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林派(사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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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5-07-11 07:27 조회1,730회 댓글3건본문
士林派(사림파)
조선왕조 11대 임금 중종(中宗)은 연산군을 몰아낸 쿠데타 세력에 의해 추대된 왕이었다. 집권 10년 되던 해, 중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국을 열어갈 인재를 찾기 위해 성균관을 찾아가 직접 과거(科擧)시험 문제를 냈다. “내가 왕에 오른지 10년이 지났지만 나라의 기강이 서지 못하고 법도도 정해지지 못했다. 이 난국을 극복할 대책을 남김없이 논하라.”
▶이 때 시험장에 33세의 조광조(趙光祖)가 있었다. “옳은 것을 옳다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며, 선한 것을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이치를 지키면 세상 모든 일이 가지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성실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핀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거칠 것 없는 답안이 중종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림(士林)은 글자 그대로 대규모 선비 그룹을 뜻했다. 조선 왕조 개국과 세조의 왕위 찬탈 등에 공이 있는 훈구 세력들이 권력을 독점하다가 중종 무렵에 와 성리학적 도덕정치론으로 무장한 신흥 선비 집단이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광조를 중심으로 급진적 개혁을 펼치다 사화(士禍)를 만나 몰락하기도 했으나 조선 중기 이후 중앙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사림은 조선 왕조의 실질적 운영자들이었다.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현 집권세력을 조선시대의 사림파에 비유하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는 “참여정부를 아마추어 운운하는 사람도 조선시대 몇차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사림파가 좌절하고 훈구파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후퇴를 개탄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을 사림파와 동일시하며, 이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훈구파들이나 하는 짓이고 이는 역사를 후퇴시킬 것이란 요지다.
▶아마 조선의 사림파가 이 위원장의 말을 들었으면 대경실색(大驚失色)했을 것이다. 사림은 아마추어 집단이 아니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프로들이 바로 사림이었다. 사림의 정치는 언관(言官)의 정치였다. 임금의 잘못에 대해서는 임금 앞에서 목숨을 걸고 바른 말을 굽히지 않았다. 바른 말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사약(賜藥)을 받고 유배를 갔던 사림의 인물들이 쌓여 크게는 조선왕조가, 작게는 사림 정치가 생명을 이어갔던 것이다.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 위원장이야말로 정권의 안 사정을 소상히 알터이니 이 정권 안에 단 한사람이라도 사림같은 인물이 있다면 그 이름을 대보라.
출처: [만물상] 士林派(사림파) 2005/06/03 06:31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58년 강화출생
댓글목록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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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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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리산 산행때 김태익(金泰翼) 칼럼리스트에 관한 이야기 있었는데 마침 이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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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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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시원합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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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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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 종친님!!! 간간이 올려 주시는 소식!!! 잘 보고 있습니다.
언론매체에서 자주 보이는 언론인들!!!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태익 (강화 )
조선일보 기자 김민철 (광산)
KBS 동경 특파원 김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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