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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일기(3)-영상공이 조성하신 문법숲과 이문거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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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7-31 17:27 조회1,58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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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5일, 아침 일찍 집안 정리를 마치자마자 상석대부님과 함께 괴산군 문광면 문법리로 갔다. 어제 저녁에 규문아저씨에게서 들은 영상공의 실거주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난 봄, 서울에서 전화상으로 이곳 이장님들에게 열심히 물어도 아는 이가 없었던 일이다.

 불과 5분 만에 도착한 문법3리 입구에는 좌측산 능선이 끝부분으로부터 편안한 선을 그리며 살짝 가라앉듯 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숲이 보인다. 450여 년 전 영상공의 주창으로 세워진 일명 문법숲이다. 문법리에 사시면서 이 마을의 지세를 세밀히 살핀 공께서 남쪽이 허한 것을 발견하고는 이곳에 높은 둑을 세우든가 숲을 조성하여 멀리 대로가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며 조성하신 숲이라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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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문법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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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숲 아래-느티나무, 참나무가 주종이며 정자가 있고 마을의 시원한 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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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정월 보름날, 문법숲 이 나무 아래에 제수를 놓고 동제를 지낸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법숲으로 들어가니 작은 정자 하나가 보인다. 노인 두 분께서 쉬고 계신다. 정자에 올라 절을 하고 나의 성과 본관과 이름을 밝히니 한 노인분께서

  “나도 안동인디, 호(浩-黙과 동항렬)자 돌림이여, 워디서 왔어?”

이때부터 대화는 급진전하며 이 지역과 문중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일가 대부님으로부터 여러 의문점들은 시원하게 해결되어 갔다. 천만 대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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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숲 정자위에서의 대담과 인호대부님>

 

 대부님은 제학공파 오갑 자손 중 참봉공(휘 友甲) 후손으로 2자이신 휘 시상(時尙)의 후손이셨다. (時尙-大乾-鼎壽-允泰-光昊-瑞麟-圭璞-重健-亨源-慶年-仁浩) 몇가지 중요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자신은 현재 이곳에 10여 대를 살아왔다. 현재 문법 3리 184번지에 살고 있으며, 1929년 생으로 77세이다. (전화:043-833-0388)

 2. 이곳 문법리 일대에는 예부터 우리 안동김씨들이 많이 살아 왔다. 그 중 제학공파 참봉공 후손들과 안렴사공파들이 주류를 이룬다.

 3. 현재는 종친들이 많이 떠나 몇 집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문법1리에 2집(태욱, 명응), 문법2리(전법리, 금석골)에 1집(태일), 문법3리에 2집(인호 등)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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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3리 전경> (중앙의 붉은색 지붕이 인호대부님 댁)

 4. 이곳에 우리 집안이 대대로 살아 왔다는 증거로는 문법 3리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득영씨(참봉공파, 전 단양부군수 역임. 卒)와 태헌씨(참봉공파) 종산이며, 주위 산에는 10여 대를 넘는 선대 묘소가 곳곳에 있다.

 5. 영상공의 모친이신 의성김씨 할머니의 고향이요, 이곳에 정착하게 된 원인이 되었던 영상공의 외가인 의성김씨 집성촌은 이곳으로부터 청천쪽으로 조금 더 가서 있는 옆 마을인 양곡리이다. 

 6. 문법숲을 조성한 것은 약 500여 년 전부터 영상공의 주창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후 계속해서 식목을 해 왔으며 주 수종은 느티나무와 참나무이다.  일부에서는 경주김씨가 먼저 조성하기 시작했다가 후에 영상공께서 이어서 이 사업을 지속했다고 전하는 말이 있다고 하나 이는 잘못이다. 일찍이 이곳에 경주김씨가 살았던 적이 없다. 주변 산에 경주김씨 묘는 없고 온통 우리 안동김씨 묘만 있다는 것은 이 말의 와전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7. 이문거리표(里門距離表) 표석은 마을 입구라는 의미로 500여 년전 영상공께서 세우신 것인데 글씨는 없는 것 같다. 원래는 현 위치(문법숲 입구에 설치)가 아니라 문법 3리 마을(문법숲 상단 위쪽) 좌측 끝 가옥에서 약 50m 좌측의 논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오래 전에 한 사람이 이 돌을 자기네 논의 물고 위에 작은 다리 용도로 썼다. 그 후 그는 갑자기 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에 이를 다시 원 자리에 세우니 신기하게도 아프던 몸이 나았다. 약 30년 전에 김천응종친(참봉공 후손)이 이를 현 위치인 문법숲 아래로 옮겨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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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거리표 최초위치 : 상기 사진 우측의 전봇대에서 좌측으로 50m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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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숲 입구의 이문거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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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거리표 표석-중앙에 글씨가 있는 듯하나 판독이 불가능함>

 

8. 영상공이 살았던 곳이라 하는 김석골(필자 주 : 김석은 영상공의 휘(김석)를 딴 마을이름으로 현지인들은 짐석골이라 하나 이는 김석골의 구개음화된 사투리적 용어이다)은 문광면 문법2리를 일컫는 말인데 문법1리 마을 회관에서 서편 산쪽으로 올라가 전봇대가 있는 곳이다. 현재 약 7가구 정도가 살고 있으며, 영상공 집터에는 현재 김태욱종친(안렴사공파, 30년 전 괴산지역 국회의원 출마 경력, 부는 정회)이 살고 있다.


 약 1시간여에 걸쳐 많은 말씀을 나누고 난 뒤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문법2리(일명 전법리)의 김석골로 향했다. 문법1리 마을회관 옆에서 아주머니들에게 김석골과 김태욱 집을 물으니 마을회관에서 거의 이어진 상태의 뒤쪽(서편) 마을로 산 아래 높은 곳에 있는 통나무집이라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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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골(문법2리-전법리) 원경, 좌측 산쪽의 긴 건물(교회)부터 우측마을이 김석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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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골 근경, 중앙의 산 아래 조금 뾰족한 것이 영상공 집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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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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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산 입향조이신 영상공(휘  석)께서 조성하신 숲과 이문거리표,金錫골의 정겨운 모습은 자연스레 환한 모습과 편안한 마음을 갖게하였습니다.토요일 충주로 가는 길에 또 들려 지나니 감흥이 새로이 일어 가슴이 뭉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