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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회 방문 행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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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6-01 17:04 조회1,60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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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005. 5. 31) 번개 모임인 대종회 방문행사를 조촐하게 마쳤습니다.

방문자는 영윤(문), 윤만(문), 발용(군), 태영(군), 항용(제)입니다.

당일 관묵사무총장님은 급한 비상적 용무로 인해 출타하시고 명회 부회장님과 손여사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날 먼저 몇가지 기증품 전달식이 있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충숙공 휘 承用선조님의 묘지명 액자> 기증 (아래 해설문 참조)

  2. <유연재공 휘 希壽선조님 친필 성희안 신도비문 탁본> 기증(2005. 5. 1. 안사연 탁본)

  3. <보정 김정회 선조님 친필 서찰 사진 복사본> 기증(김태영(군) 제작)

   

 그 후 준비한 유인물을 중심으로 다음 몇가지 사항을 건의 및 논의하였습니다.

 

  1. 홈페이지 접속자 수 증가를 위한 지속적 홍보 방안 수립-대종회의 안내문 제작, 각 행사 때마다 배포 요

  2. 홈페이지 전체 구조 개편 요청

  3. 대종회 자체 서버 구축 및 전문 홈페이지 관리자 배치 요 

  4. 동영상 자료 제작을 위한 기기 구입 및 홈페이지 탑재에 관한 건 협의  

  5. 파종회 소개 미비 파의 조속한 자료 제공 요청 (7개파 미등재-개성윤공,전서공,부사공,안정공,판삼사공,안렴사공,서운관정공)

   6. 각 지역 종친회 소개 자료의 조속한 제공 요청

   7. 소파 종친회 소개, 시제일 등의 자료 제공 요청

   8. 직거래장터 운영 및 광고방 운영을 위한 홈페이지 구축 추진일정 협의

   9. 전자족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홈페이지 개편 문제 협의

   10. 기타 안사연에 관련한 몇가지 협의사항
   11. 대종회 내
미정리 역사자료(사진 기타) 정리 방법 토의 

   12. 안사연에서 매년 실시해 오던 여름캠프를 대종회에서 주관하도록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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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시 건의 및 협의 사항 토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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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한 충숙공(휘 승용) 묘비명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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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증 액자를 게시하고 나서>

 

 

*대종회 기증 액자 아래에 마련한 <충숙공 묘지명> 해설서

寶文閣大提學忠肅公諱承用墓誌銘

(보문각대제학충숙공휘승용묘지명)


1. 제작 연대 : 1329년(충숙왕16년)     2. 유형/재질 : 묘지명/ 돌

3. 문화재지정 : 미지정   4. 크기 : 세로 65cm, 가로 38cm, 글자크기 1cm

5. 출토지 : 미상         6. 소재지 : 국립중앙박물관(No. 본 7886.)

7. 서체 : 해서(楷書)     8. 찬자/서자/각자 : 이숙기(李叔琪) / 미상 / 미상

9. 가치 : 고려시대 동시대인들에 의해 撰, 書된 것으로서 매우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음(정.문.연 김용선 교수 評)

10. 최초 사진 입수자 : 金柱會(按. 2002. 1. 27.)

12. 액자 제작 및 대종회 기증자 : 金勃鏞(郡). 金泰榮(郡), 金恒鏞(提)

11. 대종회 기증일 : 2005. 5. 31.


김승용(金承用) (1268(원종9) ∼ 1329(충숙16))

