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캠프자료---김흔 장군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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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6-28 11:15 조회1,477회 댓글1건본문
7) 아버지의 관직을 계승하여 금호부, 만호, 첨의참리
(36세) 1285년 원나라에서 돌아올때, 소무대장군(昭武大將軍)으로 제수되고 삼주호두패(三珠虎頭牌)를 찼다. 그후 아버지의 관직을 계승하여 금호부(金虎符)를 띠게 되고, 소용 대장군 관 고려군 만호(管高麗軍萬戶), 진국 상장군(鎭國上將軍), 첨의 참리가 되었다.
<고려사절요> 을유 11년(1285), 원 지원 22년
○ 가을 7월에 김흔(金?)이 원 나라에서 돌아왔다. 황제가 소무대장군(昭武大將軍)으로 제수하고 삼주호두패(三珠虎頭牌)를 차게 하였다.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김흔열전
그 후 김흔은 아버지의 관직을 계승하여 금호부(金虎符)를 띠게 되고 따라서 소용 대장군 관 고려군 만호(管高麗軍萬戶)로 되었으며 진국 상장군(鎭國上將軍)의 관계를 더 받았고 여러 번 조동되어 첨의 참리로 되었다.
8) 동진에 가서 유민 조사, 부밀직사사, 동판밀직사사
(37세) 1286년 지신사(知申事)로서 삼사사(三司事)가 되었고, 부밀직사사로 동진(東眞)에 가서 유민을 조사해서 데리고 왔다. (38세) 1287년 동판밀직사사(同判密直司事)가 되었다.
<고려사절요> 병술 12년(1286), 원 지원 23년
○ 3월에 -----
○ 김흔(金?)을 부밀직사사로 삼았다.
○ 8월에 부밀직사사 김흔을 동진(東眞)에 보내어 유민을 조사해서 데리고 왔다.
<고려사절요> 정해 13년(1287), 원 지원 24년
○ 12월에 -----
○ 염승익(廉承益)을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정가신(鄭可臣)을 판삼사사로, 김흔(金?)을 동판밀직사사로, 한희유(韓希愈)를 부지밀직사사로 삼았다.
9) 통구에서 군대 점검, 조정군을 이끌고 요양행성에, 동계방수군 징발 등 합단의 침입에 대비
40세) 1289년 통구(通衢)에서 군대들을 점검 사열하였고, 만호(萬戶)로서 조정군(助征軍)을 이끌고 요양행성(遼陽行省)에 갔으며, 동계(東界) 방수군(防戍軍)을 징발하고 합단(合丹)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고려사》 제30권 - 세가 제30 > 충렬왕 3 >
충렬왕 기축 15년(1289)
8월
을묘일에 인후, 김흔에게 명령하여 통구(通衢)에서 군대들을 점검 사열케 하였다.
임술일에 만호 김흔으로 하여금 정벌 원조군을 인솔하고 요양행성으로 가게 하였다.
12월
계사일에 지밀직사사 김흔, 동지밀직사사 나유를 파견하여 동계 방수군(防戍軍)을 징발케 하였다.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김흔열전
15년에 황제는 해도(海都)의 군대가 변강 지방에 침범하여 왔다고 하여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군대를 징발하게 되었는데 왕은 김흔으로 하여금 군사를 인솔하여 요양에 가게 하였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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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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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김흔 선조님에 대한 공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다시 볼 날 기다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