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캠프자료---김흔 장군 08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5-07-02 01:25 조회1,626회 댓글0건본문
14) 아버지 별세, 귀국하여 복상을 마치고 다시 원나라로
(51세) 1300년 8월 16일, 아버지 김방경이 별세하였다.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이(한희유 등 충렬왕파) 예식대로 장사 지내는 것을 방해하였다. 원나라에 있던 김흔이 귀국하여 복상을 마치고 다시 원나라로 돌아갔다. 이때 김방경 묘지명을 이진(*이제현 아버지)이 지었는데, 사자(嗣子)이신 상국(相國=나라의 재상, *?김흔, ?김순)의 간청(懇請)도 있음으로 해서 삼가 붓을 잡아 명(銘)을 쓰노라고 적고 있다. 김방경 행장도 이때 만들어진 듯한데(*1350년 안진 발하기를, 해가 도래되어 종이가 떨어지고 먹빛이 변해져서---, 라고 적고 있음), 찬자 서자가 누구인지는 알수없다.
<김방경 묘지명, 1300년 이진 찬>
대덕4년(大德4년=1300년) 8월 16일에 병환(病患)으로 인하여 백목동(栢木洞) 영계리(영溪里)에서 돌아가시어 9월 초3일에 예안현(禮安縣) 서쪽 산록(山麓)에 유교(遺敎)에 따라 안장(安葬)하였다.
<김방경 행장, 1350년 안진 발>
89세에 병환(病患)으로 본댁(本宅)에서 돌아가시니 임종(臨終)시까지 아품이 없이 조용히 앉아서 돌아가시니 유언(遺言)에 따라 안동(安東) 조부(祖父)산소(山所) 근처에 장사(葬事)하게 되었다.
영구(靈柩)가 떠날 때는 삼관녹사(三官錄事) 80여명이 모두 소복(素服)으로써 제사(祭祀)를 드리고 울음으로서 보내는데 그 때 공(公)을 미워하는 간신(奸臣)들 무리의 모사(某事)로 예장(禮葬)을 치르지 못하여서 왕(王)이 또한 후회(後悔)하고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김방경열전
26년에 그는 병으로 죽었는데 나이는 89세였다. 김방경은 사람됨이 충직하고 진실하고도 후하였으며 도량이 아주 넓어서 사소한 일들에 구애됨이 없었고 엄격하고도 굳세었으며 항상 말이 적었다.
아들, 조카 등에 대해서도 반드시 예의에 맞게 언동을 취하였으며 옛예식을 많이 알았으므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서 조금도 차착이 없었다.
자기 몸을 잘 거두고 근면하고 절약하는 기풍을 견지하였으며 대낮에는 드러눕는 일이 없었고 늙었으되 머리칼이 검은 채로 남아 있어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능히 견디어 내었고 병환이라곤 없었다.
---
그는 죽은 뒤에 안동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이 이것을 싫어하여 예식대로 장사 지내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왕이 이것은 잘못이었다고 후회하였다.
<김방경 묘지명, 1300년 이진 찬>
공(公)의 배위(配位)는 거서랑 지제고(起居郞知制誥) 박익정(朴益旌)의 따님으로서 삼남 삼녀를 나셨으니 장자 선( )은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전법판서 상장군(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典法判書上將軍)을 지내시고 공(公)보다 먼저 돌아가셨으며, 차남 흔( )은 관고려군 만호 진국상장군 광정대부 도첨의참리 상장군(管高麗軍萬戶鎭國上將軍匡靖大夫都僉議參理上將軍)을 지내시고 삼남 순(恂)은 봉익대부 밀직사부사 판비서시사 문한학사(奉翊大夫密直司副使判秘書寺事文翰學士)를 지내시고 딸 한분은 참지성사 조계순(參知政事 趙季恂)의 2자(二子) 변( )에게 출가(出嫁)하였는데 변( )은 봉익대부 부지밀직사사 상장군 전리판서(奉翊大夫副知密直司事上將軍)을 지냈다. 둘째따님은 지첨의부사 김광원(知僉議府事 金光遠)의 장남(長男)인 조헌대부 신호위 보승장군(朝顯大夫神虎衛保勝將軍) 김원충(金元沖)에게로 출가하였고, 셋째따님은 통례문사(通禮門事) 권윤명(權允明)에게로 출가(出嫁)하였다. 전취 박씨(前娶 朴氏)는 공(公)보다 먼저 돌아가시어 또다시 손씨(孫氏)를 재취(再娶)하여 딸 한 분을 나셨는데 그 따님은 통례문기후(通禮門 候) 채의(蔡宜)에게로 출가(出嫁)하였다.
---
나는 과갈(瓜葛)의 친분(親分)도 있고, 또 특별(特別)히 알아 주시고 대우(待遇)를 받은 자(者)이며, 또 사자(嗣子)이신 상국(相國=나라의 재상)의 간청(懇請)도 있음으로 해서 삼가 붓을 잡아 명(銘)을 쓰노라.
---
대덕(大德) 4년 경자(庚子) 9월
전 정헌대부 밀직사 좌승지 판비서시사 문한학사 충사관 수찬관 지제고(前 正獻大夫密直司左承旨判秘書寺事文翰學士充史館修撰官知制誥) 이 진(李 ) 지음(撰)
<김방경행장, 1350년 안진 발>
○공(=김방경)의 손자 추성 보리동덕 익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복창부원군(=영후)의 집에 공의 행장이 비장되어 있었으나, 해가 도래되어 종이가 떨어지고 먹빛이 변해져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써서 그 근본을 잊지 않게 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