 고려의 문신. 원충단력안사보정공신 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호군 휘 선(元忠端力安社保定功臣 副知密直司使 典法判書 上護軍 諱 小宣)의 아들이며, 도첨의중찬 도원수 충렬공 휘 방경(都僉議中贊 都元帥 忠烈公 諱 方慶)의 손자이다. 충렬왕 6년(1280), 천화시직영동정(天和寺直令同正)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궁전(弓箭)을 차고 입시(入侍)하여 위위주부(衛尉注簿)로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충숙왕때 판내부사(判內部事), 언부전서(諺部典書), 동지밀직(同知密直)을 거쳐 밀직사(密直司)를 역임하니 모두 태학사(太學士), 상장군(上將軍)을 총괄 하였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가서 원나라 조정으로부터 선무장군 관고려군 진국만호(宣武將軍 管高麗軍 鎭國萬戶)를 선수(宣授)하고, 이듬해 3월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을 건너다가 병이 들어 신안(新安) 여관에서 별세하였다. 보문각제학 이숙기(寶文閣提學 李叔琪)가 지은 묘지명(墓誌銘)에 이르기를 “곡봉(鵠峰)을 갈마드니 압록강물이 깊고 넓네. 충성을 다함이 한마당 꿈이런가, 독려하여 고향에 돌아왔네. 집안은 상란(喪亂)이 따르고 나라는 충량(忠良)을 잃었네. 상락공(上洛公:方慶)의 공업(功業)을 공이 성하게 전양(傳揚)했네. 지금 갑자기 돌아가시니 누가 남은 공명(功名)을 승습(承襲)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묘소는 전남 강진군 작천면 토마리에 있으며 묘지명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寶文閣大提學忠肅公諱承用墓誌銘 原文>

口天曆二年己巳歲 三月甲戌 宣授宣武將軍 管高麗國萬戶 匡靖大夫 密直使 寶文閣大提學 上護軍 金公 奉表朝元 賀口口渡鴨錄江 感疾 흥于新安旅館 是月庚辰 靈柩乘傳入京都 殯於孤柳洞私第 越四月丙申 葬于墨洞北山之麓鳴呼 公 諱承用 永嘉人 曾祖皇 正議大夫 兵部尙書 翰林學士 充史館修撰官 知制誥 追奉 中書令 諱孝印 祖皇 中奉大夫 都元帥 推忠宣力靖難定遠功臣 匡靖大夫 三重大匡 都僉議中贊 上將軍 判典理事 世子師 上洛公 諱方慶 父皇 奉翊大夫 副知密直司事 典法判書 上護軍 諱瑄 母皇 朝靖大夫 司宰卿 薛仁儉之女也 公之爲人 沈重寡言 溫和正直 常怡怡如也 長身斗膽 眞得宰相體 居官 淸儉爲務 尤善於將人 出將則與士卒 同甘苦 動得人心 臨民則吏不敢欺 民皆仰如父母 入相則履正奉公 執節不移 公平生交人 淡若水 藏否不掛口 乃以朋黨之忌 逆志於先祖 出牧完山州 移刺益城府 又遠移長興府 靈光郡 非人望也 계爲東藩兵馬使 兼監倉安集淮陽道 抑摩鎭合浦營 兼慶尙全羅道巡問使 是公望也 노肅持風憲 折獄秋曺 咸有令聞 中外服其平 公以門資 年方十四 直調天和寺眞殿 二十三 登進士第 二十七 帶弓箭 入侍皇元 自衛尉注簿 歷官通禮門祗候 神虎衛長史 秘書郞 軍簿佐郞 都官正郞 監察侍史 司宰少尹 國子司業 司憲掌令 摠部議郞 司憲執義 判內府事 헌部典書 同知密直事 密直使 皆관大學士 上將軍 階奉常 中顯 中正 奉順 通憲 至匡靖大夫 此其詳也 公先娶僉議贊成事 元瓘一女 生二男一女 一子曰厚 今爲西部副令 二子曰玖 爲郎將 女嫡開城判官 柳之演 生子女若干 先公歿 後娶大護軍李資女 監察侍史 朴永堅女皆無後 鳴呼 年登六十二 年不謂상 官登金紫階 官不謂卑 爵齒則於公何겸之有哉 但滿腹經綸大度 不得殿施於 廟堂之上 重爲三韓惜之 二孤 知子爲先君舊執 泣血口誌 濡淚滋毫 爲之銘曰


鵠峰過遞 鴨水汪洋

勤王一夢 督口還鄕

家塡喪亂 國失忠良

上洛功業 公盛傳揚

今忽卒去 誰襲餘芳

口美于石 爲口口光

千秋萬祀 永天不忘


中正大夫 密直司左副代言 三司右尹 寶文閣提學知製敎 李 叔 琪 述 

  *口표와 한글은 묘지석 마멸과 해독문 미상의 글자들임.

 

댓글목록

김진회(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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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뜻 깊은 자리입니다.
업무 때문에 시간이........죄송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엄미리 대부님, 뒤늦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주 인사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반가운 얼굴, 뜻깊은 소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