어났다. 인터넷 중국어 강의를 들었다(고시 어법, 발음, 노래). 8시 구어, 10시 종합, 2시 고시 종합을 수강했다. 점심때 번개 잔치가 이루어졌다. 숙소 앞을 지나가는 한국유학생 7명을 불러 올려서 점심을 대접했다. 저녁부터 소낙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가랑비가 오다 개다 했다. 서울사무소에서 안부전화를 받았다. 전화받고 나서 반가움과 그리움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5월 26일 (목)
하루종일 소나기성 여름비가 내리다 그치다 반복했다. 바람도 제법 강했다. 장마철 비갠뒤의 청량한 거리를 걷는 듯했다. 5시 전에 일어났다. 인터넷 중국어 강의를 들었다(노래, 발음, 고시 어법). 8시 구어, 10시 실용회화, 2시 고시 열독을 수강했다. 독해 문제는 정답이 거의 다 보였는데, 안사연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한문공부를 한 덕분이다. 의외의 공짜가 생길때처럼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
5월 27일 (금)
쾌청. 낮에는 무더웠다. 최저 8도 최고 23도. 점심 먹고 나서 오후 수업 갈때는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새벽에 인터넷 중국어 강의를 들었다(노래, 발음, 고시 어법). 오늘은 우식이 다니는 학교 운동회 날이다. 새벽부터 먹거리 준비하느라 주방이 부산스러웠다. 온동회는 조그만 간이 운동장에서 이루어지는데, 찍어온 디카 동영상을 보니 그래도 시끌벅적하고 시골 운동회날 분위기가 난다. 8시 종합, 10시 C반종합, 2시 고시 어법을 수강했다. 동학 2명과 함께 외사처의 안내로 서예전각 전시회를 관람했다. 자세한 안내와 설명을 듣고 즉석에서 써준 작은 작품 하나씩을 받았다. 6시 과외 선생이 오지 않았다. 7월 10일 HSK(한어수평고시) 시험을 치기로 했다. 오늘부터 시험준비에 들어갔다.
5월 28일 (토)
쾌청. 너무나 쾌청하다. 토요일 쉬는 날이지만 뭔가 해야겠기에 새벽에 인터넷 중국어 강의를 들었다(노래, 발음, 고시 어법). 7월 10일 HSK 시험준비로 오전내내 교재를 뒤적이다 테잎을 듣다가 했다. 점심 먹고나서 교정을 거닐었다. 작렬하는 햇빛에 눈이 부시고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댔다. 나무그늘을 찾아 앉아서 두 무리의 학생들이 뙤약볕 아래 빨간 운동장에서 벌이는 축구경기를 구경했다. 어린시절 나도 동네축구는 날렸었는데... 정말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집에 와서 앞 베란다에 서서 한폭의 수채화같은 전경을 바라보면서 이생각 저생각 했다. 먼 타향살이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벌써 30년 넘게 전에 돌아가신 선친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내가 8살 때이니까 벌써 33년 전 일이다. 선친께서는 우리 형제중에서 특히 장손인 나에게 정을 주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신께서 일찍 가실줄 알고 장손을 독하게 키우고자 하신 것이었다. 사춘기 방황할 때, 고등학교, 대학교 들어갈 때 아버지가 옆에서 좀더 올바로 이끌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항상 원망반 희망반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지금은 아버지 얼굴이 그려지지 않고, 빛바랜 흑백사진 2장, 내 기억속에 희미한 영상으로 두세 컷 정도 흔적을 남기셨다. 셈에 아주 밝았으며 글씨를 잘 쓰셨다고 했다. 1931년생이시니 그당시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시대, 혼란스러운 해방정국과 민족분열, 이어지는 민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전후폐허에서 근대화로 이어지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으셨다. 어릴때는 계모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하셔서 별난 흔적 없이 보통사람으로 짧은 생을 사셨다. 몇 남지 않은 흔적이라도 모아서 더 늦기 전에 물어물어 작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고 당신께서 바라시던 대로 우리 집 장손은 굳세고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겠노라도 자랑하고 싶었으나...
댓글목록
김영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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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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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이국생활중에 떠오르는 아버지의 기억을 되새기는 사부곡
가정의 달 오월을 보내며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ps:하얼빈 사진은 언제쯤 볼수 있나요?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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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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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고대하던 하얼빈일기 잘 보았습니다. 꿈에 본 그리운 이는 누구였을까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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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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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감기는 다 나으신 모양입니다.
열심히 어학공부하고 계신 모습, 아이들이 점차 익숙돼 가는 모습에 안도감이 생깁니다.
다음 1주일을 또 기다립니다.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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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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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아버지의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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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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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외로운 타향살이 잘 이겨내시는 모습 장하십니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꼭 금연하시고..
금연했다... 이런 일기기 없는 걸 보니 완전히 금연하신 모양이네요
반갑습니다. 금연하신것 축하합니다.
아버님 말씀 하시니...
저도 3살때 생이별....
동병상련 겪었습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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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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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별일없이 잘계시니 감사함니다
28일 토요일 고대 심교수님과 통화중 대부 안부를 묻더군요
전화번호 부탁 하였는데....
내전화번호 011-9703-6344 부탁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