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프고도 가장 엄숙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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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회(밀) 작성일05-06-05 01:38 조회1,660회 댓글2건본문
*상례
사람이 그의생애를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슬픔이다.
죽은이라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온 가족과 친척들과 많은 지인들과 영원히 헤어지는 비극을 의미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격지않으면 안되는 엄연한 자연의 섭리인 죽음이지만, 이 엄청난 슬픔을 예(禮)로써
나타내면서 마지막 헤어짐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바로 상례(喪禮) 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효도를 인륜의 근본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들은 그 어느 것보다도 상례(喪禮)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살아계실 때의 효도도 중요하지만 돌아가신 후의 효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3년 동안은 참으로 애통한 심정을 나타내야 하고 부모님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빈소를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통곡하여 부모님의 애틋한 정을 그리워해야만 하였다.
또한 부모님의 무덤 앞에 묘막을 지어놓고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시주드는 '시묘(侍墓)를 하는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여겼다.
*자랑스러운 안동김가의 효자 김 질(金 質)선조님 1496(연산군2)~1561(명종16)
조선의 학자. 효자. 휘는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찬의(贊儀) 복중(福重)의 아들.
지극한 효자로 부친상을 당하자, 제사 때 꿩이 부억에 날아들어 이를 제물로 썼다 하며 제사에 쓸 간장을 쥐가 흐려 놓아서 통곡했더니
밤새에 쥐가 떼를 지어 장독 아래에 모여 죽었다 합니다.
4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 사는데 밤새에 한 길이 넘게 눈이 내렸으나 여막 둘레만 내리지 않아 이에 탄복한 사람들이
그곳을 제청산(祭廳山)이라 불렀고, 김인후(金 麟 厚)는 그의 서재를 영모당(永慕堂)이라 이름 지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상아 생전 그의 뜼을 추모하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는 만큼 불필요한 형식적인 제도는 개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키는것 보다는 보다 정성이 깃들인 의식의 거행이 이루어 져야 할것이다.
내일은 보다 알찬 수업을 진행 하겠습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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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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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다음 행사에 참여하게 되면 정식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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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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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감사합니다.
의성 사촌 마을에서 전통 상례를 재현 하는 날이 왔으면 너무 좋으련만....
지금도 동약계 등등 유 무형의 민속 자료들이 많이도 남아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