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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4회 안동김씨 여름캠프 자료집_07 안정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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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5-07-29 04:41 조회1,8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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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공파

■ 파계도(충렬공 기세/파조 기세)

5世

1世

6世

2世

7世

3世

8世

4世

9世

5世

10世

6世

11世

7世

12世

8世

13世

9世

14世

10世

15世

11世

16世

12世

17世

13世

구덕

(九德)

安靖公

오문

(五文)

중엄

(仲淹)

(綠)

 

 

 

 

 

 

 

 

 

 

 

 

(紐)

(燦)

 

 

 

 

 

 

 

 

 

 

   

 

(煥)

세영

(世英)

팽조

(彭祖)

 

 

 

 

 

 

 

 

 

 

 

 

숭조

(崇祖)

 

 

 

 

 

 

 

 

 

 

 

 

홍조

(弘祖)

(璘)

효안

(孝顔)

진형

(振馨)

수해

(壽海)

(璉)

재욱

(載煜)

 

 

 

 

 

 

 

 

 

 

 

 

재혁

(載爀)

 

 

 

 

 

 

 

 

 

 

 

 

재황

(載熀)

 

 

 

 

 

 

 

(璜)

 

 

 

 

 

 

 

 

 

 

 

 

(琥)

효안

(孝顔)

 

 

 

 

 

 

 

 

 

 

 

 

예안

(禮顔)

 

 

 

 

 

 

 

 

 

세준

(世俊)

 

 

 

 

 

 

 

 

 

 

 

 

세신

(世信)

사우

(士遇)

집중

(執中)

여휘

(汝徽)

(晟)

윤형

(允亨)

서인

(瑞寅)

대집

(大集)

 

 

 

 

 

 

 

 

 

 

 

 

대유

(大有)

 

 

 

 

 

 

 

 

 

 

 

 

대옥

(大玉)

※휘 載熀 할아버지 휘자는 대보에 ‘재광’으로 적혀 있으나, 오기인 듯하여 ‘재황’으로 적었습니다.

■ 안정공 묘소

- 경기도 여주군 남면 원승리

 

◇ 안정공 휘 구덕(九德)

?∼1428년(세종 10년). 조선 초기의 문신. 상락군(上洛君) 묘(昴)의 아들로 문온공 김구용의 동생이다.

19세에 진사(進士)ㆍ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음직으로 산원(散員)이 되었다. 1379년 전(前) 좌우위(左右衛) 보승산원(保勝散員)이었다. 여러 번 사헌부규정(司憲府糾正)으로 천전(遷轉)되어 사헌부잡단(司憲府雜端)을 거쳐, 1396년(태조 5) 형조의랑(刑曹議郎)에 올랐다.

그 뒤 외직으로 나가 단양·청풍(淸風 : 현재의 제천)·한주(韓州 : 현재의 한산) 등 3개 고을의 군수가 되어 선정을 폈다. 정종 때는 사헌부중승(司憲府中丞)이 되어 당시 판삼군부사(判三軍府事)로서 권력을 부리던 최운해(崔雲海)를 탄핵, 음죽(陰竹)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어서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에 올랐고, 다시 외직으로 나가 해주ㆍ광주(廣州)ㆍ청주 등 세 주(州)의 목사(牧使)와 연안 부사(延安府使),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가 되었는데, 그때(1401년 태종 11) 따님이 태종전(太宗殿)에 간택되어 명빈(明嬪)이 되자, 벼슬이 올라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12년(태종 12)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내고, 이어서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다.

이듬해(1414년) 또 한성윤(漢城尹)으로서 들어와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기 위하여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윽고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거쳐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르렀고, 1427년(세종 9)에는 손녀(金五文의 딸)가 세자빈(문종, 휘빈)에 간택되었다.

안정공께서 돌아가시자 나라에서는 3일 동안 철조(輟朝)하였고, 조문을 내려 치제하였다. 안정(安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화합함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안(安)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거워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한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여 남과 다투지 않았고 사람을 대함에 예로써 하였다. 문장에 능하였으며, 음악을 좋아하였다.

아들은 김오문(金五文)이다. 묘는 경기 여주군 가남면 원승리에 있다.


◇ 명빈(明嬪)

명빈김씨는 판돈녕부사 안정공(휘 구덕)의 따님이시다. 태어나신 해는 알 수 없으며, 1411년(태종 11) 11월에 명빈으로 책봉되었다. 아버지는 김구덕, 할아버지는 김묘이다.

할머니 여흥민씨(민사평 공의 따님)는 태종의 정비인 원경왕후의 아버지인 민제와 사촌간이다. 따라서 명빈의 아버지 안정공과 원경왕후는 외6촌간, 원경왕후는 명빈과 7촌간이 된다. 태종과 원경왕후가 돌아가신 후에도 명빈은 계속 궁에 남아 왕실의 어른 대접을 받고 지내다 성종 24년(1479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7대를 거쳤다.

후손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생이 숙안옹주이며 사위는 회천위 회덕황씨 황유라는 기록도 있다. 명빈은 불교에 깊이 심취하여 현재도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관련 자료로 국보 282호, 국보 282-2호, 보물 959호, 보물 1107호, 보물 1125호, 보물 1252호 등이 있다. 묘소는 사적 364호로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다.

그 동안 ‘세종의 후궁으로 김오문의 딸’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영환 현종 등 종친들의 노력으로 관련 자료들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잘못된 자료가 많아 발견하는 대로 수정토록 적극 요청하여 잘못 전파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 공조참판공 휘 오문(五文)

공조참판공은 우리 족보에 문과 급제 후 총제(우군동지총절제사)에 오르고, 공조참판에 증직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배위는 숙경택주 청주정씨이시다.

장인은 문민공 정총으로 조선조의 1등 개국공신이다. 조선 초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당시 양국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표전문이 불손하다는 트집으로 대리로 유배 도중 돌아가셨다. 정총의 아버지 문간공 정공권(초명 정추, 호 원재)은 문온공(휘 구용)과 막역한 사이로 주고받은 시문이 많다.

공조참판공의 아드님은 병조참판공(휘 중엄)이시며, 따님이 휘빈이시다. 휘빈은 문종이 세자 시절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가례를 올리고 입궁하였으나, 후일 불미스런 일로 폐빈되었다. 야사에는 휘빈이 폐빈되자 공조참판공께서 휘빈과 함께 자결하였다고 한다. 공조참판공의 묘소는 여주군 남면 원승리 안정공 묘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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