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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 정경(金生正卿)에게 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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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윤 작성일05-06-01 19:27 조회1,704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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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9권

문부 6 文部六 - 서 書


김생 정경(金生正卿)에게 준 글 (허균이 처남 부사공 김확에게 준 글)

 

       문온공-명리-맹헌-자양-예생-윤종-진기-대섭-철원부사공 확

 

수서(手書)를 받아 얼굴을 보는 것 같은데, 더구나 위문이 지극하니 기쁨과 느꺼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네. 관작은 외물(外物)이라, 한 번 배척받았다 해서 어찌 근심하겠는가.

내 평생에 유보(裕甫 이홍로(李弘老)의 자)로 인해 훼방을 당한 것이 심히 많았다. 지난번 호남으로부터 전주에 당도했을 적에 유보가 마침 모친의 상을 당해서 초상의 처사가 비록 대단히 미진했다 할지라도 외방(外方)에서 온 객이 어떻게 그 일을 알 수 있었겠는가. 유보를 욕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이가 나를 끌어들여 증인으로 삼으려 하니,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다투어 그 경위를 묻곤 하였네. 그러나 유보는 일찍이 내가 복중(服中)의 상제로서 행실에 근실치 못하다 하여 욕을 했던 적이 있으니, 그가 초상 중에 도장을 사용해서 관물을 도둑질해내고 하인을 마구 때린 따위의 일을 설사 내가 눈으로 보았다 한들 어찌 그것을 입에 담아 마치 보복하는 것처럼 할 수 있겠는가. 이 까닭에 묻는 사람이 백이 넘었으나 모두 잘 모른다고 답을 했었네. 이 때문에 의심이 나에게 미치게 되어 마침내 이르기를 '이제는 오히려 서로 결탁하여 모의하는 데 이르렀다.'고들 하니, 원통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양오(養吾 이지완(李志完)의 자)가 이 말을 듣고 와서 말을 하니, 내 자신에 있어서는 애당초 이런 일이 없었던 바라 내 입으로 변론해 두려는 것이네.

유보가 기(奇)ㆍ송(宋) 두 집안에 다그쳐 물은 것도 어찌 또한 내가 친하여 그런 것이겠는가. 미움을 받게 된 발단이 진실로 이에서 나온 것이네. 그 후에 형님댁에서 대내(大內)와 혼인을 맺을 때 천례(賤隷) 수인이 유보의 명을 받아 총재를 위에다 이간질하기 위해 언서(諺書)를 조작해서 귀인들을 얽어매자 드디어 분요의 발단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 의심을 부른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네. 오늘날 사대부의 인가(姻家)에서도 신부의 계부(季父)가 감히 언어로써 그 시어머니에게 통할 수는 없는 터인데, 하물며 궁궐 속의 엄하고 깊은 곳에서 어찌 그리한단 말인가. 오래 있으면 저절로 밝혀질 것이기에 변명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네.

나는 본디 벼슬의 영달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한 사단을 얻어 절로 파직하게 되었으니, 가을 비가 잠깐 걷히면, 마땅히 한 필 말을 타고 자네 집을 찾아 보고 인하여 동쪽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네. 이 때쯤 자네가 만약 별장에 있으면 지나는 길에 며칠을 묵으면서 고금을 극담키로 하세. 단지에 남은 단술로는 술 못하는 손을 대접할 수 있겠고, 석순(石筍)과 자라로는 술상 안주로 족할 것이니, 모름지기 바람 난간을 치우고 기다리게. 끝내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것일세. 이만 그치네.

 

위의 편지를 보낸후 영평 별장에 도착하여 다음의 편지를 쓴것이 아닌가 합니다


 

석주(石洲)에게 준 글
서울에 있을 적에 형이 강도(江都)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보니, 나의 벼슬 잃음을 위로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이미 수레를 단속하여 도성문을 나오는 참이었는데, 찾아 온 사환이 편지를 놓고 떠나겠다 하기에 총망중이라 답장을 쓰지 못했으니, 우물쭈물 결례한 죄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집을 떠난 이틀 만에 김 정경(金正卿)의 영평(永平) 별장에 닿으니 천학(泉壑)과 계산(溪山)의 아름다움은 지난해에 못지 않았으나, 다만 한스러운 것은 대관(臺館)이 허물어진 것을 다시 세우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방안에 들어가니 단술이 항아리에 가득하여 향의(香蟻 술독에 뜬 쌀을 벌레에 비유한 것)가 한창 굼실거리니 형을 초치해다가 큰 술잔으로 권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형이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군침을 흘릴 것입니다. 지금에 이르러도 성벽에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의 호)ㆍ하곡(荷谷 허봉(許篈)의 호)의 시가 남아 있어 청초하여 읊을 만했고 또 자민(子敏 이안눌(李安訥)의 자)의 시가 있었으나 바빠서 화운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하생략-
 

 

댓글목록

김진회(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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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영윤 대부님 잘 읽었습니다.
어제는  업무중에도 마음은 벽수장에 있었습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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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뒷 간찰은 누구의 것인지요. 영평(永平) 별장이라 함은....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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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귀한글 잘읽었습니다. 석주에게 준글은 누구의 글인지요. '석주는  권필'을 지칭한것인가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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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문온공파란, 김확선조님 란에 올리겠습니다.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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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귀한 굴 보았습니다.
영평의 별장이라함은 현재의 종가댁일 듯 싶습니다.
석주는 허균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귄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