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일기(4-終)-영상공 거주지터와 참봉공(휘 우갑) 묘소
페이지 정보
김항용 작성일05-07-31 17:31 조회1,676회 댓글1건본문
현지에 이르니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통나무집은 근처 시골집 등에서 보기 어려운 최근에 멋지게 진 별장이었다. 마을 뒷산 주능선 끝 부분 아래의 널찍한 터(약 200여 평)에 곱게 깔린 잔디와 아담하게 지어진 현대식 2층 통나무집(단층 면적 약 40여 평)과 부속 건물(약 30여 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 멋스럽고 아담한 모습을 보고 부러움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로 밑 집의 대문 기둥에는 김태일이란 문패가 걸려 있었다. 틀림없이 우리 일가일 것이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들에 일을 나간 모양이다.
<영상공 집터와 지덕규씨 통나무집>
<통나무집 옆의 부속건물>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1519년), 영상공께서 서울 주자소 근처(현 퇴계로의 극동빌딩 근처 윤주한의원)에서 기묘사화를 당하자 화를 피해 이곳으로 오시어 이 집터에서 삶을 시작하셨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성균진사로서 정암 조광조선생과 더불어 당시 낡은 정치 사회제도를 개혁하려 했던 25세의 젊은 선비, 그 큰 꿈과 희망을 접고 괴산의 깊은 산골에서 은거해야만 했던 그 심정과 절망감은 어떠했을까? 이곳에서 5 아들(五甲)을 교육시킬 때의 모습은 또한 어떤 심정과 모습이었을까? 어디쯤에선가 다섯 아들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집의 이곳저곳을 감상하고 있는데 좀 있으려니 2칸 아랫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시며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다. 대충 우리의 방문 목적을 말씀 드리고 이 집터에 대해 물으니 다음과 같이 답해 주신다.
1. 이 집은 괴산군 문광면 문법2리(전법리) 631번지로 현재 지덕규씨 소유의 집이다. 마을 좌측에 있는 교회로부터 그 우측선과 뒤쪽으로 있는 약 7가구가 금석골이다.
2. 지덕규씨는 서울에서 00건설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이 집은 그 분이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으며 얼마 후 퇴직하면 이곳에 와서 살 계획이다.
3. 자신은 바로 그 지덕규씨의 형수로서 이름은 이춘자(66세)이며 부군은 지홍규인데 별세하였고 전화는 043)832-4876이다.
4. 자신은 약 45년 전인 1960년경에 이 마을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시집 올 당시 이 집은 초가집이었다.
5. 한 때 이 집에 살았었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던 김태욱씨는 약 30년 전에 청주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에도 이 집터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고 김태욱씨는 다만 집을 짓고 살았을 뿐이다. 그 후 이 집을 포함한 이 지역 일대의 토지가 경매에 붙여지자 시동생인 지덕규씨가 이 집을 낙찰 받아 인수하게 되었다. 현재 자신은 2칸 아랫집에 살면서 이 집을 돌보고 있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대문 안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집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마을이 한 눈 아래로 들어 왔고 마을 앞 동남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으며, 높고 낮은 건넛산이 훤하게 내다보였다. 마을에서는 전망이 가장 좋은 명당 터였다. 집 앞 잔디밭에는 수 백 년 되었다는 자두나무가 있었고 집 뒤로는 오래된 오동나무가 있어 집터의 역사를 대충 말해 주고 있었다. 내 별장이 이것이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몇 번을 되돌아보며 집을 나왔다.
<집 앞의 자두나무, 오래된 것으로 고목은 자르고 새 가지가 나왔다>
<집 뒤의 오동나무>
다시 문법3리 문법숲으로 되돌아 갔다. 이문거리표석을 촬영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정자 위에 앉아 계신 인호대부님과 몇 분들이 멀리서 우리들의 모습을 살피신다.
괴산 집으로 돌아와 바로 집 뒤의 양덕공 묘소 옆 산자락에 있는 참봉공(휘 友甲)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촬영하였다. 홈페이지 올리기 위해서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옷이 흠뻑 젖는다
<참봉공(휘 우갑) 묘와 상석>
<묘비석-承仕郞 行 恭陵參奉 金公 友甲之墓, 端仁 迎日鄭氏祔左>
<묘비 후면-乾隆四十年 乙未(1775년.영조51) 月 日 立>
참봉 묘소 아래에는 참봉공의 후손인 동호(友甲-時亮-紀-鼎臣-允熙-海徵-礪著-璆-天健-由岳-學年-東浩) 선조님의 묘소가 있다. 어제 보았던 수리 서경회 묘역의 學年선조님의 아드님이시다.
점심때가 되어 아버님과 함께 괴산 읍내 음식점을 찾으니 집집마다 만원이다. 오늘이 중복이란다. 한 집에 겨우 자리를 잡으니 반가운 일가를 만난다. 성수와 경수아우들이다. 모두 괴산읍 능촌리에 살고 있는 종친들로서 문숙공 김제갑 선조님의 16대손들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 서울로 가려하니 상석대부는 어제 작업한 안주공 묘소에 다시 가려한다. 지난 장마로 인해 묘소의 일부가 패여 나갔는데 어제 삽이 없어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함께 가서 주인도 없는 능촌리의 규문아저씨 집에서 삽을 꺼내 약 1시간가량 작업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번 여름의 괴산행은 보람있는 작업과 큰 수확이 있었다. 이제 청계천 벽화 마무리 작업과 여름캠프가 기다리고 있다. 훌륭한 작품과 행사로 마무리 되도록 힘써야 하리라.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 |
김윤식 |
---|---|
작성일 |
괴산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